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크라이나 출신인 외할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전사해 헝가리 땅 어딘가에 묻혔고, 친할머니는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티푸스로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두 아들은 군대에서 복무하다가 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 만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할머니의 세 아들 중 한 명만 살아 돌아왔다. 바로 우리 아버지이다. 먼 일가 친척들 중에서 열한 명이나 되는 친척들이 아이들과 함께 산 채로 독일군에게 불태워졌다. 누구는 자기 오두막에서, 또 누구는 시골 교회에서. 집집마다 그런 사연 하나쯤은 있었다. 어느 집이나. 시골의 사내아이들은 오랫동안 ‘독일인’이나 ‘러시아인’ 흉내를 내며 놀았다.

45. 우리 일행 중에 여자통신병이 있었는데,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이었지. (중략) 아이가 울어댔어. 아이는 울지, 독일군 추격대는 코앞에 있지 … 수색견까지 데리고 … 결국 지휘관이 결단을 내렸어 … 누구도 지휘관의 결정을 아이 엄마에게 차마 전하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그녀가 스스로 알아차리더군. 아이를 감싼 포대기를 물속에 담그더니 한참을 있었어 … 아기는 더이상 울지 않았지 … 우리는 차마 눈을 들 수가 없었어. 눈을 들어 아기 엄마를 마주 대할 수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도 없었지.

_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옮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학동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