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 숟가락을 부딪히며 저녁을 먹자
_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창비,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