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208. 그의 시세계의 중요한 변화는 5번째 시집인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이후 나타난 ‘극서정시’의 경향이다. ‘극서정시’란 시 속에서 드라마처럼 인간의 정신이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서정의 제한된 틀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의 양태를 다양하게 파악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여기서 ‘변화’란 추상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자신의 관념을 체험으로 용해시키는 육화의 과정이다. 이후 펼쳐진 그의 많은 여행은 관념을 형상으로 바꾸어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이려는 탐색과 고행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08. 그가 보여준 또 하나의 중요한 성과는 1982년에 시작되어 1995년에 종결된 「풍장」 연작이다. 이 시는 4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에 이르는 한 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시그이 변화 과정을 담은 보고서다. 시인은 죽음을 명상함으로써 오히려 생명의 신비로움과 살아 있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의 주제로 오랫동안 시를 쓰는 과정에서 삶과 죽음을 대하는 지혜를 얻은 것이다.

222. 황동규의 「풍장」 연작은, 14년이라는 시간적 숙성의 기간에 있어서, 그리고 70편으로 구성된 작품의 질량과 시적 품격에 있어서, 우리 현대 시사에 중요한 획을 긋는 빛나는 성취다. 이 시편들은 표면적으로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삶의 문제, 생명의 문제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시인 자신이 연작을 끝내면서 “초월은 결국 초월을 하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14년이 걸렸다”고 말한 것처럼 「풍장」 연작은 삶과 죽음의 분별을 넘어서서 삶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229~230. 시인은 1997년 1월 오른쪽 귀의 진주종 수술을 받았다. 네 시간 반에 걸친 큰 수술이었고 그 후유증으로 안면신경마비가 와 재입원하기도 했다. 퇴원 후 베란다의 날을 보니 그동안 돌보지 못해 그런지 흑반이 잔뜩 끼어 시들고 있다.

244. 1970년대 후반 이후 극서정시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시 속에서 드라마처럼 인간의 정신과 행동에 변화가 일어난 양상을 시로 표현함으로써 기존 서정의 틀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체험의 층위에서 인간 존재를 파악하려는 작업을 전개했다.

244~245. 1982년에 시작되어 1995년에 종결된 「풍장」 연작은 단일한 주제로 일관한 연작의 모범적 전례를 남긴 성과로, 4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에 이르는 정신적 원숙기에 삶과 죽음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어떠한 변모와 심화의 과정을 거치는가를 보여주었다.

_ 황동규, <삶을 살아낸다는 건>, 휴먼앤북스,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