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1세대는 일제강점기 때 건너간 조선인이고, 2세대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태어난 조선족 중국인이다. 3세대는 문화대혁명을 겪지 않은 이른바 ‘70후(後)’ 이후 세대로 개혁·개방의 물결과 함께 자라 이념의 틀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국제 감각도 지녔다.”

“1993년 길림성 중부의 작은 도시 메이허커우(梅河口)에서는 경사가 났다. 그곳의 조선족 학생이 길림성 대입 시험에서 문과 수석을 차지한 것이다. 장춘이나 길림처럼 대도시도 아니고, 연길처럼 조선족이 많은 곳도 아니어서 놀라움은 더했다.”

“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에서는 한 반의 30명 중 유일한 소수민족이었다. 고향의 조선족학교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콤플렉스를 경험했고 정체성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정법(政法)대 석사과정을 다니며 변호사 자격증과 법학석사 학위를 땄다. 졸업 직전부터 1년 반가량 로펌에서 일했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던 중 친구가 일본 유학을 권했다. ··· 2000년 12월 도쿄대 법학정치학연구과에 외국인 연구생으로 입학했다.”

“도쿄대에서 연구원으로 박사후과정을 보내던 중 서울대에서 제의가 왔다. 중국과 일본의 법률을 함께 강의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선배의 권유에 따라 지원서를 냈고 2011년 초 조교수로 임용됐다.”

강광문 교수는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KCN)에 관여하며 계간지 ‘맥(脈)’의 발행을 돕는가 하면, 2011년에는 예동근 부경대 교수 등 국내 거주 조선족 3세 12명의 이야기를 담은 ‘조선족 3세들의 서울 이야기’를 함께 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