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없는 문헌에, 나는 무슨 피를 담았던가.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2012년까지 자사고 100곳과 기숙형 공립고 150곳, 마이스터교 50곳을 개교한다는 계획에 따라 추진돼왔다.”
ㆍ1983 경기과학고, 2012. 12 과학고 발전방안, 2014 과학고 신입학생 조기졸업 제한 20%
ㆍ1984 대원ㆍ대일외고, 2011 자기주도학습전형, 울산외고(아랍어)ㆍ충남외고(베트남어), 광주ㆍ세종
ㆍ2002 민족사관고ㆍ현대청운고ㆍ포항제철고ㆍ광양제철고, 2003 상산고
ㆍ2009 북일고ㆍ김천고, 2010 하나고ㆍ외대부고, 2011 인천하늘고
ㆍ2003 부산과학고 영재 1기 선발, 2005 부산과학고 한국과학영재학교로 변경, 2009 KAIST 부설 전환
ㆍ2013. 10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 발표
“인생은 한번 뿐이고, 너의 인생도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네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마치 너의 행복이 달려있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너의 행복을 찾고 있구나.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행하는 일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너의 남은 생애를 허비하지 말라. 너는 네 자신을 학대하고 또 학대하고 있구나. 그것은 네 자신을 존귀하게 할 기회를 스스로 없애버리는 것이다. 너는 왜 너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냐? 그럴 시간이 있으면 네게 유익이 되는 좋은 것들을 더 배우는 일에 시간을 활용하고, 아무런 유익도 없는 일들에 쓸데없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것을 멈추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맥스 루케이도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
에드윈 토마스 부스와 존 윌크스 부스. 1863년, 형제는 ‘줄리어스 시저’를 공연했다. 브루투스 역을 맡았던 존은 2년 후, 4월 포드 극장에서 링컨을 암살하였고, 그날 밤 에드윈은 무대를 떠났다. 그 뒤 뉴저지의 어느 기차역. 한 청년이 승강장과 기차 사이로 떨어지자 에드윈은 즉각 청년을 끌어올렸다. 에드윈은 이후 편지를 받고 알게 되었다. 자신이 구한 사람이 링컨의 아들 로버트 테드 링컨이란 것을. 역사상 최고의 햄릿은 그렇게 무대로 복귀하였다.
Otto Neurath, Protocol Statements, 1932/33
그는 우리 인간이 지식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를 타고 있는 항해자들과 같다. 배에 물이 새는데 육지로 올라가서 선박 건조대에서 배를 해체하고 최상의 부품으로 다시 건조할 수 없고, 바다 한가운데 떠서 자신들의 배를 고쳐야 하는 처지이다.”
떠다니는 배의 모습은 지식에 확실한 토대가 없음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가라앉지 않고 떠 있다는 것은 배를 구성하고 있는 나무 조작들이 서로 어느 정도 잘 맞아들게 짜여 있다는 뜻입니다.
토대주의에서는 지식의 정당화를 확실한 기초 위에 건물을 세우는 작업에 비유한 데 반해 노이랏의 정합주의에서는 물이 크게 새어들지 않도록 해 배가 계속 떠다닐 수 있게 하는 작업과 같다고 봅니다. 어떤 막연한 진리보다는 우리가 실제로 이루어낼 수 있는 일관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배의 이미지는 관측의 이론적재성과도 바로 통합니다. 노이랏의 배는 특별한 부위들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론을 나타내는 나무 조각들과 실험을 나타내는 나무 조각들이 그냥 다 같이 섞여서 짜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면 이론의 검증이란 그 체제 내부의 일관성을 확인해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고,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평가하는 과정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배에서는 일관성을 지킬 뿐만 아니라 배를 수선하는 진보도 이루어갑니다. 노이랏의 비유는 배가 완벽하지 못하고 물이 새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고치지 않고 그냥 놔두면 결국 침몰한다는 이미지는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항상 절실하게 느꼈던 노이랏이 가졌을 만한 것이지요. 배를 고쳐서 더 물 샐 틈 없도록 한다는 것은, 정합성을 더 높인다는 의미입니다.
_ 장하석, <과학, 철학을 만나다>, 지식플러스, 2014.
《장자》 〈양생주 養生主>편. 위나라 왕 문혜군이 포정의 솜씨에 감탄하여 묻자, 포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도(道)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만 보여 손을 댈 수 없었으나, 3년이 지나자 어느새 소의 온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감각을 멈추고 소의 몸이 생긴 그대로 따라갑니다. 천리(天理)를 따라 쇠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의 커다란 틈새에 칼을 찔러 넣고 빈 결을 따라 칼을 움직입니다.”
“솜씨 좋은 소 잡이가 1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소 잡이는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이는 무리하게 뼈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칼은 19년이나 되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날을 움직이는 데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19년이 되었어도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근육과 뼈가 엉긴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그 일의 어려움을 알고 두려워하여 경계하며 천천히 손을 움직여서 칼의 움직임을 아주 미묘하게 합니다. 살이 뼈에서 털썩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칼을 든 채 일어나서 둘레를 살펴보며 머뭇거리다가 흐뭇해져 칼을 씻어 챙겨 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