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습한 두려움의 이유는 “위험 앞에서의 자기 확신”이었다. 우리는 영웅을 꿈꾸나 그들의 종국은 미화된 파멸이다. 홀로는 아무 것도 못한다. 리더십은 팔로워십을 전제하며, 팔로워십은 개인이 예비할 수 없는 무수한 여건을 당위로 간주해야만 기대할 수 있다. 남자다운 사울보다 위태로운 다윗이 평안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2010. 8. 22)

2. 우선 역량(arete)이 전제되어야만 구조(규정과 시스템) 개혁의 동무들을 얻을 수 있다. 근소한 우위의 학력과 학벌을 거들먹거리며 처우 개선 운운하는 것은 경멸과 반감만 부추긴다.(2010. 10. 28)

3. 역량의 신장에 조바심 내는 까닭은 자아를 폄훼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엑셀, 통계, 전산 따위의 ‘자기계발’ 목록이 불어나 경영공학과에 기웃거리는 교육학도를 낳아 놓는다. 정체성이 흐릿해지고 직무가 요하는 기예의 터득에 착념하는 것, 이것이 스펙을 갖춘 ‘만들어진 인재’로 변질되는 단초이다. 그러나 과연 기계가 인재인가.(2010. 11. 16)

* 하나님과 선생님께 진정으로 사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