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ne 7th, 2008

June 7, 2008: 5:34 pm: bluemosesErudition

“일본에서도 최근 내 ‘예측’을 배반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고바야시 다키지의 소설 <게잡이 배>(蟹工船)가 올해 2월께부터 갑자기 팔리기 시작해 책을 낸 출판사도 대폭 증쇄를 했다고 한다. 세계 대공황이 일어난 해인 1929년에 쓴 대표작 <게잡이 배>에서 그는 소련령 캄차카 영해를 침범해 게를 잡고 배 위에서 가공해 통조림으로 만드는 게잡이 배를 무대로 지옥 같은 혹사와 학대를 당하며 일하는 민중의 모습을 그렸다. 그 폭력은 회사의 이윤과 대일본제국 국책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이런 상황을 참아내기 어려웠던 노동자들은 결국 자연발생적으로 들고 일어나 스트라이크에 돌입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리라 믿고 있던 일본 해군의 탄압에 직면한다. 여기에 묘사되고 있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그 본원적 축적기에 저지른 비인간적 착취의 진실이다. 이러한 진실을 그렸다는 이유로 작가 고바야시는 치안유지법과 불경죄로 검거된 뒤 일단 석방돼 지하생활을 시작했으나 1933년 2월20일 내통자의 밀고로 다시 체포당해 바로 그날 경찰의 모진 고문 끝에 학살당한다. 중국의 문호 루쉰은 고바야시 다키지의 죽음을 기려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일본과 중국의 대중은 원래 형제다. 자산계급은 대중을 속이고 그 피로 경계선을 그었다. 그리고 계속 긋고 있다. 하지만 무산계급과 그 선도자들은 피로 그것을 씻어낸다. 동지 고바야시의 죽음은 그것을 실증하는 한 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굳건히 동지 고바야시의 핏길을 따라 전진하고 손을 맞잡을 것이다.”

지금 그 고바야시의 <게잡이 배>가 일본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빈곤’이라는 단어 자체가 실감을 동반하지 않는 사어가 돼 있었다. 고바야시 다키지 따위를 읽는 것은 연구자나 기인들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빈곤’이 다시금 절실한 실감 속에 거론되는 사회가 됐다. 젊은이들이 <게잡이 배>를 읽는 것은 거기에 묘사된 비인간적인 착취의 세계에 자신들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을 과대평가해선 안 될 것이다. 경험도 조직도 없는 고립된 비정규직인 그들은 점점 출구 없는 게잡이 배 밑바닥으로 내몰리고 있다.”(서경식)

: 3:49 pm: bluemosesErudition

2008년 5월, 홍성사 출간. “오늘 더 사랑해”

‘화보’를 훑어보며 치밀어 오르던 반감은 소리없이 잦아들었고 이내 환희로 변해갔다. 현실태와 무관한 지나치게 밝은 풍요는 빈축을 사기에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유토피아 안에서 살아가는 그네들은, 디스토피아 속에서 죽어가는 저희들이 망각한 타인에 대한 감성을, ‘매력’이란 이름으로 복원하고 있었다. 상술한 책에서 유지태가 언급하듯, “진정한 전도는 … 예수님을 믿는 가정이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타인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사랑을 전하는 것은 남에게 자신의 것을 종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타인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삶을 행복하게 영위할 줄 아는 것이다.” 수억원을 호가하는 골프회원권이 난무하는 시대,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비정규직이 배회하는 사회를 구름잡듯 거머쥔 채 맑스와 라캉 같은 허다한 인명을 들먹이며 세태를 비판함으로써 우월감을 느낄 뿐 정작 제 호주머니에 있는 동전 하나 선뜻 내밀지 못했다. 오히려 인격의 이중성을 감추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것이 연단되지 않은 미덕’이라며 어디선가 주워삼킨 구절 하나를 - ‘부자들의 나눔’을 폄하하는 무기로 삼아 -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내뱉었다. 논어에 따르면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소인에서 군자로의 도야는 자기에서 세상으로, 다시 말해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순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이타적으로 확장된다. <오늘 더 사랑해>에서 ‘션’과 ‘혜영’이 보여준 ‘홀트’와 ‘컴패션’, 그리고 ‘밥퍼’ 등의 공동체 활동과 ‘AISEC 만원의 행복’ 강연 등은 허풍선의 가식적 바람을 빼기에 충분했다. 이재철 목사의 출판 기획이 시의적절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혜영이를 공주처럼 생각하고 공주처럼 대해 주며 산다. 공주의 남편인 나는 왕자가 된다. 나는 우리 딸 하음이도 공주처럼 생각하고 공주처럼 대해 주며 산다. 공주의 아빠인 나는 왕이 된다. 공주가 되고 싶으면 남편을 왕자로 대하고, 왕자가 되고 싶으면 아내를 공주로 대하고,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고 대해 주면 나도 그만큼 귀해지는 것 같다.”(136쪽) - Bles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