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죽었을 때도 나는 장례식에를 일부러 가지 않았다. (중략) 인환! 너는 왜 이런, 신문기사만큼도 못한 것을 시라고 쓰고 갔다지?”(산문 「박인환」, 1966.)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죽었을 때도 나는 장례식에를 일부러 가지 않았다. (중략) 인환! 너는 왜 이런, 신문기사만큼도 못한 것을 시라고 쓰고 갔다지?”(산문 「박인환」, 1966.)
푸코는 《육체의 고백》에서 4~5세기 초기 기독교 윤리가 오늘날 서양인의 삶과 생활방식, 삶의 태도와 주체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근원적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했다. 그는 《성의 역사》를 계획한 동기가 《육체의 고백》을 쓰기 위해서라고 말했을 만큼 이 책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푸코는 최초 《성의 역사》 제2권으로 기획한 《육체의 고백》의 집필작업을 1982년 가을에 거의 완성했다. 그러나 이 책의 출간을 잠시 보류하고, 처음 기획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2권 《쾌락의 활용》과 3권 《자기 배려》를 서둘러 탈고한다. 이후 다시 《육체의 고백》의 원고를 보충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하던 중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그는 1984년 6월 25일, 패혈증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임화는 ‘일본문학이 이식(移植)된 것’이라고 답했는데, 이를 반박할 수 없었던 김윤식으로서는 실로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내재적 발전론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김용섭의 <조선후기농업사연구>(1970)가 출간되자 이에 흥분한 그는 김현과 함께 한국문학의 기원을 무려 영·정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문학사>(1973·사진)를 집필한다. 그리고 정년까지 100권이 넘는 저서를 쉴 새 없이 써감으로써 한국문학을 자랑스러운 독립적 문학으로 실체화하는 데 성공한다.”
“비판자에 따르면 김윤식에 있어 현해탄 콤플렉스란 극복된 것이 아니라 억압된 형태이지만 줄곧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 된다.” “퇴임 뒤 김윤식은 자신이 평생 구축한 한국문학이라는 성(城)이 ‘사명감이 만들어낸 허구’일 수 있다고 고백하면서 내심 홀가분해하는데, 최근 한국문학가들이 이야기하는 참담함이란 그저 이 성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제도적 신앙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 신앙과 콤플렉스는 양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콤플렉스가 없으면 바깥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신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 위상 같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앉아서 ‘공정한 심판관’이 되겠다는 건 학생들의 약육강식 적자생존을 손놓고 구경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조기숙)
루팅은 모바일 기기에서 구동되는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 상에서 최상위 권한(루트 권한)을 얻음으로 해당 기기의 생산자 또는 판매자 측에서 걸어 놓은 제약을 해제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기초재의 양을 공정한 분배의 기준으로 삼는 롤스와 드워킨의 정의론을 센은 개인 간의 편차를 고려하지 않는 물신주의라고 비판한다. 센은 롤스의 정의론의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자유와 평등의 조화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시도하는 데 그 핵심 개념은 능력이다.” “삶의 질은 기능수행능력의 수준에 의해 크게 결정되므로 정의로운 분배 대상은 롤스의 기초재와 같은 재화가 아니라 다양한 기능들의 집합인 기본적 역량을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Sen 1982,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