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디선가 - 아마도 <은혜의 각성>에서 - 찰스 스윈돌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이단은 인본주의”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인본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명과 은사를 뒤바꾸는 가치의 전복이요, 내러티브(피투)에서 이탈한 실존의 욕동(기투)이다.
2. 스콧 펙의 <거짓의 사람들> 부제는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이다. 그가 천착한 악은 나르시시즘이다. 전작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다룬 핵심어 규정의 거울쌍이다. 마치 생(Live)의 철자를 뒤바꾼 것이 악(Evil)이듯이.
3. 흔히 교만과 열등의 뿌리가 똑같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양자 모두 오로지 자기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애널리 루퍼스가 말했든, 열등이란 자의식은 부정적 나르시시즘이다.
4. 스탠리 하우어워스, 칼 바르트, 키에르케고어, 그리고 저 멀리 아우구스티누스로 이어지는 신념의 기둥은 인간이 군림한 자리에 다시 구주를 모시는 일이 바로 샬롬이란 고백이다. 펠라기우스에서 조엘 오스틴 등을 아우르는 유혹에 그들은 맞섰다.
5. 휴브리스에 대한 경고는 고대 그리스 비극부터 장구히 흘러왔다. 다만 프로메테우스적 선교는 나르시스적 영성을 들숨 삼아 더욱 거칠게 내뿜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