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푸코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프랑스에서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에 관해서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때였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소설 <나자>의 신비로운 주인공이 미친 여자로 취급되어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정신과 의사들이 정의하는 광기는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우연히 <광기의 역사>를 읽은 것이 푸코의 세계로 들어간 출발점이었다. 그 후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 강연인 <담론의 질서>,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 <말과 사물>, ‘감옥의 탄생’이라는 부제가 붙은 <감시와 처벌> 등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공부하던 프랑스 문학에서와는 아주 다른 새롭고 충격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중략) 내가 초현실주의를 좋아하게 된 동기가 ‘삶을 변화시키자’는 랭보의 명제와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종합하려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시적 혁명 때문이었는데, 그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전복적 사유와 한계 경험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푸코의 삶은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6~7. 결국 내면의 갈등과 근원적 욕망의 추동으로, 짐을 싸들고 파리로 올라간 것은, 아마도 푸코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파리에서 만난 지도교수 때문에 논문주제를 바꿀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논문 계획서를 갖고 씨름하던 중,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이 푸코의 책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만약에 프로방스를 떠나지 않고, 처음에 계획했던 주제를 발전시켜 그대로 연구를 진행했다면, 아마도 푸코를 알지 못했거나, 알게 되더라도 피상적인 이해에 멈췄을 것이다. (중략)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면서 푸코를 읽음으로써 내가 변화했다는 것을, 또한, 그의 책이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들’ 만큼의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7. 1983년 초에 귀국하여 2년쯤 지나서 “미셸 푸코, 지식과 권력의 해부학자”라는 제목의 글을 시작으로 1990년대 말까지 몇 편의 논문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한 10년쯤 연구를 중단하다가 2011년 8월에 정년퇴임한 이후 1년 반 동안 집중적으로 푸코에 관해 5편의 논문을 쓰고, 이전에 쓴 논문들을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 수정작업 중에 폐기처분한 글이 두 편 있었고, 어떤 글은 완전히 새로운 논문으로 탈바꿈해서 본래의 모습이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그 논문이 “고고학과 계보학”이다. 결국 12편의 논문들 중에서 6편은 퇴임 전에, 6편은 퇴임 후에 썼다고 할 수 있으니까 이 책을 쓰는 데 걸린 시간 혹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데 소용된 시간은 30년쯤 되는 셈이다.

_ 오생근, <미셸 푸코와 현대성>, 나남,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