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중앙정치는 넓게 보아 국왕과 신하라는 양대 정치세력에 의해 운영되었다지만 세밀히 들여다 보면 신하들은 품계의 고하와 직무의 차이에 따라 대신(의정부, 육조)과 대간(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으로 나누어진다. 의정부와 육조를 차지한 대신은 요즘의 행정부고, 대신에 대한 감찰은 물론이고 국왕에 대한 간쟁을 도맡은 삼사는 오늘의 감사원·검찰·언론을 합친 기관이랄 수 있다. 똑같은 왕의 신하지만 이들의 역할은 매우 달랐다.
상위에서 정책의 포괄적 심의와 실제적 집행을 담당한 대신은 그 임무상 현실적·보수적 입장에 서며, 이 때문에 원칙에서 벗어난 논리와 방법도 용인하곤 한다. 반면 하위에서 탄핵과 간쟁을 맡은 대간은 이상적·급진적 견지에서 모든 문제를 바라보며, 원칙론적이고 도덕적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유망한 관원은 거의 대부분 삼사를 거쳐 대신으로 승진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훈구와 사림의 대립은 품계가 높은 원로 대신과 품계가 낮은 신임 대간 사이의 제도적·직능적 대립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중앙정치에 참여했던 인적 성원 모두가 연속성과 순환성을 갖고 직무를 나누어 맡는 구조 속에서 칼로 두부 자르듯 양립하는 훈구와 사림은 없었다는 말이다.
“조선의 정치는 국왕·대신·삼사라는 세 개의 주요한 정치세력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도록 되어 있습니다. 군약신강이라는 말도 있듯이 조선의 왕권은 다른 나라보다 전제성이 약하기는 했지만 국왕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으로 폭력적인 숙청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종 16년(1485년)에 반포된 『경국대전』은 각 관서의 기능을 포괄적이거나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었고 특히 대간에 의한 국왕 탄핵과 간쟁이 보장되었습니다. 이런 ‘경국대전 체제’가 틀 잡아 놓은 군신공치는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유지되는데, 연산군처럼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폭군만 예외였죠.”
_ 김범, <사화와 반정의 시대: 성종, 연산군, 중종대의 왕권과 정치>, 역사의아침,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