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우리는 말이 없다 낳은 사람은 그럴 수 있지
낳은 사람을 낳은 사람도
그럴 수 있지 우리는 동생을 나눠 가진 사이니까
그럴 수 있지
저녁상 앞에서 생각한다
죽은 이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한 사람이 완성된다
싹이 오른 감자였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푸른 감자
엄마는 그것으로 된장을 끓이고
우리는 뱃소리를 씹으며 감자를 삼키고
이 비는 계절을 쉽게 끝내려 한다
커튼처럼 출렁이는 바닥
주인을 모르는
손톱으로 주웠다
나는 몰래 그것을 서랍 안에 넣는다
서랍장 뒤로 넘어가버린 것들을 생각하면서
서랍을 열면 사진 속의 동생이 웃고 있다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고 있다
환한 햇살이 완성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우리가 눈 감으면
우리를 보러 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 있었다
***
“최지은의 시는 사유의 넓이와 감각의 깊이에서 길어 올린 것들로 신산한 생활의 풍경을 담담하게 늘어놓는 진술들이 돋보였다. 시인은 순간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이내 감추는 삶의 불길함들을 곧잘 포착해내는 뛰어난 동체시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다시 시로 재현해낼 때에는 자신만이 보고 느낀 특수한 미감만을 내세우지 않고 타인의 정서에도 곱게 가닿을 수 있는 보편적 아름다움을 획득해낸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