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대면은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의 초라한 외피를 확인하고선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성심성의를 다한 말과 행동은 싸늘한 홀대에 내쳐져 알량한 자존심과 함께 무기력하게 땅에 떨어지기 일쑤였다. 하염없이 고역을 치렀다. 두찬과 다를 바 없는 통념으로 버무려진 담화에 애써 경청의 몸짓을 취했고, 호응도 표했으며, 드문드문 의사도 피력했다. 그러나 안쓰러운 분투도 결국 ‘쓰던 안경 벗어주기’나 ‘식은 양배추국 데워 주기’ 중 하나로 그쳤다. 대화하고 있었으나 소통할 수 없었다. 자기 깜냥으로 획득한 사회경제적 비교우위나 호가호위를 통한 자기권능화가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진의를 헤아릴 필요성마저 폐기시킨 듯했다. 분통을 삭이기 힘겨웠다. 세상 물정 모르는 서생이나 현실을 공전하는 몽상가로 취급되는 것은 무지의 소치나 대안의 부재 아니면 정신의 착란 때문이니 감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괴뢰 마냥 그들의 비위에 맞게 스스로를 방기하는 나의 추태를 용납하기 어려웠다. 속인을 현혹할만한 권세를 갖추지 않은 과거가 한탄스러워 설핏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이내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지 못하는 현재가 애처로워 자괴감에 몸서리쳤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라 자위하나 마음의 생채기는 쉽사리 아물지 않는다. 일단, 한 가지만 명확히 해두자. 피차 지금의 모습을 견지한다면, 우연이 아니고서는 재회하지 않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