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 우리의 제도의 가장 해로운 결함을 요약하는 끔찍한 어휘가 있다. 그것은 시험공부라는 말이다. (중략) 다시 말해서 시험과 등수에 연연하는 것이다. 더욱 나쁜 것은 단순히 교육의 가치를 검증해보는 시금석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이후로는 모든 교육이 그쪽으로 지향하고 있다.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지식을 습득하게 하고 시험제도가 그것을 잘 습득했는가를 평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시험을 준비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서커스에서 재주를 부리는 개는 많은 것을 아는 개가 아니라 미리 선택된 연습을 통해서 알고 있는 듯한 환상을 주도록 훈련된 개이다.

240. “우리 중등교육의 모든 학습 프로그램은 폴리테크닉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라고 어떤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241. 요행에 대한 믿음(왜냐하면 시험관의 양심이 아무리 공정하다고 해도 시험은 본질적으로 우연적인 성격이 강하다. 피에롱과 로지에가 한 흥미롭고도 끔찍한 조사, 대학의 고위직자들에 의해서 조심스럽게 은폐된 조사를 상기해주기 바란다. 그것은 시험관에 따라서, 게다가 같은 시험관이라도 시험보는 날에 따라서 평가점수가 우려할 만큼 다르다는 것을 밝혀냈다)

242. 나는 여기에서 매우 단순하고 처음부터 적용하기 쉬운 제안을 해보겠다. 내 동료들처럼 나도 답안지를 채점하고 지원자에게 구두시험을 보게 했다.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틀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아주 잘 쓴 답안지와 중간 정도 쓴 답안지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가. 내가 생각하기로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문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시험관이 역사나 철학이나 또는 수학의 답안지를 20점 만점에 13.25점을 주고 다른 것은 13.50점을 준다면 나는 아무리 공손하게 하려고 해도 웃기는 일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한 인간이 역사 논술이나 수학문제 설명의 가치를 1.2퍼센트 정도 차이를 두고 평가할 정도로 정확한 균형을 가질 수 있는가? 우리는 - 다른 여러 나라의 예를 따라서 - 평가단계를 즉시 동일한 다섯 개의 큰 범주로 나눌 것을 간곡하게 요구한다. 1점 또는 “아주 나쁨”, 2점 또는 “나쁨”, 3점 또는 “괜찮음”, 4점은 “좋음”, 5점은 (”완벽함”이 아니라) “매우 좋음(인간적 한계 때문에 완벽함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동점자가 나와도 크게 문제가 없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그렇게 해야 한다. 몇몇 한정된 자리를 위한 경쟁시험의 문제는 수학자에게 연구하도록 맡겨야 한다. 그 경우에도 지나치게 어렵지는 않아야 한다. 우리는 그것에 너무 오랫동안 습관이 되어 그 부조리함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부당함으로 변하는 어리석은 짓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_ 마르크 블로크, “교육개혁에 대하여”, <이상한 패배>, 까치,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