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은 경제사회적 개념인 동시에 심리적인 개념이다. …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답한 사람이 6개월 만에 74%에서 28%로 급락할 수 있는가? 그럴 수도 있는 게 바로 한국의 중산층이다. … 실제로 2006년 한국종합사회조사에선 월소득이 500만원대인 사람 중 26.6%가 자신이 하위 계층이라고 답한 반면, 400만원대인 소득 계층에선 그 비율이 5.1%에 불과했으며, 100만원 미만 소득계층에선 61%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평가했고, 36.5%만이 하위 계층이라고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삶의 만족감은 이웃과의 비교로 결정된다는 이른바 ‘이웃 효과’는 한국인 삶의 전 국면을 지배하고 있으며, 특히 상층지향성이 높은 동시에 하층으로의 전락을 두려워하는 중산층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 중산층 행태의 본질은 ‘키치’다. 키치란 19세기말 유럽의 급속한 산업화로 생겨난 중산층이 귀족의 예술적 취향을 흉내낸 데서 비롯된 개념이다. … 최근 국립국어원이 키치를 대신할 우리말 순화어로 ‘눈길끌기’를 선정한 건 바로 그 점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예술을 스스로 즐길 만한 감식안이 없기 때문에 예술을 남들의 눈길을 끄는 용도로 소비하는 것이다. … 스스로 즐기기보다는 남과의 구별짓기가 우선적인 목적인 까닭에 빚어지는 일이다. 와인, 고급예술 열풍은 웃어 넘길 수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건 ‘나도주의(me-tooism)’로 인해 가족의 삶 자체가 피폐해지는 경우다.”
“대한민국에 대한 불만보다는 상류층에 편입하려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전 인구의 한 자릿수밖에 안 되는 상류층의 이해관계가 다수결의 원리로 관철되는 희한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마치 서울대를 개혁하자고 하면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중산층 학부모다 자기 자식 서울대 보낼 생각에 서울대 개혁론에 반대하거나 시큰둥해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옳고 아름다운 거대담론과 더불어 생활밀착형 담론도 꽃을 피우면 좋겠다. 포로수용소에서의 탈출을 꿈꾸지만 아무런 길이 없다고 자포자기한 중산층이 많기 때문이다.”
– 강준만(한겨레21, 080228). “중산층은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구별짓기와 나도주의로 상류 가치를 지향하는 키치 왕국의 주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