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감은 눈 위에 꽃잎이 내려 앉으면 / 네 눈 속에 꽃이 피어난다.

네 감은 눈 위에 햇살이 내리면 / 네 눈 속에 단풍나무 푸른 잎사귀들이 살랑거린다.

네 감은 눈 위에 나비가 앉으면 / 네 눈동자는 꽃술이 되어 환하게 빛나고 있을까.

먼 항해에서 돌아온 배의 노처럼 / 네 긴 속눈썹은 가지런히 쉬고 있다. / 가끔씩 배가 출렁이는지 / 넌 가끔 두 주먹을 꼭 쥐기도 한다.

네 감은 눈 속에 눈이 내리면 / 나는 새하얀 자작나무숲을 한없이 헤매고 있을 거야. / 지친 발걸음이 네 눈동자 위에 찍힌다.

네가 눈을 뜨면 내 눈은 까맣게 감기고 말 거야.

나는 너를 채우고 너는 내게서 빠져나간다. / 우리는 번지면서 점점 뚜렷해진다.

_ 신철규, “데칼코마니”,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