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어떻게든 상상해보기
• 망한 영화, 망한 연속극, 망한 소설에서 그나마 참신한 점을 찾아 보자.
• 좋아하는 다른 이야기의 시대, 배경, 상황, 분위기, 사건을 바꿔치기해보자.
• 다른 이야기의 멋진 장면을 뽑아놓자.
• 다른 이야기의 멋진 장면이 왜 멋지게 느껴지는지 고민해보자.
• 들은 이야기, 읽은 이야기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지 상상해보자.
• 음악을 들으면서 어울리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 그림을 보면서 그림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연을 상상해보자.
• 다른 글의 제목, 시구를 보고 거기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꾸며보자.
• 소재가 생각나면 바로 메모하자.
• 뭐든 생각나는 것을 다 종이에 써두고, 비슷한 것끼리 분류하며 궁리해보자.
• 나도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흥분해서 바로 써서 공개하지 말고 메모만 해두었다가 며칠, 몇 달 묵혔다 활용해보자.
• 길거리나 대중교통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 각각의 삶에 대해 상상해보자.
• 특정한 직장생활의 어처구니 없는 경험을 소재로 활용하자.
•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것이었는지 상기하자.
152. 어떻게든 경험하고 변주해보기
• 첫 장면, 첫머리에서 눈길을 끌자.
• 그렇지만 너무 많이 사용한 자극적인 수법은 지루하니까 피하자.
• 가장 쓰고 싶은 장면부터 먼저 쓰자.
•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절정 장면 두 가지를 떠올리고 그중에 먼저 벌어지는 일로 시작하자.
• 이야기 속에 비밀을 만들고 활용하자.
• 비밀을 극 중의 주인공은 모르지만 독자는 알고 있는 상황을 써먹어보자.
• 내가 보기 싫은 것, 짜증 나는 장면을 메모해두었다가 피해가자.
• 일단 먼저 뭐라도 쓰고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며 이어가자.
• 대충 어떤 구조의 이야기가 될지 미리 짜놓고 그에 맞춰 내용을 세우자.
• 너무 많이 미리 짜놓지 말자.
• 미리 짜놓은 대로 쓰다가 다르게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으면 과감하게 시도하자.
• 이야기가 막힐 때는 비상 수단을 쓰자.
[비상 수단1] 꿈 장면, 상상 장면, 환상 장면을 넣자.
[비상 수단2] 극중극,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장면을 넣자.
[비상 수단3] 문득 시간을 확 건너뛰자.
[비상 수단4] 적당한 핑계를 대고 내가 지금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주인공이 하는 장면을 넣자.
[비상 수단5] 도대체, 왜, 어떻게 앞뒤의 사건이 생길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
[비상 수단6] 어떤 사건이나 상황의 부작용, 범죄에 악용하는 방법을 상상해보자. 그리고 부작용과 범죄의 악용을 막는 방법도 상상해보자.
• 이도 저도 안 될 때는 고양이 이야기를 쓰자.
183. 어떻게든 연마해보기
• 내가 여러 번 읽고 싶은 글을 읽으며 무엇이 아름다운 글인지 느껴보자.
• 최대한 상황을 자세하게 쓰려고 해보고, 그중에서 좋은 것을 고르자.
• 진부한 표현, 쓰기 싫은 말을 대체하려고 해보자.
• 간단하게 쉽게 쓰자.
204~205. 어떤 직업이라도 나름대로 글쓰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글을 쓸 여유가 도저히 생기지 않는 직장은 좋지 않다. 내가 주변에서 본 바로, 직장 일 때문에 여유가 없다는 것은 실제로 낼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정신의 여유가 없는 경우가 좀 더 많았다. 매주 목요일마다 마귀 같은 팀장들 앞에서 영업실적 보고를 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나 두려워서 월요일 아침부터 항상 그 고민이 가슴을 꾹꾹 누르는 생활이라면 뭔가를 바꾸는 편이 글쓰기에도, 인생에도 더 좋지 않을까.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아니면 일주일에 주말을 포함해 다섯 시간 정도, 꼬박꼬박 시간을 낼 수 있으면 제법 건실하게 글쓰기를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거나 자기 전에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한 시간 정도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무척 많다. 그 시간에 우리는 글을 쓰면 된다. 흥분해서 소리 지르는 사기꾼 같은 파트너들, 기막히게 멍청한 일을 저질러놓고도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높은 분들, 가짜 웃음과 억지로 마셔야 하는 술잔이 우글우글한 직장에서 빠져나오면, 그동안 틈틈이 메모해둔 내가 쓰고 싶은 것, 그 이야기를 드디어 마음껏 쓸 수 있는 글쓰기 시간을 가질 수 있다.
212. 많은 작가가 한 분야의 전문가이자 직업인으로서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을 기본 의무라고 여겨 마감을 중시하고 있다. 일전에 <경향신문>의 한 칼럼을 돌아가면서 세 명의 작가와 연재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마감을 잘 지키기 위해 연초에 6개월 치 글을 미리 써두었다. 마감이 다가올 때마다 하나씩 풀어서 신문사에 보내면서 나는 자신만만해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작가들도 같은 방식으로 미리 글을 한 무더기 써서 쌓아두고 있다.
237. 글 쓰는 시간을 길게 갖지 못한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앞서 말한 대로 하루에 한 시간, 일주일에 다섯 시간 정도만 해나가고 있다면 잘못된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일은 따로 있다. 글이 잘 써질 때 한 번에 몰아서 하루아침에 원고지 150장씩을 썼던 기억이 있다고 해서 계획을 세울 때 그 기준을 적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다 망한다. 계획을 세울 때는 오히려 진도가 잘 나가지 못할 때의 기준을 갖고 와야 한다.
253. 어떤 선을 정해놓고 더 이상 고칠 수는 없다든가, 이 이상 작업을 하려면 계약금이나 착수금을 달라고 말하면서 끊어야 한다. 일의 마감을 정확히 정해두고, 기한이 되면 일이 되든 안 되든 끝이라는 방식도 나쁘지 않다. 조언을 듣고 내 글을 개선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시간 동안 ‘이 일만 어떻게 되면 나도 드디어 확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안타깝게 매달려 긴 시간 끌려다니기만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일이 한번 늘어지기 시작하면 설령 상대가 좋은 의도와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흐지부지되며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 그 구렁텅이에 빠지기 전에 끊어내야 어떻게든 끝을 지을 수 있고, 하다못해 망한 셈 치고 다른 글 쓰는 일로 상쾌하게 넘어갈 수라도 있다.
_ 곽재식,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위즈덤하우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