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일본은 1947년 미국 등 연합국 점령 아래 일본국헌법을 제정했다. 미국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하며 헌법 제9조에서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1951년 발효한 첫 미-일 안보조약이 사실상 미국이 일본에 대한 방위 의무를 일방적으로 지는 ‘편무조약’(片務條約)이 된 이유다. 그러나 곧이어 냉전이 격화하고 일본 경제가 부흥하면서, 미국은 일본에 경제력에 상응하는 군사 부담을 지도록 요구해왔다. 하지만 일본은 헌법 제9조를 이유로 내세우며 경제성장을 우선했다. 미국이 소련에 대항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함에 따라 1954년 자위대(당시 경찰예비대)가 발족했지만, 무력조직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헌법 위반이 아니냐는 헌법학자들과 정치인들의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미국의 요구에 응해 1950년대 후반부터 헌법을 개정해 일본군을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정치인이 바로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그러나 그는 1960년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하며 국민의 심각한 반대에 부딪힌다. 그 결과 조약은 개정됐지만, 기시 총리는 (개헌이라는) 자신의 뜻을 채 펴보지도 못하고 1960년 7월 퇴진한다. 아베 총리가 말하는 ‘전후 체제’란 헌법으로 군사력 보유나 행사를 제약한 현재 상황을 가리킨다. 이렇게 보면 아베 총리에게 헌법 개정이란 할아버지 대부터 3대째 이어지는 비원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측이 시종 말하고 있던 것은, 일본 측 안은 숲으로 도망친 개를 죽이기 위해 숲을 모두 태워버리려는 생각이다, 그렇게 하지 말고 개를 끌어내어 죽이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것 같은 이야기였다. 이 개를 둘러싼 논의를 많이 했다.” 1965년 6월 한·일 청구권협정 체결을 앞두고 막판 조문 작업을 하던 당시 상황을 일본 측은 이렇게 전합니다. ‘숲으로 도망친 개’는 대체 무엇일까요. 한국의 개인청구권입니다. 나라를 대표한다는 이들이 자국민의 권리를 개로 표현하며 죽이는 방법을 이야기했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이 내용은 일본 외무성이 편찬한 『일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 920면에 담겨 있습니다. (중략) 헌법 제10조는 선언합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재판소가 2011년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근거도 헌법 10조였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도 같은 맥락 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