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낭비라는 말이 있다. ‘거룩한’ 라벨은 누가 덧붙인 건가. 너무 오랫동안 서 있거나 주저 앉았다. 그것은 일상의 영성도 아니었다. 실체는 그저 낭비였다. 이래저래 거룩은 저들이 일삼는 정죄의 명분이었고, 그들은 그렇게 축적한 누군가의 노고와 헌신으로 여유를 누리며 이따금 트집을 잡는다. 우월한 아량 또한 잊지 않은 채. 온통 거짓이다. 나 역시 프레드릭 비크너를 읽으며, 비로소 안식을 얻었다.
-
비크너는 내게 복음주의자들 중 일부는 상대방의 언어를 모르면서 언성만 높이는 유럽의 미국인 여행객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그들은 비크너가 신비에 가려진 것으로 여기는 문제들에 대해 확신으로 여기는 문제들에 대해 확신 있게 말하곤 했는데, 그런 확신은 그에게 매혹과 경계심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나는 학생들이 날씨와 영화에 대해 잡담을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하시는 일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들은 ‘기도 일기’에 대해 말했고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 같은 표현들을 썼지요. 내가 사는 곳에서 누가 그런 말을 한다면 금세 천장이 내려앉고, 집에 불이 나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