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정답'


December 18, 2019: 12:55 pm: bluemosesErudition

4. “우주가 아름다운 까닭은 다양한 현상 가운데에도 통일된 하나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통일된 법칙이 놀랍도록 다양한 현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7. 이 답을 찾은 사람들은 이번에도 조심스럽게 사이트에 접속한 후 이 수열 패스워드를 이용해 다음 페이지로 접속해봅니다. 과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무엇일까요? 다시 한번 ‘Congratulation!’ 간단한 축하 메세지가 나오면서, 이번에는 구글 채용사이트로 접속이 됩니다. 이 단계까지 통과한 사람들만을 위한 아주 특별한 사이트고요, 자신의 이력서를 제출하면 가벼운 인터뷰만으로 구글에 취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구글은 2004년과 2005년에 걸쳐 1만 5000명의 직원을 뽑았는데, 이것은 당시 사용한 채용 방식 중 하나였습니다.

8~9. 대부분 우리는 잠시 무언가에 호기심을 느껴 궁금해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바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하던 일에 집중하거나, 체내 에너지의 23퍼센트 이상을 먹어치우는 1.4킬로그램의 폭식꾼 ‘뇌’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뇌를 최소한으로만 쓰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호기심, 도전정신 같은 자발적 동기만으로 끝까지 몰두해 해답을 얻거나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강력한 특징입니다. 호기심이나 꿈, 재미, 보람 등 다양한 내적 동기. 그리고 명예, 인정, 직위, 인센티브 등 외부에서 부여된 외적 동기. 이런 동기들에 지속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천착하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데 있어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가 잘 균형 잡힌 사람들이 세상을 의미 있게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39. 미국 해병대에는 ‘70퍼센트 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70퍼센트 정도 확신이 들면 95퍼센트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라는 겁니다.

45. 누군가를 반대한다고 해서 그 상대편이 리더로 선택되지는 않아요. 대통령은 비전이나 미래를 꿈꾸게 하는 사람이어야지, 다른 사람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내 후보를 정하지는 않지요. 여기에도 뇌과학이 들려주는 삶의 성찰이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학교기 너무 싫어서, 지금 다니는 회사가 싫어서 그만두는 건 좋은 의사결정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건 괜찮지만, 지금 이게 싫으니까 그만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대책도 없죠. 그 순간 너무 싫기 때문에 도망치듯 그만두지만,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107. 결핍된 것에 너무 많은 생각을 집중하는, 운통 거기에만 뇌 에너지를 쏟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결핍의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터널 비전’을 갖게 만드니까요.

118. 사회성을 배우는 시기에 놀이의 역할은 너무나도 강력합니다. 그 시기에 제대로 놀지 못하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5배 이상 증가하며, 심지어 살인을 저지를 위험성은 17배나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어요.

121~122. 조직문화 이론가 해리스 오언은 진짜 의미 있는 아이디어와 정보는 회의가 아니라 커피 타임 때 나온다는 사실을 응용해, 커피 타임과 유사한 형식으로 회의하는 법을 고안했습니다. 이른바 ‘오픈 스페이스 테크놀로지(Open Space Technology)’라는 기법인데요, 직원들이 커피를 손에 든 채로 서서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이를 녹음해서 정리한 후에 15분 동안 공유하는 방식의 회의입니다.

154. 과거의 경험과 학습 내용을 가지고 그때그때 삶을 꾸려나가야겠지만, 그중 10~20퍼센트 정도는 새로운 탐색을 하는 삶을 살아보시길 권합니다. 그래야만 예전에는 못했던 일을 시도해볼 수 있고, 새로운 삶이 주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방식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면 빠르고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예측 가능한 수준의 결과는 얻겠지만, 새로운 시도가 주는 큰 즐거움과 뜻밖의 수확은 얻을 수 없습니다. 삶에서 80~90퍼센트 정도는 기존 방법을 적용하더라도, 10~20퍼센트 정도는 방법 탐색의 전략으로 살아보시길 바랍니다. … 20퍼센트쯤은 열어두는 삶이 새로고침을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겠죠.

160~161. 미국에 연구원으로 처음 유학을 갔을 때 얘기입니다. 첫날 대학교에 서류를 제출하는데, 행정 직우너이 제 이름을 빨간색 펜으로 적는 거예요. …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찜찜했습니다. 그날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 거예요. … 그래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불을 켜고 앉아서 하얀색 종이에다가 빨간색으로 제 이름을 썼어요. 그날 저는 비로소 ‘과학자 정재승’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 우리는 왜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안 된다고 믿고 있을까요? 다양한 가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진시황 때 중국에서는 빨간색이 너무나 귀한 색이어서 왕만 쓸 수 있었다는 설입니다. 그래서 왕이 아닌 사람이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왕을 모욕하거나 자신이 왕이 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고 해요.

169~170. 타자, 투수, 야수 중에서 어떤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이 가장 징크스가 많을까요? 한번 생각해보시지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정답은 ‘타자’였습니다. 그 다음이 ‘투수’고요, ‘야수’들이 징크스가 가장 적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 세 포지션 중 성공 확률은 타자가 제일 낮습니다. 자신이 성공할 확률이 낮을수록, 선수들은 더 많은 징크스를 만들어냅니다.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욕수는 강한데 자신이 상황을 충분히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신이라는 엉뚱한 인과관계를 넣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 결국 징크스나 미신을 믿는 이유는 미래라는 굉장히 통제하기 어렵고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인과관계를 억지로 갖다 붙인,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자신의 모든 환경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거나 지속적으로 행운이 따라준다면, 인간은 결코 미신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172. 우리는 제2종 오류(맞는 걸 아니라고 판정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제1종 오류(아닌 것을 맞다고 판정하는 오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편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176~177. 우리 뇌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습니다. 뇌 전역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이 화학물질은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라 불리는 뇌 영역에서 아주 흥미로운 역할을 합니다. 바로 무작위적인 패턴 사이에서 어떤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역할이지요.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뱀을 발견하는 능력, 사막의 모래언덕 사이에서 도마뱀을 찾아내는 능력, 숲속에서 군복 입은 군인을 찾아내는 능력은 이곳에서 비롯됩니다. … 도파민 분비가 적절하면 패턴을 잘 찾을 뿐 아니라 창의적으로 패턴을 해석하기도 합니다. 복잡한 패턴 사이에서 생산적인 무언가를 발견하는 창의적인 예술가 혹은 과학자는 전대상피질의 도파민이 제구실을 잘하는 분들인 겁니다. 그런데 만약 이곳의 도파민 분비가 지나치면, 무작위적인 패턴에서도 쉽게 특정 패턴을 ‘만들어’ 발견하게 돼요. 예를 들어 코카인이라는 마약은 도파민 상승제 역할을 하는데, 코카인을 섭취하면 없던 패턴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현증 환자처럼 도파민 분비가 과도한 경우에는 환청, 환상, 강박 등 존재하지 낳는 것을 듣거나 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182. “상충하는 두 가지 욕구 사이에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가설들을 지극히 회의적으로 면밀히 검토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생각에도 크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뭐든지 의신하기만 한다면, 어떤 새로운 생각도 보듬지 못할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비상식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괴팍한 노인네가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귀가 가볍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마음을 열면, 그래서 회의적인 감각을 터럭만큼도 갖추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가치 있는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모든 생각들이 똑같이 타당하다면 여러분은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결국 어떤 생각도 타당성을 갖지 못할 것이겠기에 말입니다.”(칼 세이건, ‘회의주의자가 짊어진 부담’, 패서디나 강연, 1987)

185. 제가 꿈꾸는 사회는 주요 일간지에서 ‘오늘의 운세’가 사라지는 사회입니다. 오늘의 운세 믿나요? 다들 안 믿으시죠. 그런데 오늘의 운세가 나오면 안 봅니까? 있는데도 안 보시나요? 안 믿지만 보죠. 그것이 비합리의 시작입니다.

195~196. 제가 예전에 헬로키티를 만드는 회사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서 한 임원이 제게 질문을 했습니다. “헬로키티가 아시아에서는 굉장히 인기를 끄는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기대하는 것만큼 큰 인기를 못 끌고 있다. 왜 동양 아이들은 헬로키티를 좋아하고, 서양 아이들은 덜 좋아하느냐? 동서양 아이들의 뇌가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거냐?” (중략) 헬로키티는 사실 이상한 녀석입니다. 눈은 있는데 입은 없는 고양이죠. … 동양 아이들은 눈에서 감정을 읽기 때문에 눈이 있는 헬로키티에게 공감이나 동일시가 가능합니다. 다만 헬로키티 눈은 항상 중성적이어서 특별히 슬퍼 보이지고, 그렇다고 기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기분이 좋으면 헬로키티가 나를 방긋 웃으며 보는 것 같고, 내가 기분이 우울하면 얘도 나를 뚱하게 보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감정 이입이 쉽고 동일시가 잘 돼서 ‘곁에 두고 싶은 캐릭터’일 수 있는 거죠. 반면 서양 아이들이 보기에 헬로키티는 기괴한 캐릭터입니다. 그들에겐 감정을 읽을 만한 실마리인 입이 없다는 것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헬로키티의 얼굴이 매우 불완전하다고 여겼을 거예요. 우리로 따지면 ‘눈이 없는 고양이’라고나 할까요? 섬뜩하겠죠? 그래서 곁에 두고 싶거나 동일시가 쉬운 캐릭터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199. 창의적인 사람은 암기를 안 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습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지식을 머리에 저장하고 중요한 기술은 몸에 체화하면서 기본적인 것을 훈련을 통해 학습해야, 매우 중요한 순간에 인지적인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는 수학 영재들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수준의 문제를 풀 때 뇌 활동이 크게 늘어나지 않습니다. 수학 올림피아드 출제 문제 정도가 나오면 그제야 뇌의 여러 영역이 서로 활발히 신호를 주고 받지요. 반면 평범한 중학생들은 중간고사 수준의 수학 문제만 줘도 뇌에서 불이 납니다. 훈련이 충분하지 않아 그 정도 수준의 문제를 푸는데도 많은 인지적 노력이 필요한 거죠. 반면 그들에게 수학 올림피아드 수준 문제를 주면, 뇌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200~20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예술이 가진 창조성의 근원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그것을 ‘은유’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눈동자는 맑은 호수다’처럼, 전혀 상관없는 것인 눈동자와 호수를 연결하여 새로운 등식을 만들어내는 은유 말입니다. ‘A는 B다’에서, 훌륭한 은유일수록 A와 B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지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서로 연결하는 능력, 이것이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의 뇌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21세기 신경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알아내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2000년 전에 얻은 통찰을 말이지요. …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현상이 벌어지더라는 겁니다. 전두엽과 후두엽이, 측두엽과 두정엽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정보를 처리할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온다는 거죠. 창의성은 전전두엽 같은 가장 고등한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기능이 아니라,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만들어지는 능력이라는 겁니다. 평소 연결되지 않는, 멀리 떨어져 잇는 영역끼리 신호를 주고받고 연결된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건 연구자들의 해석입니다만, 추상적인 두 개념을 잇는 일이 그들의 뇌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뮤즈가 우리의 뇌에 영감을 제공할 때, 이렇게 뇌에서는 온 영역들의 파티가 벌어지는 모양입니다.

203. 저도 글을 쓸 때 비슷한 원리를 사용합니다. 만약 DNA에 관한 글을 써야 한다면 DNA에 관한 책들은 별로 뒤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학 서적을 뒤적거리죠. 그런데 그곳에서 DNA를 설명할 수 있는 절묘한 예제나 비유를 찾게 되면, 그때부터 글일 저절로 술술 풀립니다. DNA에 관한 책들을 뒤적거린다면, 기존의 글들과 유사한 글이 나오겠지요.

215~217. 러시아 출신 유대인인 미국의 바이러스학자 조너스 소크(Jonas Edward Salk)는 폴리오(polio), 즉 소아마비 백신을 만든 연구자입니다. … 그가 이끄는 프로젝트 팀은 주말에도 쉬지 않고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애썼지만 도무지 좋은 해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배낭 하나만 메고 이탈리아 아시시라는 마을에 있는 수도원으로 들어갑니다. 휴가를 온 듯 머리를 비우고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13세기에 지어진 수도원 성당 안에서 불현듯 백신에 관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것을 종이에 미친 듯이 메모했습니다. 그 길로 미국으로 돌아와서 쥐 실험, 원숭이 실험, 인체 실험까지 연속으로 진행하면서 백신 개발에 성공합니다. 대개 과학자들은 이렇게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자신의 특허를 제약회사에 팔아 엄청난 돈을 버는데, 그는 백신 제작 과정을 전 세계에 무료로 공개했어요. 그러니까 모든 제약회사가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 수 있게 된 거예요. 그 바람에 가격이 아주 싸졌죠. 지금도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1달러 이하의 가격으로 소아마비 백신을 맞을 수 있습니다. 결국 그는 지구상에서 소아마비 환자를 거의 사라지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합니다. 이후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소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소크생물학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ciences)를 짓게 됩니다. 그리고 그 건축 설계를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루이스 칸에게 맡깁니다. … 그때 소크는 이런 부탁을 합니다. “내가 연구실에서 쉬지 않고 일만 할 때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던 아이디어가 13세기에 지어진 성당에서 떠올랐다. 수도원 성당 천장의 높이가 무척 높아 그 안에서 내 사고 공간이 무척 넓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 이름을 딴 연구소의 모든 공간은 천장이 매우 높았으면 좋겠다.” 칸이 그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죠. 1959년에 설립된 소크생물학연구소는 약 700명의 연구원이 일하는 작은 연구소이지만, 여기서 지난 50년간 노벨상 수상자가 12명이나 배출됐습니다. 단숨에 최고의 연구소로 자리 잡은 이곳을 두고 ‘소크연구소는 천장이 높아서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라는 일종의 도시전설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신화를 신화로 남겨두지 않는 연구자들은 정말로 천장이 높아서 이곳에서 창의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는지 확인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실험 공간을 만들고 천장 높이를 조절할 수 있게 한 다음에, 실험참가자들을 데려다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한 문제와 단순히 집중력만 필요한 문제들을 풀게 해봤습니다. 천장의 높이를 달리함에 따라 그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본 거예요. 놀랍게도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단순 문제를 풀 때는 천장의 높이가 가장 낮은 2.4미터였을 때 성과가 가장 높았습니다. 반면, 추상적인 두 개념을 이어야 하거나 어떤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봐야 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는 천장의 높이가 가장 높았던 3.3미터에서 가장 좋은 성과가 나왔습니다. 보통 회사의 사무 공간의 천장이 높아도 2,7~3미터 사이인데, 소트연구소는 천장의 높이가 3.3미터가 약간 넘습니다. 천장의 높이가 높을 때 정말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는 걸 신경건축학 실험으로 알 수 있었던 거죠.

219~220.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독서, 여행, 사람 만나기입니다.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특히 평생에 거쳐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 바로 독서, 여행,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입니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자극을 받으시라는 겁니다. 의미 있는 세상과의 충돌, 이것이 우리의 인생을 바꿉니다.

242. 이제 우리나라도 정답을 찾는 교육이 아니라, 좋은 문제를 정의하는 교육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정해진 답을 남들보다 먼저 찾는 교육이 아니라 나만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능력이 더 존중받아야 합니다. 높은 수준의 수학적 추론을 가르치고, 틀에 박힌 언어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언어교육이 곧 사고와 철학 교육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49. 증강현실이야말로 현실 세계를 이루는 ‘아톰’과 가상 세계를 이루는 ‘비트’를 섞어 부드럽게 상호작용하도록 도와주는 일상몰입 기술의 핵심이지요. 증강현실이 강화된 스마트기기가 앞으로 스마트폰을 대체하고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으로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믿는 회사 중 하나가 페이스북입니다. 페이스북은 그동안 비트 세계 안에서 소셜미디어 서비스만 제공했는데, 더 큰 수익을 내려면 애플이나 샤오미, 삼성처럼 스마트기기 자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매년 5000억 원씩 10년간 총 5조 원 이상을 증강현실을 기반으로 한 새 플랫폼에 투자해오고 있습니다.

250. 일상몰입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기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이런 기기가 실혀 가능해지려면, 기기를 사용하는 동안 사용자 주변의 아톰 세계에 대한 정보들을 모두 비트화해서 비트 세계로 보내줘야 합니다. 그래야 도로 위의 장애물 정보를 파악해서 내가 부딪히지 않도록 알려준다거나 다른 사람이 가상 공가에서 나를 인식하게 만들 수 있죠. 이를 위해서는 아톰 세계의 상황을 전부 비트화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이 필수적입니다.

251. 제4차 산업혁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물인터넷을 통해 아톰 세계를 고스란히 비트화해서 비트 세계와 일치시키면 이 빅데이터를 클라우드 시스템 안에 저장해서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아톰 세계에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산업으로의 전환을 말합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제안한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가 일치하는 것을 ‘가상 물리 시스템(CPS, Cyber-Physical System)’이라고 불렀습니다.

253. ‘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의 일치를 바탕으로 한 제조업과 유통업의 혁신’이 바로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방금 말씀드렸는데요, 여기에는 웨이러블 기기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스마트폰 다음에 나올 미디어 플랫폼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는 데도 웨어러블 기기는 큰 도움이 됩니다. 사물인터넷을 이용해 아톰 세계의 정보를 모두 비트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몸이 만들어내는 바이오 정보까지도 비트 세계로 옮기려면 웨어러블 기기는 필수적입니다.

261. 지금은 사람들이 ‘제4차 산업혁명’과 함께 사물인터넷이니 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을 열심히 언급하지만 이런 기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빅데이터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래에 사라질 직업 중 하나가 ‘빅데이터 전문가’입니다. 그것은 마치 엑셀 전문가, C언어 전문가와 비슷합니다. 앞으로 많은 대학생들이 일상적으로 C언어나 자바, 파이썬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고 포토샵으로 그림을 그리듯 하둡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해 빅데이터를 관리하고 분석할 겁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지능 전문가라는 건 ‘워드프로세서 자격증’만큼이나 쓸데없고 우스꽝스러운 단어가 될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누구나 사용하기 편리하게 인공지능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가 공유될 텐데, 정말 중요한 건 그걸 이용해서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냐 하는 겁니다. 이 질문에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미래를 이끌 겁니다. 바로 여기에 미래의 기회가 있습니다.

262. 이제는 사물인터넷을 통해 사물들끼리 소통이 가능해지게 될 텐데, 우리를 둘러싼 물건들끼리 조합된 ‘경우의 수’는 약 1000만 배 이상 될 겁니다. 예를 들어 독거노인이 하루 종일 냉장고나 수돗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자식들에게 ‘오늘 부모님께 안부 전화 드려보세요’라고 문자를 통보하는 시스템도 가능합니다. 저희 집 체중계가 저희 집 냉장고에게 제 몸무게 정보를 보내서, 저에게만은 밤 10시 이후에 냉장고 문을 안 열어주는 서비스가 생길 수 있겠죠. 주인이 기대할 법한 서비스를 물건들끼리 커뮤니케이션해서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내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를 더 많이 이해해서, 내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겁니다. 스마트 카, 스마트 홈, 더 나아가 스마트 도시로 말이죠.

263. 2014년 아마존이 인공지능 플랫폼 알렉사를 탑재해 출시한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의 경우, 처음에는 사용자의 명령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동안 500만 명이 사용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꾸준히 업데이트되어, 이제는 사투리 섞인 영어 발음도 다 알아듣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지요. 시장에 먼저 뛰어든 아마존은 고객들의 데이터로 성장시킨 제품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평정해버렸습니다. 먼저 뛰어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큰 물고기가 강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빠른 물고기가 더 강하다’는 슈밥 회장의 메세지는 의미심장합니다.

268. 기계 번역이 전문번역가를 넘어설 수 있는가 없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구글 번역기가 93퍼센트 수준의 정확도만 낼 수 있어도 통번역 일자리 지형도는 완전히 바뀝니다. 그런 세상이 오면, 이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뉴욕 타임스> 웹사이트 모든 기사를 한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7퍼센트 정도의 어색한 문장이 있어도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게 됩니다.

270. 직업이 아니라 작업이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이슈는 과학기술을 잘 이해하고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사람들과 기술을 두려워하고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입니다. 이른바 ‘기술 계급 사회’가 저는 가장 두렵습니다. 데이터 과학자의 일자리는 늘어나고 연봉은 크게 오르겠지만, 단순노무자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연봉 또한 낮아지겠지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기술 관련 직종이지만 사라지는 일자리는 단순 업무라서, 사라진 일자리에 종사한 사람들이 새로 생긴 일자리로 옮겨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없어지는 일자리만큼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많다는 말은 공허합니다.

293~294. ‘테크 이상주의자’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스튜어트 브랜드입니다. 캘리포니아대학교(버클리 캠퍼스)에서 생물학 전공하고 환경운동을 했던 그는 <홀 어스 카달로그 Whole Earth Catalog>라는 잡지를 창간합니다. … 이 잡지에 열광했던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1960~7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미국 캘리포니아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테크놀로지에 심취핶고, 이들 정신을 통해 히피 정신을 구현해보면 멋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97. 그가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에게 들려준 연설 중에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경구가 있습니다. 이 경구는 1974년 잠시 폐간한 <홀 어스 카달로그>의 폐간호 맨 마지막 페이지에 있던 문구였습니다. 다시 말해, 잡스는 젊은 시절 그가 히피로부터 얻은 가르침을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려 했던 겁니다. … 애플을 만든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구글의 에릭 슈미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위키피디아의 웨일스. 그들은 모두 <홀 어스 카달로그>의 열렬한 애독자였으며, 히피 정신을 테크놀로지로 구현해보고 싶어 했던 브랜드의 정신적 추종자들이었습니다. 혁명은 이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

311. 혁명이 오려면 그 아이디어 자체가 너무나도 혁명적으로 아름다워야 합니다. 미숙한 아이디어로는 혁명을 만들 수 없습니다. 보어가 양자역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양자역학 아이디어는 크레이지하다.” 그런데 모든 미친 아이디어들이 혁명을 만들진 못합니다. 혁명을 만드는 아이디어는 그저 미친 생각이 아니라 미치도록 아름다운, 그래서 진실에 가까운 아이디어라야 세상을 바꿉니다.

312. 우리에겐 ‘인지적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나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합니다. 가진 것이 망치뿐인 사람은 세상의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입니다. 내 앞에 놓인 모든 문제를 망치질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죠. 그렇지만 상황이 바뀌고 문제가 바뀔 때 내 연장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인지적 유연성입니다.

313~314. 혁명은 어떻게 시작될까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오기를 바라는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서 시작됩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혁명을 꿈꾸죠. 그래서 돈키호테도 이런 말을 하죠. “현실은 진실의 적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누구를 미치광이라 부를 수 있겠소? 꿈을 포기하고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 미친 것이겠죠.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 미쳐 보이나요? 아뇨!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진 것이 미친 것이오! 그중에서도 가장 미친 것은 이상을 외면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오.”

323. 게이츠는 실제로는 위험 감수 성향이 그다지 높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학교를 중퇴하지 않고 장기휴학을 했으며, 학교와 부모에게 미리 허락을 받았습니다. 휴학도 회사를 창업하고 1년 뒤에 했고요. 자기가 회사를 창업하고 계속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게다가 학교도 나중에 복귀할 수 있는 휴학 상태에서 본격적인 창업을 시작한 겁니다. 게이츠는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처럼 위험 감수자로 인용되기보다는 위험을 잘 관리하는 사람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합니다.

324~325. 과학사회학자들이 ‘지난 100년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노벨상 수상 업적을 처음 생각해낸 시기’를 조사해보았더니, 평균적으로 약 41세였습니다. 화학과 생물학은 좀 더 늦었습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룰법한 혁신, 혹은 창의적 성과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늦게 인생에서 탄생합니다. 다시 말해, 그 분야에 대한 충분한 기간 동안의 학습, 경험,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343. 실리콘밸리에서는 ‘대박을 터트리기까지 평균 4회 가까이 실패한다’는 통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패를 격려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355. 일명 ‘칼 세이건 이펙트(Carl Sagan Effect)’였습니다. 대중적 관계 맺기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그의 학문적 성취는 과소평가되거나 폄하되는 효과입니다. 칼 세이건의 학문적 성취는 그의 대중성에 못지않습니다. 뛰어난 학자임에도 학계의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칼 세이건. “우리 인간은 모두 별빛을 쏟아냈던 별가루로 만들어진 단일종족이다.”(We are one species. We are star stuff harvesting star light.)

356.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견한 1905년이 아니라 ‘시간과 우주 공간의 상대성, 시간과 공간이 하나라는 걸 인류 전체가 이해한 순간’이 진정한 인류의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358. “여기에서 말하는 용은 제대로 인간이 되기 전의 모습, 에덴은 인류 최초의 환경을 말하는 거죠. 용이 에덴을 나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되었는가에 관한, 인간 지성 진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365~366. 캘리포니아대학교(버클리캠퍼스)에 있는 신경과학자 잭 갤런트 교수의 연구입니다. “fMRI 기계 장치 안에 사람을 눕혀놓고 동영상을 보여줘요. 사람이 동영상을 보는 동안 그의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 시각피질과 인근 영역을 촬영합니다. 그 데이터를 분석해서 이 사람이 무슨 동영상을 보았는지 뇌 활동만으로 영상을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꿈을 저장하는 상상, 이것은 더 이상 상상에 머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꿈에 관한 연구의 지평을 열 것”이라는 사실에 몇 편의 소설과 영화가 떠오릅니다. 저장된 꿈을 재생할 수 있는 세상은 소설의 그곳처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겠지요. 갤런트 교수는 2016년 4월, 또 하나의 놀라운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고해상도의 fMRI에 사람을 눕히고 이번에는 라디오를 들려주는 겁니다. 소설을 읽어줘요. 말을 듣는 동안 뇌를 계속 모니터링합니다. 가령 ‘그는 칼 세이건의 진정한 팬은 아니었다’라는 문장을 들려줬더니 ‘칼 세이건’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특정 영역이 갑자기 활발한 반응을 보여요. 그렇다면 ‘칼 세이건’이라는 단어가 이 사람에게는 이곳에 저장되어 있다고 간주할 수 있겠죠.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단어가 뇌 어느 곳에 저장되어 있는지 지도를 그려본 거예요.” 조금 상상력을 보태자면, 앞으로 수십 년 후에는 이런 연구를 이용해 쓰거나 타자를 치지 않고도 글을 쓰고, 생각이 바로 글이 되도록 할지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단어 지도를 잘 분석해 인간의 사고 과정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잇을 겁니다. … 생각만으로 로봇의 움직임을 조종하는 실험은 또 어떤가요. 앞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움직이는 기계가 등장하리라는 전망도 가능해졌습니다.

367. 지금 기술로도 공포 기억을 지우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예 기억이 저장된 영역을 망가뜨려 기억을 지우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기억의 원리를 바탕으로 특정 영역의 특정 기억만 정교하게 지울 수 있을 겁니다.

371. 컴퓨터에 넣은 기능은 언어나 수학, 다시 말해 최근 1만 년간 발달한 뇌 기능인데요. 이것은 최신 기능이기 때문에 잘 이해되고 있는 걸 컴퓨터에 놓은 거예요. 그런데 의식과 감정은 진화적으로 몇십만 년 동안 서서히 뇌를 바꿔가며 만든 거라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너무 고등한, 짐작조차 못 하는 것이거든요. 우리 살아생전에 그 기능이 이해돼서 컴퓨터에 들어가는 상황이 온다는 보장이 없어요. 강인공지능이 우리를 위협할 불안 때문에 인공지능 시대를 불안해하는 건 너무 과한 반응 같고요. 오히려 인공지능에게 시키면 웬만한 일은 다 하는 시대에 왜 학교는 우리를 자꾸 인공지능 수준으로 머릿속에 똑같은 것만 넣으려고 하는지, 인공지능에 우리 뇌를 넣어도 시원찮을 판에 왜 인공지능 대하듯 우리 뇌를 인공지능화하는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377.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 대부분의 회식에 가지 않는다. 술, 담배, 골프도 안 한다. 혼자 빈둥거리면서 노는 시간이 많다. 여럿이 보내는 시간은 계획을 하고 보낸다. 월, 화, 수, 목요일에는 대전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연구에 집중한다. 그중 하루는 아무 스케줄 없이 혼자 논문을 읽고 논문을 쓴다. 그리고 금, 토, 일요일 사흘에 세상살이를 한다. 그 시간의 상당 부분은 사실 가족들과 보낸다. 딸아이 셋의 귀여움이 최고에 달해 있어 그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한없이 좋기 때문이다.

378. 아침잠이 엄청 많았다. 그래서 생활 패턴을 바꾸었다. 5년 전부터 저녁 10시에 자기 시작했는데 그러면 새벽 4시쯤 일어난다. 이때부터 아침 9시까지 집중해서 한 가지 일을 한다. 이 시간이 있어서 낮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 일을 해도 채워지는 부분이 있다. 이런 시간이 진짜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한 가지 생각만 하는 것도 좋다. 그러면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 밤늦게 대전에서 서울로 올 때 운전하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는데 그런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신경과학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 뇌는 체중의 2퍼센트를 차지하지만 에너지의 23퍼센트를 쓴다. 뇌를 쓴다는 것은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얘기다. 따라서 뇌를 쓰는 일은 에너지가 있을 때 해야 한다. 스티븐 코비가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나눠서 하라고 했는데 뇌를 많이 쓰는 일은 뇌에 에너지가 충만할 때 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회사에 가서 신문도 보고 커피도 마시며 아침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퍼져 있을 때 진짜 해야 할 일을 시작한다. 능률이 오를 수 없다. 하루 중에 뇌의 인지적 에너지가 충만할 때를 판단해서 가장 창조적인 일을 그때 해야 한다.

384. 사실 전 책보다 정말 많은 영감을 주는 게 따로 있어요. 저녁을 먹고 나서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캠퍼스를 산책하는 시간이에요. 몽상하기에 좋은 시간이죠. 대전 캠퍼스에서 일을 마치고 목요일 바에 운전하여 서울로 올라오는 시간 역시 완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이에요. 특히 조용한 밤길을 운전할 때면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제가 쓴 논문 대부분의 단초는 새벽 운전을 할 때 떠오른 거예요. 완전히 혼자 있는 시간, 누군가에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필요한데, 가족이 있고 사회생활을 하면 그런 시간을 갖기란 쉽지 않죠. … 미국에서 통계 낸 것을 봤더니 [영감을 주는 시간이] 주로 운전 시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샤워 시간.

388.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았어요. 아인슈타인은 평생 발표한 논문이 23편입니다. 제가 이미 쓴 논문만도 50편이 넘으니, 논문 개수로만 본다면 아인슈타인은 무능한 과학자죠. 하지만 그의 논문 23편 중 노벨상을 받을 만한 게 6편이래요. 세상에 내놓은 것이 많지 않지만 하나하나 내놓을 때마다 심사숙고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걸출한 논문을 쓴 거죠. 반면에 피카소는 손대지 않은 미술 장르가 없어요. 그의 작품 수는 4000점이 넘는대요. 하지만 비평가들이 냉정하게 평가해 피카소의 이름에 걸맞은 작품이라고 선정한 건 40점 정도래요. 4000점 중 40점. 1퍼센트밖에 안 돼요. 그런데 그 40점이 아주 훌륭한 거죠. 정리해보면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창조적 업적을 시도하지만 가끔 좋은 게 나오고, 어떤 사람은 심사숙고해서 몇 작품만 내놓지만 그게 다 수작으로 평가받는 거예요. 단순히 결과물만 보고 “저 사람은 천재야. 정말 창의적이야”라고 말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스쳐 지나간 일에서 저 사람은 어떻게 저걸 발견하고 해석했을까’에 중점을 두어야 해요.

392. 아티스트는 상상력을 확장하는 사람이고, 디자이너는 상상력을 구현하는 사람, 그리고 과학자는 상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_ 정재승, <열두 발자국>, 어크로스, 2018.

August 13, 2019: 9:35 pm: bluemosesErudition

13일 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7월8일부터 8월7일까지 고려고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한 결과 학사 운영과 학생 평가를 파행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3학년 지필고사 2차 ‘기하와 벡터’는 수학동아리에 배부된 유인물 중 5문항이 출제돼 이미 재시험이 실시됐다. 또 2018학년도 1학년 지필고사 ‘수학’의 경우 ‘절대등급(상·하)’에서 8문항, 토요논술교실 유인물에서 1문항이 출제된 것이 확인됐다. 이 문항들의 경우 방과후학교 ‘수학 최고급반’에서 교재로 사용된 의혹이 불거져 수사 의뢰할 예정이다. 특히 수학 교과의 경우 2017~2019학년도 학생들이 본 시험문제 중 난이도 높은 197개 문항을 조사한 결과 150개 문항이 문제집, 기출문제와 완전히 일치했다. 국어 교과도 2018~2019학년도 평가 문항을 조사한 결과 16개 문항이 완전 일치하거나 부분 일치해 평가의 공정성이 훼손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해당 문제들이 특정 학생에게 사전에 제공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서술형 평가의 경우 채점기준표를 문항 출제와 함께 사전 결재해야 하지만 해당 학교에서는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서 채점기준표를 채점 이후 결재하도록 한 사실도 드러났다. 교사가 채점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채점을 진행했고, 이로 인해 동일 답에 다른 점수를 부여하거나 근거 없는 부분 점수를 주기도 했다. 특히 정답을 오답 처리하는 등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채점오류가 다수 발견돼 감사 기간 중 해당학교에 시정 조치를 요구했다.

최상위권 학생들을 특별 관리한 정황도 드러났다. 1·2·3학년 모두 성적순으로 우열반을 편성 운영했으며, 기숙사 운영에 있어서도 사회적 통합대상자와 원거리 통합 대상자에 대한 고려 없이 성적우수 학생을 기숙사생으로 선발했다. 성적우수자들로 구성된 기숙사 학생들에게는 일반 학생들은 선택권이 없는 과목별 방과후학교, 자율동아리, 토요논술교실까지 연계해 심화된 교육활동을 특혜 제공했다.

교육과정도 파행 운영됐다. 대학입시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제한해 생명과학Ⅰ, 물리학Ⅰ, Ⅱ를 필수로 지정 운영했다. 다른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소수 학생만이 선택하는 물리학Ⅱ를 자연계열 전체 학생이 이수하게 해 최상위권의 내신 성적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또 ‘논술’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진로활동)’을 영어와 수학으로 수업한 사례도 적발됐다.

시교육청은 특별감사 결과를 토대로 학교 관리자들을 중징계(교장 파면·교감 해임) 요구했다. 또 관련 교사 48명에 대해서는 비위 정도를 감안해 징계 및 행정처분을 요구할 계획이다.

“너무 은밀히 구조적으로 이뤄지다보니깐 일상적인 감사로는 발견하기가 어려워요.”

July 4, 2019: 9:23 pm: bluemosesErudition

“각 교과에서 선택한 분할점수 도출 방법을 다음 학기에 다른 방법으로 변경하고 싶은 분들에게 그 이유를 조사한 결과 단위학교 산출 분할점수의 경우에는 ‘예상 정답률 추정의 어려움’을, 고정 분할점수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성취수준이 지나치게 낮게 나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September 17, 2018: 3:16 am: bluemosesErudition

3. 나는 일생동안 별 수 없이 이야기 하나를 반복하고 있다. 저자와 독자의 시간을 모두 낭비하는 이 과정이 결국 다시 할 때마다 이야기가 조금씩 명료해질 거라는 비현실적인 기대 때문에 일어난다.

7. 김민형 교수는 … 그것들을 공부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매력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불가능에서 가능을 찾는 ‘애로의 정리’나 세상의 모든 존재를 거시적인 구조로 만드는 ‘오일러의 수’ 같은 것 말입니다.

16. 대수 이론은 19세기에 자리를 잡기까지 수세기 동안 다양한 형태로 연구되어왔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어떤 검색 시스템도, 정보 전송도 이 대수 이론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중요한 수학 이론은 점점 더 심화되고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학에서 배우고 있는 수학, 특히 확률 이론, 정수론, 기하학의 많은 내용을 머지않아 초등학교에서도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17. 컴퓨터의 능력은 수학 이론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많은 이론가들이 컴퓨터로 순수한 수학 실험을 합니다. ‘버치-스위너턴다이어 추측Birch and Swinnerton-Dyer Conjecture’이나 ‘리만 가설’과 같은 유명한 수학적 문제들은 수많은 컴퓨터 실험으로 뒷받침됩니다.

27. ‘수학은 논리학만은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논리라는 건 어떤 실체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논리만으로 실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순전히 논리적인 개념으로부터 수학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은 그릇된 관점입니다. … 수학을 논리로 정리하기 전까지 많은 단계가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사례, 구체적인 사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논리가 필요한 것이지, 처음부터 논리에서 수학을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반론을 할 수 있죠.

38. 막연한 추상적 사고 이상으로 ‘구조’라는 개념의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 피아제 같은 학자가 쓴 구조주의 입문서를 보면 무슨 이야기를 많이 할까요? 수학 이야기를 합니다. 구조가 무엇인지, 구조적으로 같다는 게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면 수학적인 구조, 수체계, 군론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신화와 의미>에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주의가 무엇인지 짧게 설명을 하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가끔 이(구조주의)를 굉장히 새롭고 혁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이것은 사실은 이중오류다. 첫째, 인문학에서도 구조주의와 같은 것이 르네상스 때부터 굉장히 많았다. 이보다 핵심적인 오류는 언어학이나 인류학 같은 데서 구조주의라고 하는 방법론은 자연과학에서 옛날부터 하던 걸 그대로 가져왔다는 데 있다.” 여기서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자연과학의 방식이 바로 수학적인 방법론을 말하는 거죠. 갈릴레오가 말했던, ‘수학적인 방법론으로 기술하는 것’과 같은 생각인 겁니다. 그렇게 보면 추상적인 개념적 도구를 사용해 세상을 체계적으로, 또 정밀하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바로 수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54~57. 빛이 어떻게 판단을 하느냐. 그러니까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최단 거리라는 것을 빛이 알고 간다는 것인데, 어떻게 빛이 아느냐. 이 문제는 철학적인 용어로는 텔로스Telos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텔로스는 목적,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빛이 가장 빠른 경로를 찾기 위해서 이쪽으로 간다’는 설명은 마치 빛이 ‘목적성’, 텔로스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런 설명이 어딘가 비과학적으로 느껴지지요? 현대 과학에서는 이런 종류의 설명과 관점을 전부 부정합니다. (중략) 이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해결한 것이 하위헌스의 원리Huygens’ Principle입니다. 이는 빛이 퍼져나가는 방향에 대해 설명한 원리입니다. 방 안에서 형광등을 켜면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서 방을 다 밝히듯이, 빛은 어느 한쪽 방향으로만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위헌스의 원리는 한 지점에서 빛이 퍼져나가면, 그 퍼져나간 지점에서부터 또 동시에 사방으로 퍼져나간다고 말합니다. 어느 순간이든 빛이 현재 닿아 있는 모든 곳에서 새로운 빛이 다시 나오게 된다는 것이죠. 이를 파면波面이라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빛이 진행한 전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위헌스의 원리에 따르면 빛은 전선에서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파면의 원천이 되고, 또 나아가서 원천이 되는 과정을 거듭하게 됩니다. 앞에서 밝혔듯, 물에서와 공기에서는 빛이 퍼지는 속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파면의 속도가 공기 속보다 물에서 더 느리다는 점을 이용하면 빛의 굴절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수학적으로 정확히 따져보면 빛이 사방으로 퍼진다고 해도 가장 빠른 경로가 아닌 것들은 전부 다 서로 상쇄되어 보이지 않게 됩니다.

60~61. “힘을 가하면 물체가 움직인다”는 표현을 했는데, 이 문장이 틀렸다는 것이 뉴턴의 굉장히 중요한 착안이었습니다. 왜 틀렸는가? … 멈춰 있는 것을 움직이게 하려면 힘이 필요하지만, 이미 움직이고 있는 건 그냥 놔두면 계속 움직이죠. 손으로 잡지 않더라도 멈추는 이유는 마찰의 힘 때문입니다. 뉴턴이 이를 정밀하게 표현한 말이 바로 ‘힘을 가하면 속도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뉴턴의 운동법칙입니다. “힘을 가하면 속도가 바뀐다.” 수수께끼를 푼 것 같은 기분입니다. 속도가 바뀌는 양을 우리는 ‘가속도’라고 배웠습니다. 방금 말한 뉴턴의 운동법칙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A) 힘을 가하면 가속도가 생긴다.

66~67. 뉴턴이 가속도 때문에 발견한 개념이 바로 ‘미분’과 ‘적분’입니다. 이 ‘속도가 변하는 정도’를 정확히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미분입니다. 미분이란 변하는 정도를 재는 것입니다. 속도의 미분은 바로 가속도인 것이죠.

74~75. 과학자들은 지구와 달이 서로 얼마나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는지를 측정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만류인력의 법칙으로도 알기 어려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었는지 짐작하시겠습니까?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재야 할지 몰랐을 것 같아요. 둘 다 구 모양이니 달의 표면 어느 지점부터 지구의 표면 어느 지점까지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서 거리가 다르게 나올 테니까요. 방향이나 중력도 마찬가지고요. … 지구나 달의 각 표면에 굉장히 연속적으로 분포한 점과 점들끼리 사방에서 끌어당기는 이 모든 중력을 다 더해야겠죠? 양쪽에서 다 똑같이 끌어당기고 있으니까요. 여기에서 ‘연속적으로 더해준다’는 개념이 바로 적분입니다. 정량적으로 모든 등식을 이용해서 중력장 등식과 힘을 재는 등식, 운동법칙 등을 다 감안하여 적분을 해주면, 결국 달의 중간에서 지구의 중간 사이의 거리만 재면 된다는 결과를 도출하게 됩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이 공식을 활용하지만, 처음에는 전혀 당연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거리를 재라는 거냐’ 같은 질문에 먼저 답하지 않으면 지구와 달 사이의 중력법칙을 구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자연스레 적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죠.

78~79. 페르마의 원리에서는 빛이 최단 거리로 간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왜’를 설명할 때 목적성이 없는 설명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역시 달과 지구가 잡아당긴다고 했는데, 왜 잡아당기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 “왜 잡아당기냐?”와 같은 질문은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 질문을 하면서도 어떤 종류의 답을 원하는지 분명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중략) ‘적당한 답의 틀satisfactory framework for finding the answer’.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에서 어려운 질문들은 다 그런 식의 질문들이에요.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처음에는 답을 모르죠. 이런 종류의 질문은 사실 ‘답을 모르는 것’ 이상으로 더 난해합니다.

81~83. 뉴턴 이론에서 빠진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어떻게 전달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중략) 힘을 전해줄 물체가 없는데 어떻게 중력이 전달될까요? 우주뿐 아니라 모든 공간 자체를 물질로 생각해야 한다는 관점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공간 자체가 물질이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200여 년이 흐른 뒤에야 아인슈타인은 공간 자체를 물질로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어떻게 전달되느냐, 그러니까 왜 그렇게 됐느냐” 하는 질문이, 아인슈타인 이후 좀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통해서 전달되느냐”의 문제로 옮겨갔습니다. 더 나아가 중력이 시간차를 두고 전달된다는 사실도 밝혀졌죠.

85~86.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이라는 … 책에 특별한 부록이 3개나 붙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중 하나는 현대 수학의 토대라고 할 만한 중요한 발견을 다룹니다. (중략) 이 3개의 부록 중 하나인 ‘기하학’은 과학사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 아이디어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좌표의 발견이었습니다. 평면상의 점을 설명하기 위해 X축과 Y축이라는 직각선을 그리고, 그 점에서 각 축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수의 쌍으로 위치를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 데카르트가 바로 이 표현법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고 수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기하학을 대수적인 방법, 즉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이 여기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224. 위상수학이란 모양을 공부하는 수학의 분야 중에서 가장 근본입니다. 점, 선, 삼각면 등 간단한 형태들을 이어 붙여서 만들 수 있는 모양들을 예와 같이 기호화하는 것이지요.

225~226. 위상수학은 보통 거시적인 기하라고 설명합니다. 정밀한 기하는 무시하고, 크게 보았을 때 모양이 어떻게 단순한 형태로 조립되어 있는지가 기호로 저장된다는 뜻입니다. … 18세기 수학자 오일러는 점, 선, 삼각면으로 이루어진 임의의 물체가 있으면 다음과 같은 양이 중요하다는 발견을 했습니다. 면의 갯수 - 선의 갯수 + 점의 갯수. 지금은 이를 물체의 ‘오일러 수’라고 합니다. 정의를 보면 좀 이상할 것입니다. 다 더하는 것도 아니고 뺏다, 더했다. 왜 이렇게 계산할까요? 이 오일러 수는 정말 기발한 정의이며, 수학의 발전에 미친 영향이 너무나도 방대해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기하는 물론이고, 대수, 정수론, 조합론, 함수론에 이르기까지 오일러 수와 그 개념의 확장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빼고 더하는 양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내는 데는 상당한 천재성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이런 종류의 ‘음양이 엇갈리는 덧셈’이 물리학의 ‘초대칭성supersymmetry’이라는 개념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어떻게 보면 위상수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오일러 수의 정체를 밝힐 목적으로 개발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228. 오일러 수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모양의 오일러 수가 위상에만 의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위상이 같은 두 모양은 같은 오일러 수를 가지게 됩니다.

233. 위상은 모양의 거시적인 구조만을 기억하는 개념인 겁니다. 그런데 토끼와 도넛의 예에서 보았듯이 오일러는 거시적 정보를 기호화하고 ‘계산을 해서 모양을 구분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개념이 기하학, 물리학, 우주학 등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235~237. 어떤 형체가 있을 때 빛은 그 물체에 반사되어 눈으로 들어갑니다. 빛이 눈의 망막에 부딪혀 어떤 화학 작용이 일어나면 그 정보가 뇌로 전해지고 전기파로 돌아다니면서 뇌세포의 네트워크를 껐다 켰다 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게 사실 모두 일종의 수학적 작용이라는 겁니다. 피상적으로 묘사했지만 우리 뇌에서는 이런 계산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우주를 감지하고 인식하는 과정은 기하학적인 것이 아니라 대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을 다 뇌세포 기호로 바꿔서 계산하고 있는 거죠. 이론물리학자들의 가장 큰 관심 중 하나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 자체가 대수적이거나 기하적이냐는 질문입니다. 2014년 옥스퍼드대학교의 학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 고등과학원 원장으로 있는 로버트 다이어그라프가 상당히 철학적인 강의를 했습니다. 물리학적 구조와 수학적 구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명상 같은 강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강의가 끝난 뒤 세르게이 구스코프라는 젊은 물리학자가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그럼 당신은 우주가 대수적이라고 생각합니까, 기하적으로 생각합니까? 내기를 해야 한다면 뭐라고 할 겁니까?” 한참을 망설인 다이어그라프는 “저는 우주가 대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기하라는 건 대수를 표현하는 통계적인 현상이지, 근본적인 우주의 실체는 대수적일 것이라는 말이죠.

237~238. 우리는 흔히 모양이 먼저 있고, 그것을 기호화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반대의 주장을 하는 겁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하학에서 일어났던 혁명적인 사건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17세기 페르마와 데카르트입니다. … x좌표의 제곱 더하기 y좌표의 제곱일 때 더한 값이 모두 1이 되는 점들을 모아놓으면, 이게 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하를 대수로 바꾸는 것입니다.

238~239. 두 번째 혁명은 18세기 말 19세기 중반에 이루어집니다. 바로 ‘내면기하’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하를 생각할 때 그 물체의 내부의 관점에서 어떤 성질들을 표현하고 측정한다는 것이죠. … 영화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납니다. 영화에 보면 한 공간에서 천장 위에 논밭이 있고 사람들 사는 공간이 마구 휘어져 있습니다. 이 내면기하의 개념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 바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와 베른하르트 리만입니다. 기하의 안에서만 봤을 때 기하가 어떤 모양이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거죠. 예를 들어 종이를 세로로 한 번 휘었다고 가정해보면, 내면기하는 전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방향이 아니라 두 방향으로 휜다면 내면기하는 어떻게 될까요? 다음 그림을 볼까요. 뭔가 감자칩처럼 생겼습니다. 이런 종이 같은 것으로는 만들기 어려워보입니다. 면이 조금 늘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 늘어나든 줄어들든 찢어지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런 모양을 만들 수 없습니다. 즉 내면기하를 바꾸지 않으면 만들 수가 없어요. 이처럼 내면기하가 바뀌는 걸 측정하는 것을 리만 곡률이라고 합니다. 내면기하가 바뀐다는 건 내적인 성질이 바뀐다는 겁니다. 우리가 피자를 먹을 때 바로 느낄 수 있지요. 피자를 약간 반으로 접어서 들어올리면 그 상태에서 뒤로는 안 접어지잖아요. 이것도 역시 내면기하가 안 바뀌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겁니다. 물질은 늘어나지 못하게 하는 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에요.

242~243. 일반 상대론에 따르면, 중력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시공간의 곡률을 느끼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시공간이 휘어졌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본적인 착안입니다. 공간이 휘어서, 우주가 휘어서 중력을 느낀다면, 그럼 우주가 휘어졌다는 게 뭘 의미하는가? 이걸 그렇싸하게 말로 표현할 수는 있어도 사실 직관적으로도 알기 어렵습니다. 우주가 휘어졌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이유가 뭘까요? 우리가 우주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우주의 밖에서 우주를 들여다볼 수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내면기하의 개념 없이 우주가 휘어졌다는 주장을 하기가 불가능한 겁니다. … 아인슈타인에게 리만 기하가 필요했던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기초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면기하의 개념이 없으면 우주의 기하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가우스와 리만의 굉장히 큰 업적이죠.

243~244. 세 번째 혁명은 일반인들한테 거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론입니다. 알렉산더 크로탕디에크라는 희한한 수학자가 있습니다. 195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해서 1960년대에 집중적으로 기하학과 수학 전반에 굉장히 새로운 기초를 제시했죠. 1960년대부터는 계속 프랑스 고등과학원에서 일을 하다가 1970년대에 몽펠리에대학교라는 작은 대학으로 옮겼습니다. 이후 1980년대 중반부터 피레네 성곽의 작은 마을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해 몇 년 전에 죽었습니다. 은둔하는 20여 년 동안 아무도 안 만나고 이상한 글도 많이 쓰고 약간의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답니다. 그로탕디에크는 순전히 대수로부터 기하를 만드는 과정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 여기서 우리의 이야기는 수의 스토리와 엮어집니다. 왜냐하면 그로탕디에크는 수체계 하나가 주어지면 그 수체계만을 가지고 기하를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거든요.

247. 그로탕디에크는 이 과정을 거꾸로 돌려서 임의의 수체계가 주어져도 그것이 어떤 기하를 표현한다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말하고 있습니다. 더하고 빼고 곱할 수 있는 수체계가 주어지면, 그 체계가 어떤 모양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248~250. 20세기 이전까지는 고전적인 기하를 바탕으로 물리학이 발전해왔습니다. 모양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모양의 공간 속에서 물체가 움직이는 과정을 기하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했죠. 하지만 현대 물리학의 경우 그 기하학은 일종의 환상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 우주의 미시적인 구조를 들여다보는 양자역학은 고전 역학에 비해서 훨씬 대수적인 성질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령 시공간이 연속이 아니라는 개념이 있는데 시공간이 연속적이 아니라면 그것은 기하학적 현상인가요? 그것을 묘사하는 데 필요한 방법은 뭘까요? 그런 걸 고민하는 게 물리학자의 과제인 겁니다. 그래서 대수로부터 기하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신 거군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요. 그것을 추상화하여 체계로 표현하는 것이 수학이네요. 이런 상상은 수학이 물리학을 생성한다든지, 어쩌면 물리적 세계가 수학적 구조 그 자체라는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우주의 구조를 설명해주는 대수가 수체계만큼 간단하지는 않겠죠. 지금도 학계에서는 양자장론이나 초끈 이론을 기술하기 위해 복잡한 대수적 구조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가공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어느 것이 시공간의 기반이 될 만큼 핵심적인 구조인가, 이것을 파악하는 작업이 오늘날의 가장 중대한 과학적 과제 중 하나입니다.

257~258. 발명이라고 해서 실제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수학에서도 그런 것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많은 수체계가 그런 성격을 띠고 있지요. 제 느낌으론 정수, 실수 체계, 복소수 체계는 자연에 있습니다. 나머지 연산까지도 자연에 있는 것 같은데 원소가 0과 1로 이루어진 100단위 수체계는 마치 기계처럼 보입니다. 그러니까 수학적 구조에 대해서도 3가지로 구분해야 하겠습니다. 1. 자연에 있는 구조, 2. 발명되는 기계 같은 구조, 3. 공상이나 언어. 이 분류를 정확하게 적용하는 것은 물론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간단하게 몇 가지만 나열해보면 ‘위상’, ‘군’, ‘벡터’ 이런 것은 1번이고 ‘큰 유한 수체계’, ‘뇌 신경망’은 2번인 것 같습니다. 3번에 속하는 수학은 지속적인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쉽게 떠오르지 않네요. 그리고 책으로 남기면 동료 수학자에게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 3번 이야기는 안 하겠습니다.

265. 수학을 잘하려면, 특히 창조적인 수학을 잘하려면 가설을 세웠을 때 그 가설이 틀릴 수 있는 가능성도 자꾸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 주장이 어떻게 틀릴 수 있는지 자꾸 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고장이 많은 큰 기계를 만들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수학은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인간이 답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명료한 과정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_ 김민형, <수학이 필요한 순간>, 인플루엔셜, 2018.

January 22, 2018: 4:24 pm: bluemosesErudition

창의성 계발에 왜 ‘쓰기’를 강조할까. 서울대 심리학과 박주용 교수는 철학자 베이컨의 말을 인용해 “독서는 완전한(full) 사람을, 토론은 준비된(ready) 사람을, 쓰기는 정밀한(exact) 사람을 만든다”며 “독서와 토론과 쓰기는 창의적 사고를 위해 갖춰야 할 기본”이라고 말했다. “글을 써봐야 생각이 정리되고 무엇보다 ‘내가 어디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말로는 안다고 하는 내용도 글로 옮기려면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극명하게 나타나죠. 그제야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때부터 새로운 생각, 즉 창의성이 발현하는 것입니다.”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 모임’의 일원인 박 교수는 “대학 교육은 토론과 글쓰기 위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론하에 본인 강의를 그렇게 하고 있다. 박 교수는 매주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다음 주에 토론할 주제를 제시한다. 예컨대 ‘대입 시험을 지능검사 시험으로 대체하면 어떨까’라는 주제와 함께 ‘사이언스’ 같은 잡지 기사 스크랩 등 관련 읽을거리를 준다.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은 며칠씩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A4용지 한 장 정도로 답안을 작성해 온라인 강의 시스템에 올리면, 다른 학생들이 읽고 평가하는 방식이다. 모든 학생이 각각 임의로 배정된 다른 학생 서너 명의 글에 대해 평가를 남긴다. 박 교수는 “매주 쓰기 과제가 있으니 각 학생은 한 학기에 12~13장 분량의 글을 쓰는 셈”이라며 “암기 위주의 입시 교육만 받아온 우리 학생들에게 쉬운 과제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수업 당일에는 학생들이 3~4명 규모의 소그룹별로 토론을 벌인다. “타고난 지능에 의한 위계질서를 조장할 것”이라거나 “이미 우리 대학 제도가 그런 사회를 만들었다” 같은 갑론을박이 오간다. 박 교수는 학생들이 올린 글 중에 좋은 것 몇 가지를 수업 시간에 소개할 뿐이다. 이따금 학생 사이를 오가며 어떤 토론이 오가는지 귀를 기울이기도 하지만 개입은 최소한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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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에서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말한다. “교육에서 ‘무엇’과 ‘어떻게’의 결별은 곧 어떤 것을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이 분리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의 지식은 실로 허약하며 쓸모 없고, 교육적 실패의 결과물에 불과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학문적 성취의 외장일 뿐이다.” 하여 그가 인용한 고대 중국의 격언은 울림이 크다. “나는 듣고 잊는다. 나는 보고 기억한다. 나는 행하고 이해한다.”

August 14, 2017: 2:32 am: bluemosesErudition

1.
“키에르케고어에 따르면, 세계를 설명하고 세계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하느님 없이 직접 의미를 창조하기 위해, 규정성과 방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실재’reality를 확립하기 위해 우리는 세계에 어떤 규정을 투사한다.” 문명의 뒷면에는, “내적인 혼란과 부조화의 상태라 할 수 있는 절망”이 꼭 그만큼 쌓인다. 키에르케고어는 <<공포와 전율>> 마지막 장에서,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친 사건(Akedah)을 분석한다. 아브라함은 야훼의 명령에 따라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 한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놓여야 할 자리에 대신 세웠던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체계들을 폐기”하였다.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를 거친 아브라함에게 윤리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되었다. “윤리는 이제 신앙을 통해, 즉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를 통해 매개되고 정지된다.” “아브라함은 맨 먼저 하느님에게로 나아가고 그 이후에야 바로소 윤리 체계, 한때 매 순간 그를 지배했던 윤리 체계로 나아간다.”

2.
그리스도 안에서 교의학과 윤리학의 일치로 성도를 견인하는 바르트의 책임은, 나이젤 비거의 유비 혹은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의 교훈으로 요약된다. “기다리며 서두르기” _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 속 세례 요한은 유독 긴 검지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 손 뒤로 라틴어 성서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한 3:30) 바르트는 그리스도를 힘써 가리키는 세례 요한의 긴 손가락에서 신학이 나아가야 할 길과 목적을 보았다. 바르트는 이 그림을 평생 사랑했고, 책상 정면에 이 그림을 걸어 두었다. 그리스도교 성현들의 글과 씨름하다가 고개를 들면 늘 이 그림이 바르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르트의 제자인 갓세이John Drew Godsey는 이 그림을 이해한다면 바르트 신학의 심장을 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뤼네발트의 세례자의 가리키는 손을 따라가며 바라볼 모험을 감행할 것인가? 우리는 그 손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를 안다. 바로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그분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란 점을 즉각 덧붙여야 한다. 저 손이 말한다. 바로 이분이다!”

3.
행위와 존재(Akt und Sein). 부제는 ‘조직신학 내에서의 초월철학과 존재론.’ 이 책은 본회퍼가 1929년 베를린 대학에 교수자격 논문으로 제출한 것으로 주제는 ‘계시 이해’이다. 그 당시 칼 바르트와 루돌프 불트만은 각기 계시를 이해하는데 두 개의 철학적 해결 방법인 칸트의 초월철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의 영향을 받았다. 초월철학의 영향을 받은 바르트는 신 중심적 입장에서 행위를 강조하고, 존재론의 영향을 받은 불트만은 인간 중심적 입장에서 존재를 강조하며 계시를 이해하였다. 본회퍼는 계시를 이해하는 바르트와 불트만의 행위와 존재의 두 대립적 입장이 교회 개념을 통해 극복될 수 있으며 행위-존재의 일치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공동체로 현존하는 그리스도”(디트리히 본회퍼)

4.
“니버는 자신이 현실적인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초월성과 내재성, 순진한 이상주의와 냉혹한 현실주의 사이에서 니버는 ‘불가능한 가능성’을 견지했다. 하여 혹자는 그의 사상을 이상적 현실주의, 현실적 이상주의라 칭한다. “이레니우스는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image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하느님의 모습likeness을 따라 성장하도록 요구받는다는 것을 구별한다. 하나님의 모습은 파괴되었지만 형상은 파괴되지 않았다.” “정의를 위하는 인간의 능력이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다. 그러나 불의를 행하는 인간의 경향은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라인홀드 니버)

5.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신정통주의에 기반을 둔 실존주의를 표방한다. 그는 불안을 ‘정답 없는 삶’이라 칭하고 연이어 피투와 기투를 각각 ‘내러티브’와 ‘덕’으로 치환한다. 하우어워스가 내러티브와 덕을 강조하고, 라인홀드 니버를 비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신학자는 인간이 놓여 있던 자리에 다시 하나님을 모신다. 그렇기에 “하우어워스는 복제할 수 없다.” “근대성은 ‘당신이 어떤 이야기도 갖지 않았을 때, 당신이 선택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어떤 이야기도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근대성에 담긴 이야기며 우리는 이를 자유라 부른다. 그러나 여기에 맞서 그리스도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당신은 하나님의 것, 즉 피조물이다. 당신은 이를 결정할 수 없다.’”(스탠리 하우어워스)

June 28, 2017: 1:03 pm: bluemosesErudition

1.
니체의 『우리 교육 기관의 미래(Über die Zukunft unserer Bildungsanstalten)』(1872)라는 강연 모음집 머리말에 자신의 이야기는 조용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구절이 발견된다. 그는 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즉각적이고도 과감한 개혁이라면서 당장 국가가 나서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 된다고 떠드는 독자는 자신이 문제 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 독자의 자격을 한정했다. 그리고 곧이어 교육 문제를 잘 알고 있다며 자신의 특별한 지론을 펼칠 생각부터 하는 사람도 부적절한 독자로 꼽았다. 이 책에 수록된 강연을 한 시기는 니체가 아직 20대의 나이로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교수로 재직하던 때다.

2.
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떤 수를 쓰든 입시 지옥을 완전히 없앨 길은 없다. 그런데, 현 체제 하에서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이 입시 경쟁을 없애는 것을 간절히 원하는 것도 아니다. 내 자식이 그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령 모든 대학을 다 일류 대학으로 만들어 누구나 일류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들어갈 수 없는 일류 대학은 소수가 있어야 하는데, 성적이 좀 떨어지더라도 (혹은 인성이 좀 나쁘더라도) 내 자식만큼은 거기에 진학하게끔 해주는 제도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보통 수험생 부모의 마음이다. 원칙적으로 들어주기 어려운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3.
입시 제도의 개선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무게의 목표를 입시에 실어 놓고 교육 전문가들이 묘책을 내서 그 문제를 일거에 풀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짓이다. … 입시는 교육 과정상의 일이지만 전형적인 사회학적 문제다. 그것도 엄청나게 과부하가 걸려 있는 사회학적 문제인지라 애당초 교육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4.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교육을 어디까지나 수단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로 인식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적 행위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교육의 주된 가치는 오직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를 통해 전수되는 지식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자동차공학 지식을 전수하는 행위의 가치는 자동차공학 지식, 좀 더 정확하게는 자동차의 가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 예를 일반화한 아주 간명한 내용이 교육의 가치에 대하여 우리가 이해하는 것의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5.
본래 제도는 이념을 실현하는 방안이다. 교육 제도도 물론 교육 이념의 실현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교육 이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제도를 마련하면서 역점을 두는 대목을 보면 지식 전수의 효율성이 그 내용이라 해야겠는데, 그 정도의 내용은 교육 이념이라는 말에 제대로 값하는 무게를 가진 것이 못 된다. 나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교육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부터 강조를 했다. 교육 이념이라면 바로 그 대목을 어떤 방식으로든 내용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곰에게 재주 넘기를 훈련시키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교육에서 가르침의 효율만이 추구해야 할 가치의 전부인 것처럼 이념의 내용을 부실하게 방치해 두는 것은 사실상 교육의 포기를 뜻한다.

6.
실제로 우리의 삶은 부모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뒤 끊임없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꾸며진다. 나의 품성, 나의 세계관, 인생관 그리고 나의 행, 불행 등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모든 것이 그들 타자들과의 만남의 과정에서 확보된다. 특별한 철학 교육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것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어린애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타인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열심히 배운다. 남의 기분을 헤아려 당기고 늦추고 나서고 물러설 때를 시행착오를 통해 가려내면서 거기에 적응한다. 그것은 학과 공부처럼 집에 가서 나 혼자 예습 복습하는 일도 아니었다. 또 학과 공부처럼 훗날의 삶을 위해 쟁여 놓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항상 현장에서 남과 함께 배우고 동시에 행하는 것이었다. 즉 공부가 곧 삶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곧 자기 폐쇄다. 그런 상태는 학과 공부에서 낮은 성적을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한 것이다.

7.
부모가 자식의 정체성을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결정지어 준다면, 선생은 학생을 그가 위치해 있는 세계의 문화 속으로 안내해 그의 정체성에 문화적 배경의 깊이가 스며들게 해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생은 학생을 역사 속의 존재로 성장하게 해 주는 것이다.

8.
우리나라의 반지성주의는 무엇보다도 인문 지성을 극도로 위축시키는 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가령 문학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산업 역군으로 애쓰느라 거칠어진 마음을 보듬어 쉬게 해 주고 더욱 열심히 일하도록 활력을 충전해 주는 일이라고만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인간 삶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해될 리 없다. 인간 삶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은 좀 더 의미 있고 좀 더 훌륭한 삶을 꾸미기 위한 것인데, 이미 그런 문제의 답이 명확히 주어졌다고 전제하는 산업 역군의 사회에서는 그런 고민을 하는 소위 인문 지성은 불필요한 것이고 산업 역군의 감성을 상대로 하는 기쁨조만이 필요한 것이다. 인성 교육의 영역을 감성에 국한하여 이해하는 것은 은연중 인문 지성의 필요를 부인해 왔던 시대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나는 의심한다.

9.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차례가 되어 에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곧 아리스토파네스의 에로스에 대한 정의를 부정하는 반론을 펼친다. 자기 것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 반론의 요지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속한 신체 부위라도 병들어 썩으면 잘라 낸다. 그렇듯 원래의 자기인 반쪽에서도 좋지 않은 것과는 합치려 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시사한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인간의 영혼은 아름답고 훌륭한 것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그 갈망이 에로스라는 것이다. 그 갈망은 자신이 충분히 아름답고 훌륭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불완전한 인간의 영혼은 계속 그 갈망을 가지고 존재한다. 아니 아예 그 갈망의 힘이 바로 영혼의 정체다. 그러니까 사랑을 이루는 것은 좀 더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향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말을 다시 해석해서 사랑을 이룬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아름답고 훌륭하게 확대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10.
인간은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되도록 오래 확보하기 위해 영원을 모방하는 짓을 한다. 후손을 남기는 방식 즉 생식 행위를 통해 확보한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 가능한 한 지속되게 하는 것이다. 생식이란 인간이 서로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짝을 찾아 둘의 아름답고 훌륭함을 합쳐 새로운 생명체에 구현해 후세에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성 간의 사랑은 어쨌든 자식을 생산하는 성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11.
‘같이 있음’ 또는 ‘만남’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의 syunousia는 때로 성교를 시사하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이 생각한 교육은 synousia라는 말로 아주 적절하게 표현될 수 있다. 플라톤이 말하는 교육은 성교처럼 사람과 사람이 밀도 높게 만나는 일이다. 그런 만남이 바로 이 글의 주제인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그 만남은 아름다움과 훌륭함에 대한 갈망인 에로스에 의해 성사된 것이기에 그냥 만나는 사람들 서로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린 반쪽끼리의 만남에서와 같이 둘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부둥켜안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만남은 갈망의 대상인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마치 자식을 낳듯이 결실로 만들어 남기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고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무엇이 아름답고 훌륭한 것인지 인지하고 좀 더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찾아내는 탐구를 핵심으로 하는 일이다. 낮은 단계에서는 덮어놓고 끌리는 것 같아 충동적인 감성만이 작동하는 것처럼 여겨질지 몰라도 정신적인 것에 관심을 돌리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정말 아름다운 것, 훌륭한 것을 그렇지 못한 것, 덜 그런 것과 분간해 내는 지성이 작동한다. 듣기에 좀 이상하겠지만, 그 단계에서의 만남은 지성적인 성교와도 같은 것이겠다.

12.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향연』의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린 것과 같은 결합이 아니라 아름답고 훌륭한 것에 대한 에로스에 의해 추동(推動)되어 좀 더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결실로 얻고자 하는 것이라면 플라톤에게서 가르침은 그와 같은 결실을 목표로 젊은이를 성장시키는 내용을 담은 것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13.
오늘날 우리가 차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논의할 때 그 논의가 제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이끌어 주는 것은 좀 더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문제의식일 것이다. …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논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다. 교육 내용에 관한 문제는 비교적 답이 간단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즉 대학에서는 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가르치면 되고, 그 이전 단계의 학교에서는 그 전문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적 바탕을 마련하는 과목을 가르치면 된다는 것이 우리 대부분이 생각하는 정답이다. 플라톤의 교육에 대한 생각을 따라 그 답을 해 보라면 사회 발전이라는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범용의 구호를 동원하는 대신 사회 구성원 각자가 다 아름답고 훌륭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끔 해 주는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고 답을 해야 한다.

14.
실용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생각한다. 기하학은 다 알다시피 서양 말 geometry의 어원에서 읽어 낼 수 있듯이 고대 이집트의 측량술이 그리스로 수입, 변형되어 탄생한 학문이다. 나일 강 유역의 넓은 비옥한 땅이 있었던 이집트에서 측량술은 참으로 실용적인 지식이었다. 홍수가 난 후 토지를 측량하여 소유권을 재확정해 준다는 현실의 요구에 부응하는 지식이었다. 그러나 그런 측량할 땅을 가지지 못한 고대 그리스에서 그 지식은 쓸모가 없었다. 그럼에도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 지식을 받아들여 그것을 현실의 땅 대신 머릿속에 순수 공간을 구상해 그 위에 도형을 그리고 그 도형들의 관계를 관조하는 학문으로 발전시켰다. 그 학문은 참으로 비실용적이었다. 유명한 무한의 공리를 생각해 보자. 무한까지 그은 두 직선이 만날까 또는 만나지 않을까에 관한 언명을 담은 이 공리는 정말 쓸모없는 내용이다. 무한한 크기의 땅도 없고 땅 위에 하릴없이 한없이 직선을 그을 일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삼각형의 두 변의 길이의 합이 다른 한 변의 길이보다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정리도 있다. 먹이를 앞에 놓고 우회로를 택하지 않고 곧장 달려가는 개조차도 아는 것을 짐짓 모르는 것처럼 증명해 보라는 요구는 참으로 한가한 짓이다. 그렇지만 무한을 그리고 우아한 논리적 추론의 절차를 생각해 내는 인간 머리의 지적 모험은 그 자체로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해 보인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체계는 선생과 학생이 만나 지적인 모험을 통해 만들어 낸 아름답고 훌륭한 결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플라톤이 생각한 교육을 통해 이룩된 성취다. 다시 말해 아름답고 훌륭한 것에 대한 갈망을 지닌 인문 지성의 성취다. 눈앞의 실용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런 성취는 불가능하다.

June 12, 2017: 4:55 pm: bluemosesErudition

1. 한 무리의 대학 신입생들이 시험지가 놓인 책상 앞에 앉는다. 이들은 미국 스탠퍼드대, 프린스턴대, 영국 케임브리지대 등 해외 유명 대학에 합격한 한국 학생들. 이들 앞에 놓인 것은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지다. 과연 세계 최고 명문대 합격생들의 수능 점수는 몇 점일까. 결과는? 전멸이었다. 단 한 명의 학생도 1등급을 받지 못했다. 놀라운 것은 공대 합격생들조차 수학과 과학탐구 점수가 엉망이었다는 점이다. ‘반타작’ 수준인 학생도 있었다.

2. 한 학생은 “외국에선 시험 때 공학용 계산기를 활용해 수학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 안에 일일이 빠르게 실수 없이 계산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수학뿐 아니라 과학에도 왜 이렇게 암기나 계산 문제가 많으냐”며 “한국과 외국의 과학교육이 추구하는 목표가 전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이 해외에서 경험한 과학 입시문제는 ‘두 개의 다른 종의 생물이 만났을 때 진화하는 과정을 추론해보라’ 등 ‘진짜 과학자’ 같은 생각이었던 반면에 수능에서는 주기율표를 외우고 분자량을 계산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해 보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생은 “외국에서의 입시가 ‘내가 아는 지식과 생각을 쓰는’ 것이라면 수능은 ‘모르는 걸 계속 읽고 맞히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3. 한 방송사의 교육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해외 명문대에 합격한 한국 학생들의 수능 테스트 사례를 소개한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장은 “이래도 수능이 가장 타당하고 뛰어난 인재 선발 시스템이냐”고 말했다. … 그는 “시험에 나오는 문제가 바뀌지 않으면 교사도, 학생도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거나 공부할 수 없다”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발생 연도를 묻는 한국의 시험과 ‘전쟁 후의 평화합의가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킨다는 의견에 대한 생각’을 묻는 교육 선진국의 시험 중 무엇이 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재를 낳겠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일각에서 수능에 일부 서술형을 도입할 것 등을 제안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정답을 외워야 하는 평가와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평가는 전혀 다른 것인데 이를 섞는 것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얘기다. 또 수능과 EBS 출제 연계는 고교 교실을 ‘문제집 암기장’으로 만든 최악의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April 10, 2017: 11:18 am: bluemosesErudition

오답 증례 검토로 일관된 책은 아도르노처럼 침울하고 공허하다. 왜 아닌가의 기준, 본질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은 정답이 하나임을 상기시킨다.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나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이다.”

April 1, 2017: 9:40 am: bluemosesErudition

“정치권에 있는 분들이 옛날 정시입학 세대이기 때문에 정시를 옹호하는 것 같다. 변화된 입시상황을 보자면 수시를 통해 객관성과 공정성만 보장된다면 다소 고3 때 부족하더라도 우리 대학에서 잘 공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 인재를 발굴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