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있던 시의 표현을 슬쩍 빌려 와서 자신의 생각을 담는 것을 한시에서는 ‘용사’(用事)라고 한다. 그래서 『시경』에 실려 있는 <아가위꽃>이라는 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정약용이 새에게 하고 있는 말만 듣고도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줄 금세 알아차릴 수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 있던 시의 표현을 슬쩍 빌려 와서 자신의 생각을 담는 것을 한시에서는 ‘용사’(用事)라고 한다. 그래서 『시경』에 실려 있는 <아가위꽃>이라는 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정약용이 새에게 하고 있는 말만 듣고도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줄 금세 알아차릴 수가 있는 것이다.”
죄는 무섭다. 언젠가 대가를 치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한다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은 이렇게 일어난다.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겔 36:36~38)
누미노제. “인간이 거룩한 존재 앞에 섰을 때 자신이 진실로 피조물임을 존재론적으로 통감하는 체험”(루돌프 오토) _ 아내는 7월 어느 날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하였다.
“응답을 받은 사람은 타락하고, 응답을 못 받은 사람은 좌절하고” _ 나의 기도는 무엇인가.
응답의 요구인가, 순종의 교제인가.
치즈와 구더기. 1599년 화형 당한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의 우주관. “제가 생각하고 믿는 바에 따르면, 흙, 공기, 물 그리고 불, 이 모든 것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는 마치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구더기들은 천사들입니다. 한 지고지선한 존재는 아들이 하느님과 천사이기를 원하였고, 그 많은 천사들 중에는 같은 시간대에 그 큰 덩어리에서 만들어진 신도 있었지요.”(185쪽)
건강한 욥의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들의 말, 말, 말 … 남는 건 정죄함 뿐. 우리교회는 아우가 떠난 큰 형의 집이다. 무너진 사람들은 온라인 설교의 조회수로 가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최승복, <포노 사피엔스 학교의 탄생>, 공명, 2020.
8.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장치가 온라인 교육과정 아카이브와 온라인 수업 플랫폼이다. 아카이브는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도서관이고, 수업 플랫폼은 교사가 학생 한 명씩 만나고 가르치고 도와주는 사이버 교실이다.
23. 근대학교를 존속시키는 세 가지 환상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익숙함의 환상(익숙한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 개념의 환상(동일한 단어를 사용하면 그 내용도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 시간의 환상(현재를 바꿔야 미래가 바뀐다고 생각하는 직선적 시간관의 환상)
144.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축적의 길>에서 …. 대한민국 산업 전반이 처한 문제 상황에 대해 “개념설계 역량의 부재”라고 강조한다. 개념설계 역량이란 “제품 개발이 되었건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건 산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을 때, 이 문제의 속성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창의적으로 해법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량”이다.
199~200. 포노 사피엔스의 학습은 상하좌우, 전후 내외를 가리지 않고 종횡으로 펼쳐져 나간다. 학교 내에만 머물지도 않고, 국내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이들의 학습은 교사에 의해 전달되는 지식과 기술을 통해 사회화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관계 맺기를 통해 얻는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상호협력하고 충돌과 긴장을 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개인화’하고 ‘주체화’하는 과정이다. 그동안 교육학에서는 사회화 과정을 중시해왔지만, 비고츠키는 교육을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것을 받아들여 그것을 개인화하고 주체화하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이제 우리는 개인화하고 주체화하는 과정인 학습을 중심으로 학교를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 25년차 교육부 공무원인 최승복은 이 책을 저술하면서 신났을 것이다. 깊은 마음의 비판을 주저함 없이 토로하였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은 저자가 모두 누렸을 것이라고 믿는다. 안정된 직위와 혁신의 자부 -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건강할 때만 유의미한 공동체. 예로부터 질병은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을 의미하였다. 단기간 선의는 절교의 뱃고동 같아서 아픈 이들은 짧은 소란 속에 잊혀진다. 병자들은 얼마를 버틸 식량으로 외로이 어두운 숲을 헤쳐 나가며 침묵의 기다림에 서서히 소실되어 간다. 저들은 보이지 않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실질적 진리를 간절히 구한다. 애통이다.
한국 기독교는 ‘다음세대’와 ‘가나안성도’란 두 가지 종횡의 명분을 들고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배에 승선하더라도 [거의 모든] 약한 자들은 다시금 파양되고 만다. 치유와 회복은 어디에 있는가. 그곳은 하나님 나라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실질적 진리는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