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11~12. 2012년에 발표된 미국 일리노이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9ㆍ11 테러와 관련된 연구 결과가 좋은 답이 될 것 같다. 연구팀은 1차 실험에서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로 향하는 사진을 보여준 뒤 세계무역센터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세워진 이슬람 커뮤니티 센터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여기서 진보파와 보수파의 견해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한다. 2차 실험은 다른 지원자를 대상으로 하되 한 가지를 추가했다. 건강 유지와 관련된 세 차례의 질문에 연속해서 대답하게 만든 것이다. 이때 한 그룹에는 “왜?”라고, 다른 그룹에는 “어떻게?”라고 물었다. 그 결과 “왜?”에 답변한 그룹은 이슬람 커뮤니티 센터에 대해 좀 더 온건한 견해를 갖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파와 진보파의 답변이 서로 근접한 것이다. 이와 달리 “어떻게?” 그룹에선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왜?’라는 질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자신과 반대되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추상적 사고를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어떻게?”라는 구체적인 질문은 당장 눈앞에 있는 특정한 대상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13. 미국 야구계에 떠도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이론은 칫솔과 같다. 모든 이들은 각자 자기만의 이론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이론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69. 대학원생들에게 월급을 조금 주면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공부를 위해서 하는 일이므로 월급이 없더라도 만족한다”고 말하지만, 월급을 올려주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불평이 많아지는 것도 같은 경우라 볼 수 있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당시 미국 심리학회를 폭풍처럼 강타했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걸 드라마틱하게 증명해보였기 때문이다. 페스팅거는 “실제로 인간의 행동은 보상 이론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없다. 인간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위선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단히 놀라운 정신적 활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114~115. 1889년 3월 31일 프랑스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해서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 조직위원회의 요청으로 완성된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의 에펠탑은 320.75m의 높이로 강철 대들보에 의한 건물이라는 선축의 신시대를 선언하는 동시에 강철의 무한한 잠재력을 과시했다.
_ 강준만, <소통의 무기>, 개마고원, 2017.
“종교는 인간에 의해 수용되고 신에 의해 무상으로 주어진, 하나의 확실성이다. 그것은 계시된 것이다.” 예술 또한 “인간 자신의 의미를 찾게 해주는 어떤 분명한 확신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러한 확신에 근거하여 인간은 자신의 삶 전부를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확실성을 스스로 쟁취하거나 직접 만들어내지 않으며, 이 신념 자체를 정당화되거나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기 고유의 증거를 갖지 못한다.” 반면 철학은 “근본적이고 보편적이면서도 자율적인 확실성이다. 다시 말해서 철학은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그것은 자신의 타당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면서 증명한다. 철학만이 입증을 추구한다. 철학은 항상 자신의 확실성의 근거를 갱신한다.”(20~21)
“최초의 인간은 주변 사물에 대해 궁금해 했으며, 그러고 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궁금해했다.” 철학은 인간과 동떨어져 단독적으로 있는 듯한 사물에 대해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 시작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완전히 새로운 태도이며, 신화적인 태도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관상적 태도라 부를 만하다.” 이러한 관점은 역사상 처음으로 희랍에서 등장했으며, 그때부터 “철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생겨났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사물만이 참이나 거짓일 수 있다. 사물들의 진리에 대한 이러한 깨우침의 가장 오래된 형식이 경이驚異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철학의 뿌리다.”(23~24)
“철학사는 철학자들의 견해들에 관한 박식한 서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실재 내용을 제대로 상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사는 틀림없이 철학이다.” 각각의 철학 사상은 “선행하는 모든 체계들을 필요로 하고 포함”하기 때문에, 철학은 “모든 철학 체계들의 참된 역사로 이루어진다.” 다른 관점에서 봐도 “각각의 철학 체계는 최고 실재, 즉 완전한 진리를 오직 자기 자신의 밖에서만, 다시 말해서 그 체계를 계승하려는 철학자들의 사유 속에서만 성취한다. 모든 철학함은 과거의 총합에서 유래하여 미래로 나아가며, 그리하여 철학사를 진척시킨다. 요약하자면 이것이 철학은 역사적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다.”(25~26)
칸트는 전통적 사변 형이상학이 “어떠한 가능한 경험도 넘어서 있는 대상들 ― 영혼, 세계, 신 ― 에 대한 실재적인 앎을 선험적 사유로 얻으려는 시도”이기에 헛되며, 그러한 앎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476) 그러나 형이상학은 “절대자를 향한 인간의 본성적 경향으로서 계속 현존한다. 그리고 형이상학의 대상들은 칸트가 이념들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이러한 이념들은 “직관에 대해 열려 있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규제적인 효용”만을 갖는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이 불멸할 것처럼, 자신이 자유로운 것처럼, 신이 현존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초월적 이념들의 “절대적이고 무제약적인 타당성”은 “실천이성의 요청들로서 다시 등장한다.”(477)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정신이 철학의 시원에 이르는, 정신의 내재적 변증법을 설명한다.” 헤겔은 “단순한 서술과, 내가 사물들에 대한 개념들을 가지는(실재적 앎이 있는 학學의 상황) 개념적 앎을 구별한다. 그러나 절대적 앎은 여전히 요구된다. 절대적 앎은 모든 것을 포섭하는 앎이다. 절대적 앎이 되려면 그것은 어떠한 것도, 오류조차도 자기 외부에 남겨놓을 수 없다. 그것은 오류로서의 오류를 포함한다. 역사는 인간 정신의 모든 요소들, 즉 진리의 관점에서 볼 때 오류로 등장하는 요소들까지도 포함해야 한다.”(517) 변증법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의 필연적인 이행이 있고, 각 단계는 이전 단계의 진리를 포함한다.” 각 단계는 “보존됨과 동시에 극복된다.”(518)
_ 훌리안 마리아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유유, 2016.
단순한 대입제도를 지향했으나 2022학년도 수능은 지금보다 더 복잡해졌고, 대입에서 학생들의 선택 폭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현재의 수능 점수체제도 복잡한데, 2022학년도 수능은 공통과목 + 선택과목 조합 형태로 바뀌었다. 국어 2과목 중 택 1, 수학 3과목 중 택 1, 탐구영역 17과목 중 택 2라는 복잡한 응시 영역 조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점수 체계도 절대평가 등급, 상대평가 표준점수와 변환표준점수, 백분위까지 섞이게 되어 대학들은 매우 복잡한 환산 공식을 만들 수밖에 없다.
선택과목에 따라 합격과 불합격이 달라지는 현 수능 점수체제는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 수능 원점수의 변환에 따른 왜곡, 탐구영역 등 선택과목에서의 특정 과목 쏠림 현상, 인위적인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문항에 따라 서로 다른 배점을 부여하고 지엽적인 내용을 꼬아서 출제하는 관행, 대학마다 서로 다른 복잡한 수능 점수 환산 방식, 이것들도 입시를 복잡하게 만든다.
해결책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협력 체제 구축에 있는데, 정부의 대책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분절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의 수시모집 면접 방식을 공통문항 출제 방식에서 탈피하여 학생부 기록을 확인하는 “학생부 기반 학생 맞춤형 면접”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래야 학생부 기록과 평가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학교 밖에서 사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기록의 진위를 다수의 교사가 학교 내에서 자체 검증하는 제도적 장치를 당장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성취평가제는 상위권 대학의 교과 전형을 종합평가 방식으로 전환하게 만든다. 학점제는 수능이라는 국가 주도 표준화 시험과 어울리지 않는다. 현행 방식의 대입제도는 유지될 수 없다. 비록 지금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지만, 학생부종합전형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진화해갈 것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현 대학입시에서 학교의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전형요소는 학생부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창의적 사고력과 자기주도적 학습역량은 수업 혁신을 통해 길러질 수밖에 없고, 수업 혁신과 맞물리는 대입 전형요소는 학생부이며, 학생부는 종합적 평가 방식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각 교육청이 고교-대학 연계 포럼을 운영하여 대학과 고등학교가 직접 소통하는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대학이 정하는 방식은 민주적이지 않고, 국민에게 묻는 공론화 방식은 효율적이지 않았다. 새로운 민주적 절차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먼저 교육과 평가의 주체가 만나는 고교-대학 연계 포럼을 구성하여 학생부 기록과 평가의 일체화를 추진해야 한다.
논의의 첫 단계는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의 통합이다.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의 통합에 대하여 대학은 전형 기간이 부족하거나 학생을 선발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 문제들은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반면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이 분리된 현실에서, 더 좋은 학교 교육을 위한 선생님들의 노력은 입시라는 장벽에 부딪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학교 교육을 마무리한 후에 대학입시를 시작하자. 그래야 학교가 학교다운 학교가 될 수 있다.
_ 김경범,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을 통합하자!“, 2019. 1. 2.
184.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사회주의권의 해체에 따라 북한은 위기에 처했고, 1994년 김일성 사후 총체적 위기가 더욱 심화되었다. 북한은 먼저 국가생존을 위해 핵무기 개발정책을 폈고, 이를 이용하여 1994년 북미 간 제네바합의를 통해 경제지원 및 안보에 대한 보장을 받고자 했다. 그러나 일견 성공적이었던 핵개발 카드도 2002년 재발한 ‘제2차 북핵위기’에서 보듯이 북한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사가 되었다. 북한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나서는 한편, 세 차례의 핵실험(2006년 9월, 2009년 5월, 2013년 2월)을 강행하기도 하였다.
188. 북한 지도층은 특히 1989년 12월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의 급격한 몰락을 지켜보면서 체제안보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에 대한 절대적 통제를 무엇보다도 중시하게 되었다.
189. 선군정치는 김정일의 통치방식으로 부각되었고, 마침내 2009년 4월 9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 회의에서 개정된 헌법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제3조)고 ‘선군사상’을 기존의 주체사상과 병기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2010년 9월 28일 조선로동당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도 당규약을 개정하고 “선군정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확립하고 선군의 가치밑에 혁명과 건설을 령도한다”라고 명시하였다. 이렇듯 선군정치는 위기에 직면한 북한의 생존전략이었다.
209. 1991년 걸프전쟁에서 미국 등 다국적군의 첨단 무기체계와 작전술은 옛 소련형 무기와 전법의 구태의연함을 일깨워 주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경제적 부담이 큰 재래식 군사력의 현대화보다 상대적으로 값싼 전략무기의 확보에 힘쓰게 되었다. 북한은 결국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억지력 증강이라는 비대칭적(asymmetric) 군비경쟁을 전개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의 방위공약 약화를 우려하여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던 1970년대의 한국에 비해 더 막중한 안보 위협에 직면한 1990년대의 북한이 핵개발에 나선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210.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로 핵시설들을 동결했다. 그러나 2002년 10월 미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비밀계획을 갖고 있다고 비난함으로써 제2의 북핵위기가 비롯되었다. 미ㆍ북은 모두 1994년 합의를 전면 백지화하여 북한은 원자로 및 재처리시설 등을 재가동하였다. 북한은 문제해결을 위해 미국과 양자회담을 원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비난하며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북ㆍ미와 한국ㆍ중국ㆍ일본ㆍ러시아가 참가하는 6자회담이 진행되어 2005년 9ㆍ19선언과 같은 일정한 합의도 있었으나, 이후 여러 가지 사유로 진전이 지리멸렬하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2006년 10월 핵실험을 강행하였다. 북한은 미국 등 6자회담 당사국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핵무장 능력을 현실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9년 5월과 2013년 2월에 2, 3차 핵실험을 강행하였으며, 2012년 12월 서방측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하는 인공지구위성 발사체 ‘은하 3호’(대포동-3)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북한은 이제 핵무기를 ‘억제력’(deterrence 억지, 북한은 ‘억제’로 표기)으로서 보유한다고 당당히 주장하기에 이르렀으며, 2012년에는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였다.
280~281.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ㆍ발표되었으나, 역시 남과 북의 동상이몽으로 실제적 성과는 결여된 채 1993년 북핵 위기의 부각과 함께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렸다. 아직 냉전의 종식만으로 남북관계가 적대에서 화해로 변환되기는 일렀던 것이다. 1994년 북핵문제 해결 이후 남북 간 대화와 접촉이 조금씩 늘기 시작하고 남북경협도 느린 속도지만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그리고 남북관계에서 적대와 대결보다 화해와 협력이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이른바 ‘햇볕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부터였다.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 배제와 화해협력의 지속적 증대를 대북정책의 주요 목표로 설정했던 김대중 정부는 북한에 대한 식량 및 비료 지원을 확대하고 다양한 사회문화 교류를 활성화했으며 북미 간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했다. 뿐만 아니라 2000년 6월에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됨으로써 반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남북 당국의 적대적 대결관계는 화해적 협력관계로의 전환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 6ㆍ15공동선언은 남북 당국의 상호 인정과 평화공존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은 당국 간의 회담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부문 간 민간교류를 확대해갔다. 특히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경의선 철도 연결은 남북화해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러한 결실은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과 10ㆍ4선언의 채택으로 이어졌다.
288. 남북간 교류협력이 진행되는 중에도 남북 당국 간 군사적 충돌과 긴장 상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999년 6월과 2002년 6월의 서해교전 사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과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아직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288~289. 남북한은 해방 이후 단독정권을 수립하였고, 한반도에서의 단독대표권을 주장하며 상대방 체제를 부정해왔다. 냉전 시기 남북은 상대의 유엔(UN) 단독 가입 또는 남북한 동시 가입을 반대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냉전 종식 이후 1991년 9월 제46차 총회에서 남한과 함께 유엔에 가입 신청을 하였다.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두 개의 독립된 국가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317~318. 예멘은 남과 북 모두 민주화가 미흡한 상태에서 각각의 권력 엘리트들이 자신의 기득권과 권력 기반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적대와 혼란, 그리고 재분리와 내전이라는 최악의 통일과정을 노정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남예멘 스스로 완전히 민주화되기 전에 권력 엘리트들의 지배력을 보장해주는 대등통합에 합의함으로써 통일 이후 선거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측면이 있었다. 민주화되지 못한 정치체제 하에서 지배 권력의 타협과 담합만으로 통일을 합의해놓고 이후 선거 결과에서 애초의 권력 안배가 깨짐으로써 내전이 발발하게 된 셈이었다. 만약 동독처럼 남예멘의 사회주의가 민주화과정과 대규모 시위를 통해 완전 해체되었더라면 통일과정에서 표출된 선거 결과를 남예멘이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북예멘도 마찬가지였다. 민주화가 미흡한 상태에서 덥석 합의된 통일은 이후 총선을 통한 정치동학에서 비민주적인 정치세력의 힘이 그대로 온존하게 했고, 그것이 결국은 남북의 합의통일을 무산시킨 정치적 혼란의 단초가 되었다. 즉 북예멘의 보수 부족세력이 그대로 남아 통일총선에서 예멘사회당을 제치고 제2당이 됨으로써 남북의 통일과정은 평화로운 경로를 포기해야만 했다. 북의 이슬람개혁당은 원리주의에 입각한 반사회주의 정당이자 반(反)남예멘 세력이며 따라서 남측과의 대등한 합의통일을 처음부터 완강하게 거부했던 정치세력이다. 당연히 비민주적인 이슬람개혁당의 정치적 존재는 남예멘과의 평화적 통일을 불가능하게 하는 걸림돌일 수밖에 없었다. 서독처럼 동독의 구 공산당과 민사당의 존재마저 관용해내는 성숙한 민주주의가 부재한 탓에 예멘은 무력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통일과정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320. 점진적 평화통일과 붕괴 후 흡수통일이 반드시 상호모순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점진적 평화통일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결국 남과 북의 체제통합은 현실적으로 일방의 근본적 변화와 타방으로의 흡수라는 방식을 거칠 가능성이 높다. 평화공존과 북한의 변화라는 점진적 평화통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사는 통일’로서 통일의 완성 단계는 한 쪽의 체제전환과 이를 통한 흡수통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략) 오히려 실제 가능한 통일의 방식은 점진적 평화통일 과정이 지속되다가 일정 시기와 국면에서 붕괴 후 흡수통일이라는 마지막 단계를 거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지점이 바로 통일과정에서 진보와 보수가 합의할 수 있는 최소공약수가 될 것이다.
321. 결과적으로 한반도식 통일과정을 상정해본다면 북한의 연착륙을 목표로 점진적 평화통일을 추진하되 어느 시점에서 붕괴에 의한 급격한 흡수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현실에 접근하는 경로일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식 통일과정의 정치동학은 매우 급격한 구심력이 작동하면서 남북의 힘의 관계를 반영하는 매우 역동적인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다.
324. 결국 한반도식 통일과정에서는 점진적 평화통일이든 급격한 흡수통일이든, 되도록 오랜 기간의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의 기간이 축적되고 공유되고 확산됨으로써, 일방의 흡수와 일방의 해체라는 극단적 통일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반도식 통일과정이 극단적 세력의 무분별한 대결과 적대에 의해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체제의 변화 및 기득권 세력의 약화와 더불어 남한의 수구강경 세력의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 즉 북한에 친남세력이 형성 확대되고 남한에 극단적 반북세력이 약화되어야만 점진적 평화통일이든 급격한 흡수통일이든 적대와 대결의 통일과정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334~345. 실증주의적 사회과학이 일반적으로 주류 또는 표준으로 간주된다. 사회현상에 대한 연구가 사회‘과학’이라고 명명된 것은, 자연철학에서 자연과학으로의 진화를 사회현상의 연구자들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뒤르켐이 말한 것처럼, 자연과학적 사회과학이라 할 수 있는 실증주의적 사회과학의 핵심은, “사회적 사실이 사물(things)이고 그리고 사물처럼 다루어져야 한다”라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349~350. 북한은 1991년 남한과 함께 국제연합에 가입했다. 즉 북한도 하나의 국민국가로서 국제법적 인정을 받고 있다. 2012년 현재 한국의 수교국은 189개국이고, 북한은 162개 국가와 수교를 한 상태다. … 국제관계의 행위자로서 북한의 행동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은 무기수출통제법, 비확산법, 대외원조법, 국제종교자유법, 무역법, 브레튼우즈협정법, 원자력법 등의 국내법으로 북한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의 회원국가인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활동을 제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왔다.
351. 북한을 보는 시각은 실증적이기보다는 규범적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일원으로 북한에 주재하기도 했던 스미스(Hazel Smith)는, 북한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그것이 문화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안보로 환원하려는 ‘안보쟁점화’ 경향을 비판한 바 있다. 안보쟁점화 담론은 자신을 문명으로 북한을 야만으로 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미스가 지적하는 것처럼, 북한을 나쁘고(bad) 미친(mad) 국가로 규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나쁜 행위자는 합리적이고 도구적이면서 예측 가능한 행위자이지만, 미친 행위자는 비합리적이고 예측이 불가능한 위험한 행위자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자신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하여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고 있는 합리적(rational) 행위자로 볼 때, 국제관계학의 영역에서 편견을 배제한 실증적 북한연구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352~353. 초기 북한연구에서는 정보의 축적이 지식의 생산과 동의어였다. … 연구성과가 존재할 때 방법론도 의미를 지닌다. 특히 냉전 해체 이전의 한국에서의 북한연구는 소련연구보다 ‘더 특수한’ 지역연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354. “북한을 바로 알자”라는 구호와 함께 제시된 북한연구방법이 이른바 내재적 접근이다. … 내재적 접근은 “북한의 내재적인 사회작동원리”를 규명하는 것을 북한연구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었다. 즉, 내재적 접근은 접근이 가능하지 않은 지역에 대한 연구를 ‘내부행위자’의 시선으로 연구하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참여관찰이 가능하지 않은 조건에서 외부의 연구자가 어떻게 내부행위자의 시선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355. 내재적 접근에는 북한에 대한 비판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재적 접근에 대한 비판이었다. “비판이 결여된 북한연구”라는 비판에 대한 대응은, 내재적 접근에 비판적 접근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친북적 연구라는 비판을 면하기 위한 이 추가는, 현실정치적 고려가 담겨 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철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내재적이라는 개념의 철학적 의미가 사회적 실재의 모순을 스스로 드러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재적-비판적 접근은 동어반복이다. 내재적의 본래적 의미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주의의 모순에 대한 비판이 있어야 한다.
356~357. 내재적 접근과 경험적 접근을 동일시하는 것은 오류다. 내재적의 반대를 “선험적 또는 초월적”(transcendental)으로 설정하는 것은 더더욱 문제다. 칸트철학에 따르면 선험적은 경험적의 반대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선험적 인식이 경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_ 장달중 외, <현대 북한학 강의>, 사회평론, 2013.
2016년 삼성전자가 인수한 하만은 “JBL, 하만카돈(Harman Kardon), 마크레빈슨(Mark Levinson), AKG 등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카오디오에서는 이외에도 뱅앤올룹슨(B&O), 바우어앤윌킨스(B&W)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며 전세계 시장점유율 41%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