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의 경험으로도 가장 열심히 공부한 것은 고교 2학년(18세) 무렵이었다. 당시 나의 하숙에는 동급생인 데라다 준조가 있었다. … 내 일생에서 데라다만큼 나를 바짝 조였던 사람은 없었다. 그야말로 나의 개인교사였다. 학교에서 하숙까지는 산길을 40분 정도 걸어 다녔다. 우리들은 자주 같이 돌아왔지만 일주일에 몇 번은 ‘오늘은 하숙에 도착할 때까지 독일어 이외에는 사용하지 말자’고 그는 나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나는 그런 연극 같은 짓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내 독일어는 회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발음을 수정당하고 틀린 문법을 계속해서 지적당했다. 그러나 이는 개인 교습의 시작에 불과했다. … ‘우리 두 사람은 같은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논의하고 있는 책 - 高田保馬, <社会と国家>, 岩波書店, 1922 / 尾高朝雄, <国家構造論>, 岩波書店, 1936 - 을 읽고 있으므로 이야기해 보자.’ 데라다가 이렇게 말을 꺼내 우리는 저녁 식사 후에 두 사람 방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몇 번이고 오랜 시간 이야기 했다. … 연전연패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그와의 경쟁이 없었다면 현재의 나는 절대로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 나는 다카다 야스마, 아오야마 히데오, 야스이 다쿠마와 같은 대학시절 선생의 지도를 받아 성장한 것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이러한 선생들 앞에서 데라다에게서 배운 대로 했을 뿐이었다. … 이야기가 완전히 벗어나고 말았지만 내가 여기에서 주장하는 바는 교육의 열매를 가장 크게 거둘 수 있는 시기는 10대 후반이며, 이는 교실에서 하는 정규교육보다는 친구와의 상호 자극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같은 나이 또래에 이러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은 대단히 필요한 일이다.”(森嶋通夫, 1999: 137~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