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는 성(聖) 안토니오 수도원이 의뢰한 작품이었다. … 제단화는 성당의 제단 뒤에 걸려있는 회화나 조각, 부조 형식을 일컫는다. 예술에서 제단화는 두폭제단화(diptych), 세폭제단화(triptych) 등으로 구분된다. 이젠하임 제단화는 입체 제단화로 아주 독특한 형식을 취했다. 한 마디로, 맨 앞에 있는 제단을 열면 또 다른 제단화가 계속해서 나오는 대형 이동식 입체 제단화였다. 형식은 입체였지만, 회화가 제단의 여러 패널을 장식했다. 그뤼네발트는 1512년부터 1516년까지 4년에 걸쳐 이 작품을 제작했다. 평소 제단화는 닫혀있었다. 닫힌 상태의 이젠하임 제단화 중앙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왼쪽 날개에는 화살을 맞은 성 세바스찬, 오른쪽 날개에는 성 안토니오가 표현돼 있다. 좌우의 두 성인은 병든 자를 치료해주는 수호 성인들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당시 이 그림을 보던 사람들과 같은 피부병을 앓고 있다. 못에 박힌 고통을 강조했던 다른 도상과 달리, 이젠하임 제단화의 예수는 피부병으로 물집이 잡혀있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자신들의 모습을 닮아있다. 하얀 복장을 한 마리아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자 요한이 부축한다. 그 옆에 있는 막달레나 마리아도 긴 상심에 빠져있고, 그리스도 오른쪽에 위치한 세례 요한 옆에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뜻하는 양이 그려져 있다.

2.
제단화 속 세례 요한은 유독 긴 검지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 손 뒤로 라틴어 성서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한 3:30) 바르트는 그리스도를 힘써 가리키는 세례 요한의 긴 손가락에서 신학이 나아가야 할 길과 목적을 보았다. 바르트는 이 그림을 평생 사랑했고, 책상 정면에 이 그림을 걸어 두었다. 그리스도교 성현들의 글과 씨름하다가 고개를 들면 늘 이 그림이 바르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르트의 제자인 갓세이D. Godsey는 이 그림을 이해한다면 바르트 신학의 심장을 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뤼네발트의 세례자의 가리키는 손을 따라가며 바라볼 모험을 감행할 것인가? 우리는 그 손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를 안다. 바로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그분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란 점을 즉각 덧붙여야 한다. 저 손이 말한다. 바로 이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