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셰익스피어 시대의 극장들은 관람석과 무대가 구별되어 있기는 했지만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 상당수는 서기, 장인, 도제, 여자 등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숙련 노동자 일주일 임금이 6실링(30페니) 정도였고 입석 입장료는 1페니로 추정됩니다. 셰익스피어의 관객들은 듣기에 아주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텔레비전 같은 영상 매체를 보면서도 자막을 봅니다. 그만큼 읽기에 익숙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읽을 만한 것들이 널리 보급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듣기에 능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쓰인 영어는, 셰익스피어 당시의 수많은 관객들이 도대체 이 정도의 영어를 알아들었을까라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준이 높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관객들은 그것을 알아들었습니다. 그의 영어는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었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희곡 작가이면서 극장주였기 때문에 당연히 관객들이 잘 들을 만한 이야기와 대사를 썼습니다. 이것도 아주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는 이를테면 ‘대중 드라마’였다는 사실입니다.

248. 셰익스피어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는 안정된 규범이 없습니다. 그들은 신이 정해 놓은 운명에 따라 살고 있는 이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단한 근거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등장인물들이 의존하고 있는 인생관은 서로 다릅니다. 희랍 비극에서 코로스가 등장하여 관객에게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일어주는 장면들이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드라마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발딛고 서 있는 인생관과 세계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것들의 충돌이 갈등을 유발하고 서로 쟁투를 벌이다가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관객 또한 안정된 규범을 가지고 있기 않기는 마찬가지이므로 ‘갈등하는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263. 맥베스 부인과 맥베스의 차이는 이렇습니다. 맥베스 부인은 자신의 행위를 자신의 의식으로 완전히 정당화하였습니다. 맥베스는 자신의 행위를 자신의 의식으로 정당화할 수 없어서, 차라리 의식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쳤건 이제 두 사람 모두 행위와 의식 사이의 갈등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그 방식은 다릅니다. 맥베스 부인은 행위에 의식을 합치시켰고, 맥베스는 의식을 버렸습니다.

269. 맥베스는 불안함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이제 “운명 자매들”을 찾아갑니다. 자신의 무력과 사내다움을 호언장담하였으나 그것만 믿고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맥베스가 마녀들의 말을 믿고 덩컨 왕을 죽였다 해도 그가 자신의 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또 다시 마녀들을 찾을 까닭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자신의 힘으로부터 길어 올릴 수 없습니다. 맥베스에게 가장 괴로운 것은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길을 자기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잡은 불안입니다. 그는 덩컨 왕을 죽인 다음 왕위를 차지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그를 지배하고 있는 심성이 바뀌었습니다. 사악함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지만 그 안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내가 나의 미래에 확신할 수 없다면 아예 포기하면 됩니다. 확신이 없다면 자신의 힘으로 미래를 당겨오려는 의지라도 있어야만 합니다. 여기서 맥베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힘을 기르는 것일텐데 “운명 자매들”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 맥베스 부인이 옳은 말을 한 마디 합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온갖 자연의 보존자, 잠이에요.”(3막 4장) 이 말에는 중요한 함의가 있습니다. 맥베스는 마녀들에게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 물으려 하는데, 맥베스 부인은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자연의 보존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93.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의 “심성에서 오셀로라는 형용”을 보았고, “명예”, “자질”에 자신의 영혼을 바쳤습니다. 데스데모나가 보기에 오셀로는 겉과 속이 같은 사람입니다.

305. 데스데모나를 사랑하고 있는 상황을 지켜야 한다는 것, 이것이 오셀로가 가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행동 동기입니다. 이렇게 자기 역할극에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오셀로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확신에 가득 찬 듯하지만 그 자기확신은 다른 이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허망하게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는 자기가 신뢰하는 이아고에게 확신을 얻고자 합니다. 이아고는 입 안의 혀처럼 오셀로가 원하는 말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_ 강유원, <문학 고전 강의>, 라티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