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순재 당시 대학생들의 취미는 굉장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뮤직홀에 가서 종일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게 전부였죠. 그때 세계 각국의 좋은 영화들을 많이 봤어요. 이태리의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영화, 불란서의 누벨바그 영화, 셰익스피어 원작의 영화 같은 작품들이죠. 그러다 2학년 2학기 때 영국의 대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가 연출·출연한 ‘Hamlet’(1948)이란 영화를 봤는데 ‘이건 예술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만해도 배우라는 직종을 ‘딴따라’라고 하며 천대했는데, 이 사람은 연기라는 행위로 경(Sir) 작위를 받았거든요. ‘연기가 예술적 창조 행위’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김동원 선생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셨을 때는 배우에 대한 인식도 거의 드물었을 텐데요. 연기 공부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순재 외국 잡지를 뒤져가면서 리서치를 했어요. 그리고 영화를 볼 때 관심 가는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했습니다. 캐롤 리드Carol Reed 감독이 연출한 ‘The Third Man’(1949)은 하루에 4번을 연달아 봤어요. ‘Odd man out’(1947)은 7번 보며 거의 대사를 다 외다시피 했고요. 이렇게 마니아가 되면서 점차 연기에 빠지기 시작한 거죠. 이때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과 함께 ‘극단 실험극장’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었습니다. 국어사전 펴 놓고 발음부터 연출, 극에 관한 학문적 토론까지 특별한 선생 없이 독학했지만 정말 철저하게 학습했어요.
김동원 1956년도에 데뷔하신 후 벌써 60년이 흘렀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연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순재 연기라는 게 본인 스스로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고, 관객이 평가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어느 면에선 동일할 수 있지만, 조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행위의 잘잘못은 본인이 제일 잘 알지 않습니까. 자기 기준이 뚜렷하면 객관적으로 높이 평가 받거나 평가 절하되거나 크게 흔들릴 일이 없어요. 그래서 높은 기준으로 항상 자기 역할과 행위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