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카는 단명했다. 1950년대 초 무렵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치과의사에게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쇼크로 사망했다. 그 일이 신문에 보도되어 나 자신도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 생각난다. 이 무렵 오다카는 <국가구조론>(1936)과 <실정법질서론>(1942)을 썼던 경성제국대학에서 동경대학으로 옮겨와 있었다. 오다카의 죽음으로 동경대는 한 순간에 정치학과에서 미래의 이론적 지주로 기대되고 있었던 인재를 잃어 버렸다. 동경대는 경제학에서도 정치학에서도 전통적으로 이론가가 자라나기 어려운 곳이었다. 정치학은 오다카를 잃고 나서 마루야마 마사오가 주도하는 일본정치사상사의 시대로 옮겨갔다. 경제학부를 보면 전전에는 난바 하루오의 황국사관적 경제학, 전후에는 오쓰카 히사오의 베버 사학이 압도하고 있다. 물론 경제학부에는 그 동안 우노 고조의 우노이론과 네기시 다카시, 우자와 히로부미의 수리경제학이 있었지만 법학부 [소속의 정치학과]는 오다카를 잃어 버려 빈터가 되어 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