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배꼽 / 그 구멍 속에는 / 실물대(實物大) 호랑이 가죽에 / 석필(石筆)로 쓴 한 비전(秘傳)이 들어 있는데 / 옛날에 그걸 꺼내 본 사람이 어떤 뒤에 / 그 내용을 입김으로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시를 쓴다는 사람이 / 오로지 저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고, / 일견 그렇듯해 보이는 작품이 대부분, / 거기 들어 있는 감정이며 / 알량한 앎이며가 대부분 / 실은 자기 과시에 지나지 않는(!) / 그런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 그런 사람이 만일 자의에 타의 뇌동으로 / 시인 행세를 한다면 / 그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 가짜 시인이니라.
_ 정현종, “한 비전”, <그림자에 불타다>, 문학과지성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