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대상관계 이론을 적용한다면 ‘냉정하게 거부하는 엄마’와 그 앞에서 ‘주눅 들어 눈치 보는 아이’의 관계가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런 관계 형성을 정신분석에서는 ‘내적 대상관계’internal object relations라고 부른다. 이런 내적 대상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을 ‘냉정한 어머니’로 보게 된다. 자신은 자동적으로 냉정한 엄마 앞에서 ‘주눅 들었던 아이’가 되고 만다.
46-47. 열등감이 심한 사람들은 자기에게 속한 것은 다 불량품으로 보는 심리를 갖고 있다. 예컨대 한 여성이 명품 가방을 무리해서 샀다. 그런데 일단 자기 것이 되고 나니 그렇게도 좋고 귀하게 보이던 가방이 너무 시시해 보였다. 생각해보니 대학 대도 그런 일이 있었다. 최고로 인기가 좋은 동아리 회장 오빠가 있었다. 그런 오빠가 어느 날 자기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사귀던 중 어느 날부터인가 그 오빠의 결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굉장히 멋지고 커 보였던 오빠가 점점 시시해 보여서 마침내 헤어지고 말았다. 일단 자기 것이 되고 나면 시시해지는 심리가 열등감의 심리이다. ‘내가 시시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시시한 것일 수밖에 없어. 귀한 것이 내 것일 리가 없어’ 이런 심리다. 열등감이 심한 엄마는 자기 자녀도 자기처럼 시시한 애들로 보인다. 남의 자녀들과 자꾸 비교가 된다. 비교당한 자녀들은 열등감에 빠진다. 그래서 열등감은 대물림된다.
50. 아이가 작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심하게 나무라고 구박하면 아이는 주눅이 들어 엄마의 눈치를 보는 소심한 아이가 된다. 엄마의 눈치만 보는 것이 아니고 남들의 눈치도 보게 된다. 실수하면 혼나고 창피를 당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부모가 완벽주의자일 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완벽주의자 부모에게는 100점 만점 아니면 빵점이 있을 뿐이다. 아이가 부모를 완벽하게 만족시켜주지 못하면 화가 난다. 아이는 엄한 꾸중을 듣는다. 아이는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봐 늘 초조하다. 그래서 실패 불안이 높다. 발표하다가 실수할까 봐 아예 포기해버리고 뒷전으로 숨기도 한다. ‘모 아니면 도’이다.
55. 아이가 엄마에게 화도 낼 수 있어야 한다. 엄마에게 화도 내고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대하기 편하고 친근감이 느껴질 때 가능한 일이다. 자존감 높은 아이가 떼도 쓸 수 있다.
83-84. 정신분석은 마음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하나의 탐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속의 아이’와 만나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의식의 지하실인 무의식으로 내려가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작동하는 것이 무의식이다. ‘마음속의 아이’는 무의식에서 살고 있다.
92. 불안이 많다는 것은 심리적 현실에서 곧 다가올 위험 상황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위험 상황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를 담고 있다면 병적인 것이 아니라 건강한 반응일 수도 있다. 지금 불안하다면 무엇이 불안한지 나열해보자. 그리고 불안한 이유도 함께 기록해보자. 반대로 이렇게까지 염려할 필요가 없는데도 자꾸만 불안감에 압도된다면,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중요한 위험 상황이 감지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럴 때 자기 무의식에서 어떤 위험 상황을 경험하는지 이해하게 되면 내적 고통도 줄어든다.
105-107. 어느 날 그녀는 자기가 카우치에 누워서 말하고 있을 때 내가 한숨을 쉬었다고 했다. 분석 시간에는 내담자가 카우치에 눕기 때문에 분석가를 볼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내 한숨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숨도 보통 한숨이 아니고 ‘이 여자 참 한심하다’는 한숨을 쉬었다고 했다. 그리고 몹시 괴로워했다. 당시 나는 그렇게 한숨을 쉰 기억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내 한숨 때문에 우울증에 빠졌다. … 그녀는 아무래도 너무 힘들어서 분석을 중단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나는 당신을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건 분석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교육이 되어 버린다. 우리의 관계는 분석가와 피분석자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 변질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나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그녀는 노토 필기를 하며 배우는 학생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녀는 자신의 무의식 탐구를 멈추고 나의 가르침을 수동적으로 따르려 할 것이다.
117. 요즈음 많은 엄마들이 너무 조기에 아이 곁을 떠나는 데 이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그런데 엄마가 물리적으로, 공간적으로 아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관심과 사항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 아이 곁에 있어도 아이에게 무관심하거나 차가운 엄마는 아이를 병들게 할 수 있다.
129-131. 사람들의 눈에 L 부인은 인정 많고 희생적이며 친절한 분이었다. 하지만 L 부인의 마음은 달랐다. 자신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고도 당연시하는 이웃들을 향한 분노가 때로 걷잡을 수 없이 강력하게 일어났다. ‘그냥 싫다고 하면 될 텐데 왜 나는 거절을 못할까?’ 자책의 목소리도 컸다. (중략) L 부인과 어머니의 관계는 역전된 애착관계reverse attachment를 보여준다. 아이가 엄마의 필요를 채워주려 하는 것이다. 돌보는 역할을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하게 되었다. 엄마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L 부인의 의존 욕구는 억압되고 포기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성격의 패턴으로 자리 잡아 성인기의 대인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L 부인도 누군가의 도움과 사랑, 돌봄을 받고 싶었지만, 그러한 의존 욕구를 표현하기보다 감추었고, 오히려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좌절된 의존 욕구는 마음 한편에서 상대방을 향한 분노로 이어졌다. 이것이 우울증의 원인이었다. L 부인의 증례는 어린 시절 엄마의 사랑, 즉 감정적 투자가 안정적인 애착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충분히 안정된 애착을 경험한 아이는 자기 감정과 욕구를 잘 인식한다. 그리고 비난과 거절에 대한 염려 없이 자기 욕구를 표현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의존 욕구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그래서 건강한 상호의존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146. 아버지는 성질이 급했다. 기다리는 것을 못 견디셨다. 어릴 때 일이 생각났다. 텔레비전을 고치던 아버지가 J에게 드라이버를 가져오라고 했다. 어린 J는 연장통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마음속으로 ‘연장통에서 드라이버를 찾을 수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을 하며 달려갔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연장통에서 드라이버를 찾을 수 없었다. 기다리던 아버지가 달려왔다. 드라이버를 찾아낸 아버지는 화를 내시며 “눈앞에 두고도 못 찾느냐. 이 병신아. 도대체 네가 제대로 하는 게 뭐냐”고 했다. 흥미롭게도 J는 자주 “저는 아무것도 못해요. 저는 제대로 할 줄 아는 데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했다. 아버지의 언어였다. 그래서 J는 자신감이 없었고 항상 자기를 무능력자라고 무시했다. J가 열등감이 심한 이유는 마음속에 그를 비난하고 무시하는 아버지가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아버지는 자식을 잡아먹는 신화 속의 거인처럼 J 군의 인생을 파괴하고 있었다.
149. 미국 대학의 교수인 마이클은 동성애자이다. 특히 남자애들, 잘생기고 젊은 남자애들을 보면 성욕을 느낀다. 젊은 애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해주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이 욕구가 동성애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의 내면세계에서는 ‘성적으로 애무하는 것’을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해주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자기가 어릴 때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젊은 애들을 통해서 맛보려 하고 있었다. 무의식에서는 자기가 아버지 역할을 하고 동성애 상대가 된 젊은 애는 어린 시절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나의 ‘역할 바꾸기’였다. 마이클은 그렇게 어릴 때 충족되지 못한 아버지 결핍을 채우고 있었다.
153. 꿈속에서 어린 마이클이 기다리던 구원자는 아버지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없다. 그레서 비굴하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 ‘싸우면 처절하게 패배한다. 살아남으려면 항복하거나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버지 결핍증’인 아들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양보 잘하는 사람, 선량하고 순한 사람이라는 칭찬은 듣지만 속으로 분노가 쌓인다. 공격성을 처리하지 못한다. 이렇게 누적된 분노는 엉뚱한 데서 터져 나오기도 한다. 순하디순하던 남편이 사소한 일로 퍽발하듯이 화를 내는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168-169. 분석 시간에 카우치에 누울 때마다 잠이 드는 30대의 처녀가 있었다. 남성과 친해지지 못하는 처녀였다. 나는 이 잠드는 행동을 단순한 저항으로 보았다. 분석 시간에 자신을 노출하는 것이 불편할 때 잠으로 도피하는 경우가 흔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그게 아니고 어릴 때 경험을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분석 시간에 그녀는 어린 시절 잠잘 때 늘 자기 침대 곁에 아버지가 계신 것을 상상하며 잠들었던 것이 생각난다고 했다. 분석가에게 아버지 전이가 생겼던 것이다. 분석 시간에 카우치에 누울 때마다 그녀는 아버지 곁에서 잠드는 어린 딸로 돌아갔다. 분석 시간에는 어린 시절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데, 말로 표현하는 대신에 잠드는 행동으로 어릴 때 상황을 재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무의식을 행동화하고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 아직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이디푸스 소녀가 살고 있었다. 이 아이가 때때로 의식세계로 올라와서 어른인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지배했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 아이에게 남성은 곧 아버지였다. 남성과 친해지는 것은 성적인 관계로 진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근친상간의 죄악에 빠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성과 친해질 수 없었다. 이것이 ‘마음의 현실’이었다. 아직도 아버지는 그녀에게 매력적인 거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혼기를 놓쳤고 노처녀가 되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잘 해결되려면 부모와 관계가 좋아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아버지 부재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해결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친밀한 부모 자식 관계가 동성 부모의 가치관과 도덕관을 잘 받이들이게 만들면서 적대적인 대립관계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또한 부부 사이가 좋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부모 사이에서 끼어들 틈새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이성의 부모를 포기하는 과정이 쉬워진다.
183. 내 안의 분노 수위가 높으면 상대방이 그만큼 두려워진다. 내 분노를 상대에게 투사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두려워진다. 그래서 따질 일이 있어도 비굴해지고 회피하게 된다. 내가 유년기부터 오늘까지 그렇게 나약하고 비굴했던 것은 내 안의 분노 수위가 폭탄만큼 그렇게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나의 착각이었다. 이 사실을 분석 시간에 확인하고 나는 안심했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 공격적일 수가 있었다.
198. “아빠의 육아법은 아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네.” (중략) 정신의학을 배우면서 나는 한 가지 확실한 진리를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아주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를 가지려면 어머니가 아이를 충분히 사랑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신질환은 모성 결핍에서 온다는 것이었다.
212-213. 아이가 공부를 스스로 알아서 잘해주는 경우야 문제 될 게 없지만, 그러지 않고 시험이 임박했는데 잠만 자거나 게임에 빠져 있을 때는 어쩌란 말이냐? 이럴 때 어머니는 간섭하고 잔소리하고 통제하게 되는데 ‘내가 너무 간섭하는 엄마는 아닌가?’ 회의에 빠진다. 그러나 이럴 때는 차라리 통제하고 간섭해주는 엄마가 좋은 엄마이다. 다만 공격적인 어투나 “넌 항상 그 모양 그 꼴이구나” 하는 식의 표현은 피하는게 좋다. ‘나 전달법’으로 말하는 게 효과적이다.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엄마의 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엄마는 네가 그렇게 공부를 안 하면 내신이 형편없을까 봐 걱정돼”라고 말해주거나, “엄마는 네가 게임하는 시간을 줄여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중략)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놀려고 할 때는 당연히 말려야 한다. 칼을 뺏으면 아이는 좌절감을 느끼고 울 테지만 피할 수 없는 좌절은 아이가 튼튼하게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런 피할 수 없는 좌절을 정신분석에서는 적절한 좌절(optimal frustration)이라고 부른다.
216. 아이 성장을 방해하는 방해 인자를 제거해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에게 부모의 성행위 장면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포르노 같은 유해 환경을 집안에서 제거해야 한다. 한 고교생은 초등학교 때 부모가 여행 간 사이 여동생과 함께 부모가 보던 포르노 비디오를 본 경험 때문에 정신분열증에 걸렸다. 여동생과 포르노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본 것이 화근이었다. 그 후 그 사실이 탄로날까 봐 늘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타고 가던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앞에 서 있던 젊은 여성의 젖가슴으로 넘어졌다. 그때 젊은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때 소년의 피해망상ㅇ이 발작을 일으켰다. ‘경찰이 나를 미행한다.’ 학교도 가지 않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다. 버스에서 있었던 그 사건은 소년으로서는 가슴속에 묻어둔 무의식 속 죄책감을 공개적으로 폭로한 사건이 되었던 것이다.
234. 5분이면 된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에게 달려가는 것이다. 아이와 충분히 스킨십을 갖고 눈 맞춤을 하며 “우리 강아지, 오늘 잘 지냈어?”라며 말도 걸어준다. 엄마가 아이에게 따뜻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의 갈증을 해소시켜주고 나서 집안일을 처리해도 늦지 않다. 짧은 시간이나마 아이에게 구체적이며 질 높은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여기에 처음 5분이면 충분하다.
_ 이무석ㆍ이인수, <내 아이의 자존감>, 덴스토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