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시집 간다’라는 시가 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강의를 듣고 알게 됐어요. 그걸 들었는데 펑펑 울었어요. 고동 새끼가 어미를 다 파먹고 나오면, 어미가 떠내려가는 걸 보고 울엄마 시집간다고 표현하는 거예요. 그게 생각나서 시를 쓰고 처음으로 한 선배에게 “네가 시를 쓰는 것 같다.”라고 칭찬을 받았어요.

시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어요. 보는 기준이 더 높아졌죠. 예전에는 내가 보기에 좋았던 부분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 등단한 후부터는 과연 좋은 문장인가 의미 있는 문장인가 판단하게 돼요. 의미가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게 되는 거죠. 보는 눈이 달라지다 보니까 힘들어요. 자기 시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게 되니까요. 시 쓰고 계속 불안하고, 시 쓰기 전에도 불행하고, 등단하는 게 완전히 행복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등단이 모든 걸 결정하지 않지만 불행의 왕국에 들어오는 거라 생각해요.

아마 학원 강사를 했을 거예요. 취직할 수 있는 사람과 취직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사람들에게 지시 받는 게 싫어요. 아마 취직한 사람으로는 안 살았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이력서 스무 장은 썼는데, 면접 본 데도 있고 아닌 데도 있고, 제가 포기한 데도 있어요.

시를 쓰는 지점이 있을 때 그때 쓰게 되죠. 자기 생활 자체를 여과 없이 시로 만들어낸 시인들이 있어요. 내가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는 건 힘들기 때문에, 이건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제 주변에 있던 사건을 쓰려고 해요. 폐쇄적으로도 생활하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려고도 하죠. 혹은 사회적 고통과 나의 평온한 삶의 간극에 대해서도 생각해요.

옛날에 수업을 듣는데 내가 “앞으로 김승희 시인이나 이성복 시인 같은 사람들이 또 나오겠습니까?”라고 선생님께 여쭤봤어요. 선생님께선 한시의 망설임도 없이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모른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무튼 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죽지 않게 만드는 글을 써야 한다 생각해요. 살릴 순 없더라도, 죽지 않게 할 수 있는 글을요. 그래서 제 시가 어둡고, 밝은 얘기가 거의 없어요. 고통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밝은 글을 쓰겠어요.

부인(최은영)이 가끔씩 누가 좋다는 얘기를 해서, 부인이 듣는 거를 들어요. … 라디오헤드도 듣고, 이승환 노래도 듣죠. 메시지가 있는 거를 좋아해요. 리듬 때문에 듣는 편은 아니고요.

[시가 안 써질 때] 다른 사람들의 시를 무조건 막 뒤져요. 어떻게든 영감 받을 수 있는 것을 찾아보려고요.

“물은 인간의 필수인 동시에 인간을 죽일 수도 있죠. 조금도 가만있지 못하고 출렁이고 변하고 흘러가는 게 삶의 모습 같기도 해요. 눈물·먹장구름·장마 같은 물의 이미지를 자주 쓰게 된 이유예요.”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시집을 ‘6년 동안의 울음’이라고 평했다.

“시마다 마음을 움직이는 한 줄을 넣고 싶어요. 제 시가 슬픔의 밑바닥에 앉아있는 분들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