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5, 2019: 12:31 pm: bluemosesErudition

레밍에 관한 오해. “레밍이 집단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린다는 오해는 과거 미국의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만들어낸 게 널리 퍼진 것이라고 해요. 그렇게 대규모로 자살하는 동물은 없어요.”

: 1:23 am: bluemosesErudition

“장ㆍ단점이 있네요. 선생님이 선호하는 안으로 결정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January 11, 2019: 11:43 pm: bluemosesErudition

박진영(1972), JYP(1996)

: 11:17 pm: bluemosesErudition

“외국어 공부를 할 때 외울 건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다.”

: 9:35 am: bluemosesErudition

‘관종’이라는 유행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이른바 ‘관심종자’의 준말로, 관심을 끌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중략) 정신의학자 융의 표현을 빌리자면 디지털 활동으로 인한 자아 팽창(ego-inflation)이 현실에서 한번 더 부풀려지는 것이다. 문제는 관심을 끄는 방법이다.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하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더 쉽고 파괴력 있는 수단을 선택한다. 그래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왜곡된 디지털 활동을 통해 자기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허풍을 떠는 모습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디지털과 현실이 별개일 수 없다. 자기의 역할을 묵묵히 완수해야 아름다운 것이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끌고 싶어하지 않는다.”

January 9, 2019: 10:50 pm: bluemosesErudition

쓰는 이도 읽는 이도 자신이 ‘아는 것’ 속에 시를 가둬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 그게 사건이든 풍경이든 아니면 삶 자체든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붙들려 우리는 시를 쓰고 또 읽는 것 아닌가. 그러니 시의 매혹에 대해서라면 의미로 치환되는 명징한 논거보다는 ‘그저 드러날 뿐이며 그로써 신비를 갖는다’(비트겐슈타인)는 말이 좀더 유효할 것이다. 어떤 순간의 감정이나 예감이 끝내 말해질 수 없는 채로 드러나는 것.

대개 각각의 층위들이 논리적으로 튼튼하게 연결된 시들일수록 시인의 의도가 깊게 관여하여 언어적 질감을 해치곤 한다. 아무런 필연성도 찾을 수 없다면 당연히 좋은 시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어떤 필연성도 찾을 수 없지만 각각의 층위가 알 수 없는 연관 속에 배치되고 있다고 느껴지는 시가 있다. 경험의 실감보다는 감각적 배치를 통해 세계를 구축하는 것.

여전히 내가 아는 곳에 세계가 있다고 믿으며 단일하게 그것을 포착하려는 시선에 대해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_ 신용목의 글을 읽으며, “초점 없는 혼합주의”가 떠올랐다.

: 1:24 am: bluemosesErudition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정주 NXC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재웅 다음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등 ‘한국 벤처 1세대’ 5인방이 의기투합해 2014년 국내 최초로 ‘벤처 자선(venture philanthropy)회사’라는 개념을 선보이며 만든 회사가 C프로그램이다. 그 5인방이 선택한 인물, C프로그램의 엄윤미(42) 대표”

January 8, 2019: 12:56 am: bluemosesErudition

Cosmic Motors(Daniel Simon)

January 7, 2019: 3:07 pm: bluemosesErudition

“책 마지막 장 빈 페이지에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나만의 인덱스를 만듭니다.”

: 3:17 am: bluemosesErudition

해상 송시(Ode Marítima)를 읽고 의문. 왜 페소아의 이명은 허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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