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y 11th, 2019

May 11, 2019: 8:46 pm: bluemosesErudition

최근에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환희를 느낀 프로젝트는 아는 후배를 위해 만든 청첩장이었다. 전에도 청첩장을 만들어 선물한 일이 종종 있었지만 어느 순간 어떤 그림을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이디어에도 한계를 느꼈다. 그러다가 시를 선물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중 하나를 영어와 한글로 표지와 모시는 글 자리에 넣었다. 주례하시는 분이 주례사에 앞서 이 시를 읽어주셨다. 아마도 신랑이 썼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소중한 언약을 하는 좋은 자리에서, 좋은 사람들에게, 내가 선물한 시가 청첩장의 형태로 전달되고 그것이 주례사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좋은 선물 하나 했구나’라고 생각했다. … 이러한 작업들 하나하나가 자기 자리에서 빛을 낸다면 억지로 알리지 않아도 나중에 큰 물결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한다.

포트폴리오가 쌓여서 어떤 가능성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신청해 보기도 했는데 이것 자체로도 좋은 경험이 된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일을 해보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2001년에 월간 <디자인>을 위해 스테판 자그마이스터 스튜디오를 방문해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공모전에 참가하는 작업이 복잡하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 귀찮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이것이 디저트를 먹는 것처럼 신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때 스페판 자그마이스터는 뉴욕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피곤하고 지쳐서가 아니라 삶을 즐기기 위해 쉬는 것이고, 뉴욕에서 벌어지는 매일 매일의 경험이 너무나 즐겁기 때문에 새벽 여섯 시면 잠이 깬다고 말할 만큼 에너지가 넘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공모전에 출품하는 작업이 그저 즐거울 뿐이라고 하더라. 인터뷰를 마치며 잡지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했더니 ‘어떤 포맷을 원하느냐? 35미리 슬라이드 필름? 중형이나 대형 슬라이드?’ 이런 식이었다. 그는 즐겁게 일하고 일이 끝나면 기록과 정리를 놀랄 만큼 치밀하게, 그리고 즐겁게 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픽 디자인이 ‘아주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할머니가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면 새록새록 잠들고 하는 것처럼. ‘아주 훌륭한 이야기’이거나 ‘훌륭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범주에 있는 것’이 그래픽 디자인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 혹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유머 감각이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이것을 관조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는 정신적인 여유가 있어야 나오기도 하고 노력해서 찾아내기도 한다. 전시하면서 ‘아, 사회를 관조하고 끌어안아야겠구나’ 하고 느꼈다. 치열하게 살아야겠지만 그 안에서 즐길 줄 아는 자세, 디자이너라면 꼭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삶이 힘들 때 어떤 디자인을 보면 미소가 지어지면서 ‘재밌다’,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좋겠다. 디자이너의 영혼이란 바로 이런 관조하는 자세, 감각이 아닐까?

: 7:39 pm: bluemosesErudition

민음사. 세미콜론. 디자인 라이브러리2.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 되기. 아드리안 쇼네시.

170. 제발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대로 쓰지 말아라.

171. 순서가 제일 중요하다. 사람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안내해야 한다. 추측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모든 것을 명확히 말해야 한다. 요점을 반복하고, 생각하는 바를 조목조목 들려주고, 결론을 보여줘라. 그리고 간단하게 결론을 정리하면서 끝맺어야 한다. 솔직히 좋은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불변의 법칙은 아주 간단하다. 무엇을 보여 주지 말하고, 그것을 실제 보여 줘라. 그게 전부다. 절대로 앞으로 볼 디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말하면 안 된다. 그저 무엇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만 해야 한다. 너무 간단해 보이지만 한번 시도해 보면 그 효과에 놀라게 될 것이다. …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이 무언지 말하고, 실제로 보여 주고, 입은 질문을 받을 때까지 다물고 있으면 된다.

171. 프레젠테이션은 당신이 떠난 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대개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제안을 다시 설명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이디어를 요약한 문서를 제공하는 것이 현명하다. … 클라이언트에게 서류를 제출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나는 항상 그들의 로고를 문서 중앙에 놓는다. 클라이언트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은 거의 틀리는 법이 없다.

171. 프레젠테이션이란 언제나 개인과 관련된 문제라는 것을 기억하자. … 남들이 당신을 좋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명확하고 기분 좋게 말하며, 경험 삼아 앉아 있는 수줍은 인턴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과 부드럽게 눈을 맞추는 것이 좋다. 그리고 질문을 받았을 때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한 마디로 엄청 예의 바른 사람처럼 굴어야 한다는 말이다.

207.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창조의 과정은 언제 시작되는 것일까? 아마도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시각적 지성을 발달시켜 디자이너가 되도록 도와준다.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어디에서나 디자인을 발견할 수 있고,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잊을 수 없으며 항상 모든 것을 받아들일 자세를 취하게 마련이다.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 한다.)

208~209. 나는 ‘독창성’이란 개념이 현대 그래픽 디자인에 있어서 과대평가되고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다른 사람의 것을 그대로 훔쳐오는 사람들은 영원히 이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류 디자이너들과는 대조적으로 훌륭한 디자이너는 예술가들이 수세기에 걸쳐 행한 방법들을 연구하고 자유롭게 빌려와 자신의 작업에 적용시킨다. 더불어 그들은 선뜻 이것이 ‘빌려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들이 받은 영향이나 원천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경의의 뜻을 표하는 것이다.

209~210. 나는 비겁하게 베끼는 것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다른 곳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무언가 새로운 걸 보여 줄 수 있다면 말이다. “예를 들어 가까운 과거의 모더니스트 디자이너들로부터 아이디어나 형식을 빌리는 것은 ‘표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전에 수립해 놓은 아이디어가 계속 진행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나는 1960년대 폴란드 포스터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 폴란드 포스터는 팝아트나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지요. 팝아트는 상업 예술이나 만화책, 영화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고요. 내 작업에 대한 판단은 사람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전에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런 방식은 아니었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다른 누군가의 작업에 영향을 받거나 그로부터 형식을 빌려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다. … 피카소가 아프리카 가면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것을 보여준 것처럼. 이렇게 자신의 작업에 남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것은 표현의 범위를 넓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현대 디자인의 영역 밖에 있는 온갖 새롭고 과격한 것들을 잘 살펴보면 자신의 작업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처음이냐’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이 모든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은 일종의 함정이다. 그저 자신의 작업에 영향을 준 것에 대해 솔직히 인정할 수 있으면 된다. 이것이 바로 표절자들과 다른 점이다.

220. 이것이 바로 편집이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업을 버리고 주목할 만한 것들을 걸러내는 작업 말이다.

221. 여기에 대한 대답은 항상 주관적이며 어떤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작업을 평가하는 몇 가지 실무적인 기준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작업이 끝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클라이언트는 디자인에 만족하는가? 프로젝트가 수익을 창출했는가? 이 프로젝트가 뉴스가 될 만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