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September 1st, 2018

September 1, 2018: 3:36 pm: bluemosesErudition

요한복음 15장 3절에서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제해버리다’라는 말이 ‘깨끗함’이라는 말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그리고 ‘깨끗함’이 ‘과실을 맺지 아니함’과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대답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할 수 있다. 첫째, 요한복음 15장에 ‘제해버리다’라고 번역된 ‘아이로(airo)’라는 헬라어 단어의 보다 분명한 의미는 ‘들어올리다’ 혹은 ‘집어올리다’이다. 예를 들어, 아이로의 보다 정확한 번역은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후 제자들이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차게 ‘거둔’ 사건(마14:20)과 구레뇨 시몬에게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한’ 사건(마27:32) 그리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설명했던 사건(요1:29)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상 성경에서나 헬라어 문학에서 아이로라는 단어가 ‘제해버리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5장에 ‘제해버리다’라고 표현된 것은 적당하지 않은 해석이다. ‘들어올리다’라는 말은 가지를 들어올리기 위해 그 위로 상체를 굽히는 농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왜? 그 대답을 몇 년 전 웨스트 코스트에서 있었던 목사들을 위한 수련회에서 알게 되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한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요한복음 15장을 이해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완전하게는 아닌데요. 왜 그러세요?”라고 대답했다. “전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큰 포도밭을 재배하고 있어요. 그래서 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앉자 그는 포도밭 곳곳을 다니며 오랜 시간 포도나무를 손질하고 포도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추수하기에 가장 좋은 날을 기다리는 농부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지들은 밑으로 쳐져 땅 위를 기며 자라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되면 열매를 맺지 못해요. 땅 위를 기면서 가지가 퍼지게 되면 잎들이 먼지에 뒤덮이게 되거든요. 그리고 비가 오면 진흙이 묻고 곰팡이가 피게 돼요. 그러면 가지는 병이 들고 쓸모없게 되지요”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럼 어떻게 하시나요? 잘라서 던져버리나요?” 나는 물었다. 그는 “아니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가지는 던져버리기에는 너무 귀해요. 우리는 물이 든 양동이를 가지고 포도밭을 돌아다니며 그런 가지들을 찾아요. 그리고 들어올려서 씻어주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검게 그을린 거친 손으로 내게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런 다음 울타리 주위에 매주거나 그 위에 묶어주지요. 그러면 곧 무성하게 잘 자라요.” 그가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그날 밤 포도밭에서 가르치시며 하셨을 예수님의 손동작을 그려볼 수 있었다. 예수님은 맛있는 과실의 풍작을 위해 아버지께서 어떻게 그 농작물을 돌보시는지 확실하게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떨어진 가지들을 흙 속에 내버려두거나 던져버리지 않으신다. 들어올려 깨끗이 닦아주시고 다시 무성해질 수 있게 도와주신다. 불현듯 나는 놀라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다. 들어올려… 깨끗케 하고… 그 후로 나는 요한복음 15장을 다시는 그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읽지 않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죄는 포도 잎사귀를 뒤덮는 먼지와 같다. 공기와 빛을 차단한다. 그래서 가지는 시들어가고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된다. 우리의 농부께서 진창과 곤경에 빠진 우리를 어떻게 들어올리시는가? 바구니에 열매를 채우는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의 황폐해진 가지를 어떻게 아름답게 하시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포도나무의 첫번째 비밀이다. 포도나무의 첫번째 비밀.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이 계속된다면 하나님께서 징계하기 위해 당신의 삶에 개입하실 것이다. 필요하다면 회개하게 하시려고 고통스런 방법을 사용하실 것이다. 그분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보다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죄로부터 자유케 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이 과정을 훈계 혹은 징계라 말하고 있는데 나는 우리가 듣고 싶어하지 않았던 가장 좋은 소식이라 부른다. 징계는 우리가 추구하는 헛되고 파괴적인 것들로부터 떠나도록 우리를 들어올리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실 때 일어나게 된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신8:5)

_ 브루스 윌킨슨+데이빗 콥, <포도나무의 비밀>, 디모데, 2002, 52~58쪽.

: 2:33 pm: bluemosesErudition

욧잇. 요의 몸에 닿는 쪽에 시치는 흰 헝겊.

: 1:26 pm: bluemosesErudition

가장 힘들었을 때는.

“2014년 버지니아공대에서 UCLA로 옮길 때였다. 굳게 믿었던 멘토 교수에게 배신을 당해 나의 분신 같은 로봇들을 모두 뺏겼다. 내 최고의 걸작품이었던 휴머노이드 로봇을 강탈당한 거다. 나는 여기서 끝나는가 보다, 이제 더 이상 길이 없나 보다 싶었다. 로봇이 없는데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나. 하지만 로봇도, 사람도 넘어져야 배운다는 말이 맞았다. 이렇게 된 거 아예 새롭게 가자 싶었다. 마침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 다녀온 뒤 사람처럼 걷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한계를 절감하던 터였다. 너무 느리고 비싸고 잘 넘어졌다. 발상을 전환했다.”

이후 그는 로봇의 몸통을 직육면체로 과감히 바꾼 뒤 발레리나와 펜싱 선수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어 두 다리를 좌우가 아닌 앞뒤로 배치했다. 그러자 수많은 미제들이 순식간에 해결됐다. 그의 명성은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그는 월트 디즈니의 사례를 떠올렸다. “디즈니도 오스왈드라는 토끼 캐릭터를 만들고 꿈에 부풀어 있을 때 믿었던 프로듀서에게 어이없이 뺏기며 모든 걸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좌절 대신 메모지와 펜을 꺼내 새로운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미키 마우스였다. 내가 만든 로봇들을 뺏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 또한 없었을 거다.”

그의 실패론은 계속됐다.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할 수 없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혁신은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걸을 때 나오는 법이다. 떨어질까 무서워 안전한 곳으로만 가면 혁신은 불가능하다. 연구소에서도 학생들에게 로봇을 일부러 고장 내게 한다. 고장이 나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행복한 거고 실패하면 배운 거다.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뽑아내는 것. ‘긍정은 언제나 길을 찾는다’가 내 신조인 이유다. 실패에서 배우면 더 이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 1:22 pm: bluemosesErudition

나희덕의 문학은 만물에 대한 글썽임에서 시작한다. 고아원을 운영한 부모님 덕에 시인은 소외된 아이들과 가난하고 외롭게 자랐다. 만물에 대한 글썽임은 그때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1989년 본지 신춘문예로 등단했을 때 그는 소감에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발표 지면이 아니라 삶의 억압 속에서도 살아있는 목소리를 가지는 것이다”라고 썼다. 그는 25년 동안 세상의 고통과 치열하게 대면하면서 약속을 지켰다. …. 미당처럼 타고난 서정시인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부수고 새로 지었다. 특히 근 몇 년은 올해 초 발표한 시집의 제목처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그건 죽음과 비애와 눈물의 말이다. 20대의 나희덕은 사랑과 윤리, 종교적 세계관 속에 살았고 30대엔 사랑과 치욕의 양면성을 알게 됐으며 마흔을 넘어서면서 도처의 죽음을 끌어안았다.

“일찍 결혼하고 나서 생활인으로서의 누추함을 알게 됐어요. 메워도 메울 수 없는 빚이 정신을 짓눌렀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과하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아이들이 ‘엄마는 파란만장을 자초하고 산다’고 말해요. 일부러 불안정적인 요소를 늘려가는 것 같아요. 그것이 시를 쓰기에 고집스럽고 완고한 저를 길들이고 죽이는 방법인 거죠.”

: 1:48 am: bluemosesErudition

막연한 인식. 더 알아가고 더 헤아리는 것. 해석학적 순환 속에 이루어지는 지평융합

: 1:46 am: bluemosesErudition

초월론적 현상학 _

세계의 일부인 의식이 구축한 세계(= 유식무경, 일체유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