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더럴 다이어리」(The Adderall Diaries, 2015, 파멜라 로만노프스키)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어릴 적 일탈을 폭력적으로 교정하려 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거칠고 힘든 삶을 살지만, 마지막에 아버지는 자신은 그저 아들을 폭력적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애썼을 뿐이라며 울먹인다. 결국 부자는 화해하나, 비극은 이미 한참 진행된 뒤였다. 셰익스피어의 『오델로』는 기억의 미망이 빚은 대표적 비극이다. 오델로는 새로운 선택들 앞에서 번번이 이아고가 쳐놓은 그물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거니와, 데스데모나에 대한 애틋한 기억들은 하나하나 오델로의 의심을 정당화시키고 현실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어둡게 편집되며, 기어이 참극은 찾아오고 만다. 실은 유혹에 빠져드는 일이란 유혹의 덫을 놓는 것 못지않게 얼마나 달콤한 일인가. 세상은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보밖에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기억의 기만이란 그물을 촘촘히 쳐놓고 바보 프레임에 자청해서 갇혀 그 안에서 편안해 한다. 실패는 모든 성공들보다 훨씬 집요하게 우리의 기억을 파고들어 머물며, 무수히 들었던 칭찬도 상처받았던 비판 한 마디를 상쇄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기억이다. 그리하여 치유란 요란한 심리상담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사로잡힐 필요가 없는 스스로 쳐놓은 미망을 그저 벗어나면 완성되는 것이다.”(고세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