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h, Wind and Fire _ September
16. 난 철학자들의 글을 꾸준히 읽는다. 그들은 참 괴상하고 웃기고 대책 없는 작자들 - 도박꾼들이다. … 난 이 작자들이 사랑스럽다. 그들은 세상을 뒤흔든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느라 골머리가 쑤시지 않았을까? 이빨 사이로 암흑이 몰려나오며 포효하지 않았을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길에 나다니거나 카페에서 뭘 먹거나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들과 대비해보면 차이가 너무도 엄청나서, 내 속에서 뭔가 뒤틀리며 창자를 발길질한다.
17~18.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다, 제 자신의 죽음이건 남의 죽음이건. 사람들에게 죽음은 충격이고 공포다. 뜻밖의 엄청난 사건 같다. 염병, 어디 그래서 되겠나. 난 죽음을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때때로 꺼내서 말을 건다, “이봐, 자기, 어찌 지내? 언제 날 데리러 올 거야? 준비하고 있을게.” 꽃이 피어나는 것이 애도할 일이 아니듯, 죽음도 애도할 일이 아니다. 끔찍한 건 죽음이 아니라 인간들이 죽기까지 살아가는 삶, 또는 살아보지 못하는 삶이다. 인간들은 제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제 삶에 오줌을 싸댄다. 제 삶을 똥 싸갈기듯 허비한다. 멍청한 씨댕이들. 그들은 씹질, 영화, 돈, 가족, 그리고 또 씹질, 따위에 너무 몰입한다. … 골통엔 솜만 꽉 찼다. 그들은 생긴 것도 추하고, 말하는 것도 추하고, 걷는 것도 추하다. 수세기 만에 한 번 나올 법한 위대한 음악을 틀어줘도 들을 줄을 모른다. 대다수 인간들의 죽음은 짝퉁이다. 죽을 게 남아 있어야 말이지.
26. 내 첫 번째 아내가 인도에서 죽은 채 발견됐건만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시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불쌍한 사람. 목뼈가 불구라 목을 돌리진 못했다. 그것 말곤 완벽하게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 사람이 원해서 이혼을 했는데, 그 사람으로선 잘한 일이었다. 난 그 사람을 구원할 만큼 자상하지도 대범하지도 못했다.
35~36. 어떤 작가들은 지난 날 자기 독자들의 마음에 들었던 걸 또 쓰는 경향이 있다. 그랬단 끝장이다. 대다수 작가들은 창작 수명이 짧다. 그들은 찬사를 들으면, 그걸 믿어버린다. 글쓰기의 최종 심판관은 딱 한 명, 작가 자신밖에 없다. 작가는 평론가, 편집자, 출판업자. 독자에게 휘둘리는 날엔 끝장이다.
39. 최고의 제목 몇 가지가 기억났다. 다른 작가들의 제목 말이다. 『나무와 돌을 경배하라』. 대단한 제목에 너절한 작가. 『지하에서 온 편지』. 대단한 제목에 대단한 작가. 또,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카슨 매컬러스, 매우 저평가된 작가.
42. 내 생각에, 사람이 죽은 뒤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건 망자의 신발을 쳐다보는 거다. 그건 더없이 슬프다. 망자의 됨됨이가 마치 신발 속에 깃들어 남아 있는 듯하다. 옷가지, 그건 아니다. 신발이다. 또는 모자나 한 켤레 장갑이다. 한 사람이 지금 막 죽었다 치자. 어디 한번 망자의 모자나 장갑이나 신발을 침대에 올려놓고 쳐다봐라. 그랬단 미치기 십상이다. 그런 짓은 하지 마라. 어쨌든 망자는 네가 모르는 무언가를 이제 안다. 어쩌면.
130. 말을 다루는 내 능력에 회의가 들기 시작하면 난 그냥 딴 작가를 읽는데, 그러고 나면 걱정할 게 없다는 걸 난 알게 된다. 내 시합 상대는 내 자신이다. 제대로, 힘차고 드세고 즐겁게, 도박하듯 하는 거다. 그러지 않으려면 관둬라. 외톨이로 지내기로 한 건 현명한 결정이었다. 지금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 어찌 됐든 내겐 염병할 경마가 있다. 난 언제라도 경마에 관해, 그 거대한 정체불명의 빈 구멍에 관해 쓸 태세가 돼 있다. 내가 거기 가는 건 나 자신을 희생물 삼고, 시간의 사지를 잘라내고 죽이기 위해서다. 시간을 죽여야만 한다. 기다리는 동안. 완벽한 시간은 이 기계 앞에 앉아 있을 때다. 그러나 불만족스러운 시간이 없인 완벽한 시간도 얻을 수 없다. 열 시간을 죽여야만 두 시간을 살릴 수 있으니까. 주의해야 할 게 있다. 시간을 모두 다, 세월을 모두 다 죽이면 안 된다.
177. 선장은 점심 먹으로 나가버리고 선원들이 배를 접수했다.
183.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는 독일 태생의 미국 시인, 소설가 찰스 부코스키(Henry Charles Bukowski, 1920~1994)의 The Captain is Out to Lunch and Sailors have Taken Over the ship(1998)을 옮긴 것이다. 부코스키가 죽고 4년 뒤 출간된 이 책은 그의 1991년 8월부터 1993년 2월까지의 일기를 골라 모은 것이다.
185. [부코스키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삶을 열심히 살아나가도록 하는 활력의 원천 - “연료 탱크 속 휘발유” - 으로 보는가 하면, “꽃이 피어나는 것이 애도할 일이 아니듯, 죽음도 애도할 일이 아니”라는 발언에서 드러나듯, 죽음을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 또는 과정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이런 생각은 불교의 생사관을 방불케 하는데, 알고보니 부코스키의 장례는 불교 승려가 집전했다.
189. 출판업계지 『퍼블리셔스 위클리』(2011년 7월 13일자) 기사에 따르면 부코스키는 미국 서점에서 책을 가장 많이 도둑맞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책은 어느 것이든 잘 사라지기 때문에, 계산대 뒤 서가에 따로 보관하는 서점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부코스키 다음은 윌리엄 버로스의 모든 책,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마틴 에이미스의 모든 책 순이었다.
189. 그의 묘비에는 “Don’t Try”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문학 지망생에게 주는 충고이기도 한 이 말을 부코스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글을 쓰느냐, 창작하는 방법이 뭐냐고. 그래서 답했다. 애쓰지 마라,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노력하지 ‘않는’ 것, 목표가 캐딜락이든 창조든 불멸이든 간에 말이다. 기다려라.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좀 더 기다려라. 그건 벽 높은 데 있는 벌레 같은 거다. 그게 너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려라. 그러다가 충분히 가까워지면, 팔을 쭉 뻗어 탁 쳐서 죽이는 거다. 혹시 그 생김새가 마음에 든다면 애완용으로 삼든지.
_ 찰스 부코스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모멘토, 2015.
The Loneliness One dare not sound
85. 고독은 잴 수 없는 것(The Loneliness One dare not sound)
87. 추방하라, 허공으로부터 허공을(Banish Air from Air)
97. 행위는 처음에 생각을 노크하지(A Deed knocks first at Thought)
117. “시인은 신비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말해져 버리면 시인은 은행원보다도 신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미국의 시인 앨런 테이트의 견해는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신비하고 영원한 처녀 시인에게 그 어떤 이야기보다 정당성을 지닌다.
_ 에밀리 디킨슨, 강은교(역),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민음사, 2016.
51. 비밀스런 음란의 가림막, 겉창들이 / 누옥마다 걸려 있는, 낡은 성밖길 따라, / 거리와 들판에, 지붕과 밀밭에, / 사나운 태양이 화살을 두 배로 쏘아 댈 때, / 나는 홀로 환상의 칼싸움을 연습하려 간다, / 거리 구석구석에서마다 각운의 우연을 냄새 맡으며, 포석에 걸리듯 말에 비틀거리며, / 때로는 오랫동안 꿈꾸던 시구와 맞닥뜨리며.(「태양」)
73. 오 가을의 끝, 겨울, 흙물에 젖는 봄, / 졸음을 몰고 오는 계절들! 나는 사랑하고 기리노라, / 안개와 수의와 몽롱한 무덤으로 / 내 마음과 뇌수를 이처럼 감싸 주는 그대들을. … 그대 창백한 어둠의 한결같은 모습보다, / - 달도 없는 어느 저녁에, 둘씩 둘씩, / 아슬아슬한 침대에서 고뇌를 잠재우기가 아니라면.(「안개와 비」)
81. 짐승으로 둔갑하진 않으려고, 허공과 빛살에, / 불타오르는 하늘에 그들은 심취하니, / 살을 물어뜯는 얼음, 피부에 구리를 씌우는 태양이 / 입맞춤의 자국들을 천천히 지운다.(「여행 - 막심 뒤캉에게」)
104. 파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을 보았으며, 스무 살이 될 때까지 파리 소재 각급 교육기관의 학생으로 살다 자신에게서 문학과 예술의 취향과 재능을 발견하면서 급속하게 보헤미안의 생활에 빠져들었으며, 그것을 염려한 가족들의 권유로 결국 끝마치지 못할 인도 여행을 떠났으며, 귀국 후에는 여러 젊은 문인들과 우정을 맺으며 자기 아버지의 유산으로 부유하고 재능 있는 파리의 건달이 되었으며, 끝내는 가족들에게 유산을 회수당하고 금치산자가 되어 가난한 생활로 영락했으며, 그래서 문학비평과 미술비평으로 생활비를 벌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실천된 동시대인들에 대한 폭넓고 면밀한 성찰로 새로운 문학사적 도정을 개척하고 만 보들레르의 이력은 우리에게 이미 낯선 것이 아니다.
104. 보들레르는 1857년 『악의 꽃』이란 제목으로 한 권의 시집을 출판했다. 그러나 이 시집은 ‘반도덕성’을 이유로 법의 심판을 받는다. 시집의 출판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려 했던 보들레르는 오히려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지불해야 했으며, 시집은 여섯 편의 시를 삭제당하여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4년 후인 1861년 삭제된 여섯 편의 시 대신 서른다섯 편의 시를 더하여 『악의 꽃』 재판을 출간한다.
110. 에메 세제르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흑인 버전으로 번안한 『또 하나의 템페스트』에서 흑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해 이 시(「이국의 향기」)에서 두 구절을 인용했다. “몸매 날씬하고 힘찬 사나이들, 그 솔직한 시선이 놀라운 여자들.”
114. 티볼리는 옛날 생라자르 역의 자리에 있던 공원이다.
117. (「여행 - 막심 뒤캉에게」은) 1959년 일부가 낱장으로 인쇄되었으며, 같은 해에 <프랑스평론>에 발표되었다. 『악의 꽃』의 초판과 재판에 모두 마지막 시로 수록되었다.
117. 인간이 만든 것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으며, 보들레르가 늘 주장하는 ‘원죄에서 벗어나는 일’에 도움을 줄 수도 없다. 오직 하나 남아 있는 여행은 ‘죽음’이다. 죽음의 밑바닥에서 미지의 ‘새로운 것’을 찾는다는 말은 죽음을 걸고 이 삶에서 다른 삶을 상상하여 삶을 본질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것이 이 시의 결론이며 『악의 꽃』의 마지막 말이다.
_ 샤를 보들레르, 황현산(역), <악의 꽃>, 민음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