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things to win the hidden rules of the Economy
1. “죄수의 딜레마, 공유지의 비극, 집단행동의 문제는 사회적 딜레마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사회적 딜레마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집단적 합리성과 개인적 합리성이 서로 다를 때 또는 전체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다를 때, 바꿔 말하면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는 사회적 딜레마라고 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대부분이 사회적 딜레미입니다. 개인의 이익과 전체 이익은 똑같은 경우가 별로 없는데 똑같게 만들어놓은 게 시장의 논리입니다.”(62~63)
2. 죄수의 딜레마, 사슴사냥게임, 치킨게임. “사실 딜레마 게임은 이 세 가지 밖에 없어요. 1, 2, 3, 4를 갖고 숫자를 배치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그 중에 사회적 딜레마를 나타내는 게임은 이 세 가지 밖에 없습니다. 이 세 가지만 알면 사회적 딜레마의 기본적 구조는 다 아는 거예요.”(82~83)
3. “사교육이 바로 죄수의 딜레마입니다. 상대방이 사교육을 안 시키면 내 아이만 시켜서 성적을 올리겠다. 이런 생각이 들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다 사교육을 시켜요. 내 아이만 안 시키면, 성적이 떨어지겠죠. 실제로 떨어지지 않더라도 그렇게 믿으면 성립하는 겁니다.”(68)
4. 인류생태학자 하딘(Garrett James Hardin, 1915~2003)이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공공의 이익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 <공유지의 비극 The Tragedy of the Commons>은 “1968년 12월 31일자 <<사이언스>>에 실렸던 … 논문의 제목이었으나 이제는 개념으로 쓰인다. 공동체의 모두가 사용해야 할 자원을 시장의 기능에 맡겨두면 이를 남용해 자원이 고갈될 위험이 있어 국가의 관여나 이해당사자가 모여 일정한 합의를 통해 이용권을 제한하는 제도를 형성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5.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오스트롬(Elinor Ostrom, 1933~)은 <공유의 비극을 넘어 Governing the Commons>를 통해 하딘이 제기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안하였다. “어장이나 목초지의 예에서 보듯이 공유재 이용자들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는데, 공유재 관리의 성패 여부는 이러한 상호의존 관계의 구성원들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상황’으로부터 ‘상호 조율된 전략을 채택하도록 하는 상황’으로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오스트롬은 보았다.”
6. “죄수의 딜레마에서 남이 협력하는 데 내가 배반하는 것은 탐욕(greed)이에요. 자기 배반이에요. 그런데 남이 배반할 때 내가 배반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예요. 내가 착해도. 그래서 이건 공포(fear)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사슴사냥게임에서는 협력에 대한 배반의 이익이 없어요. 상대방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는 게 이익이에요. … 이 경우는 분명히 희망이 보입니다. 오스트롬이라고 하는 학자가 공유지의 비극을 평생 연구했다고 했잖아요. 여성이고 정치학을 전공했는데,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어요. 실제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50대예요. … 애를 네 명이나 키웠어요. 애 넷 다 키우고 공부 시작해서 20년 만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분이 이 문제에 해당하는 전 세계 문헌들을 다 보았습니다. 공유지라는 것은 전 세계에 오랜 역사 동안 있었던 거예요. 가령 공유삼림, 공동우물, 이거 다 공유지예요. …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전 세계 언어로 다양한 방법으로 씌어 있는 걸 모두 보고 그걸 유형화해서 분류를 합니다. 옛날부터 그것에 대한 문헌이 많이 있어요. 경제학을 한 건 아니지만 옛날 사람들도 이렇게 저렇게 해야 된다고 써놓은 게 많아요. 일단 역사 공부를 하고 그 다음에는 바로 이 게임이론을 가지고 그 사람들의 행동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는데, 이 사람의 전략이 바로 죄수의 딜레마를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꿔놓는 겁니다.”(79~80)
7. “치킨게임을 사슴사냥게임으로 유도하는 게 햇볕정책입니다. 한국이 협력한다는 정확한 신호를 보내요. 그러면 북한도 협력하는 게 이익이에요. 사슴사냥게임에서는 분명히 그렇지요. 한국이 배반하면 북한도 배반해요. 그러나 한국이 협력하는 한 북한이 계속 협력하는 게 자기한테 유리하다는 걸 알아요. 그게 햇볕정책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협력의 이익보다 배반의 이익이 더 크다면 어떨까요? … 그러면 게임은 치킨게임으로 바뀌고, 치킨게임으로 가면 미친 놈이 이겨요.”(86~87)
8. “사회적 딜레마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똑같은 걸 갖고 있는데, 협력이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협력하는 경우가 이기적으로 경쟁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갖는 게 사회적 딜레마 게임입니다. 그런데 협력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특히 집단행동의 딜레마까지 합쳐서 거기에 관여하는 경기자가 굉장히 많아지면 어려워요. 집단이 관여하면, 특히 국가라는 이름으로 관여하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 우리만 열심히 탄소 줄이면 뭐해. 중국이 막 배출하는데. 바람만 불면 우리한테 다 날아오는데.”(87~88) 맨슈어 올손(Mancur Lloyd Olson, Jr., 1932~1998)이 <집단행동의 논리>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집단의 크기가 클수록 무임승차의 유인이 증대”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