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필이 처음 두각을 나타낸 것은 임헌정이 지휘봉을 잡은 지 1년 만인 1990년이었다. 그해 제2회 교향악 축제에서 부천필은 브람스 교향곡 3번을 연주했다. ‘임헌정의 사운드’ 정도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브람스의 사운드’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괄목(刮目)하지 않고는 상대(相對)할 수 없는 오케스트라가 된 것이다. … 부천필이 전곡 연주한 말러와 브루크너 교향곡은 이전 한국 무대에서는 매우 듣기 힘든 레퍼토리였다.

인문학을 이해하면 음악을 해석하는 능력이 달라집니다. 해석이 안 되면 음악가가 아니고 그냥 ‘쟁이’일 뿐이에요. 말러 교향곡 8번 2부가 파우스트입니다. 그걸 연주하려면 파우스트를 읽어야 하는 거죠. … 연주자의 인품과 성장배경도 모두 소리로 나타납니다. 그게 바로 장인(匠人)과 테크니션의 차이입니다.

달고 짜고 자극적인 음악만 들으면 정신이 피폐해집니다. 세종대왕도 악(樂)을 바로잡아야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했잖습니까. … 악(樂)과 약(藥)은 풀 초(草)자 하나 차이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