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도 최근 내 ‘예측’을 배반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고바야시 다키지의 소설 <게잡이 배>(蟹工船)가 올해 2월께부터 갑자기 팔리기 시작해 책을 낸 출판사도 대폭 증쇄를 했다고 한다. 세계 대공황이 일어난 해인 1929년에 쓴 대표작 <게잡이 배>에서 그는 소련령 캄차카 영해를 침범해 게를 잡고 배 위에서 가공해 통조림으로 만드는 게잡이 배를 무대로 지옥 같은 혹사와 학대를 당하며 일하는 민중의 모습을 그렸다. 그 폭력은 회사의 이윤과 대일본제국 국책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이런 상황을 참아내기 어려웠던 노동자들은 결국 자연발생적으로 들고 일어나 스트라이크에 돌입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리라 믿고 있던 일본 해군의 탄압에 직면한다. 여기에 묘사되고 있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그 본원적 축적기에 저지른 비인간적 착취의 진실이다. 이러한 진실을 그렸다는 이유로 작가 고바야시는 치안유지법과 불경죄로 검거된 뒤 일단 석방돼 지하생활을 시작했으나 1933년 2월20일 내통자의 밀고로 다시 체포당해 바로 그날 경찰의 모진 고문 끝에 학살당한다. 중국의 문호 루쉰은 고바야시 다키지의 죽음을 기려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일본과 중국의 대중은 원래 형제다. 자산계급은 대중을 속이고 그 피로 경계선을 그었다. 그리고 계속 긋고 있다. 하지만 무산계급과 그 선도자들은 피로 그것을 씻어낸다. 동지 고바야시의 죽음은 그것을 실증하는 한 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굳건히 동지 고바야시의 핏길을 따라 전진하고 손을 맞잡을 것이다.”
지금 그 고바야시의 <게잡이 배>가 일본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빈곤’이라는 단어 자체가 실감을 동반하지 않는 사어가 돼 있었다. 고바야시 다키지 따위를 읽는 것은 연구자나 기인들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빈곤’이 다시금 절실한 실감 속에 거론되는 사회가 됐다. 젊은이들이 <게잡이 배>를 읽는 것은 거기에 묘사된 비인간적인 착취의 세계에 자신들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을 과대평가해선 안 될 것이다. 경험도 조직도 없는 고립된 비정규직인 그들은 점점 출구 없는 게잡이 배 밑바닥으로 내몰리고 있다.”(서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