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우주에는 네 종류의 힘이 존재한다.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이 그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핵력을 느끼려면 태양을 보게 된다. 태양이 빛을 내는 이유는 핵력과 관련된 핵융합반응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에 가봐도 핵력의 위력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핵력은 방사능과 관련된 힘이다.

166. 모든 물체들 사이에 중력이 작용하지만, 지구상에서는 지구의 중력이 워낙 커서 다른 물체들의 중력은 있으나 마나다. … 손가락으로 지우개를 밀면 지우개가 움직인다. 이것은 무슨 힘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손가락으로 지우개를 밀 때, 방사능 걱정할 사람은 없으니 두 종류의 핵력(강한 핵력, 약한 핵력)은 아니다. 내가 지우개를 미는 것은 중력과는 관련 없다. 지구상에서 중력은 낙하를 일으킬 뿐이다. 우주에 힘이 네 개뿐이라고 했으니, 전자기력이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제5의 힘을 찾은 것이다.

167. 우리가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은 모두 전자기력이다. 우리 주변 대부분의 기계들이 전기를 이용하는 이유다. … 다른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167. 중력을 일으키는 것은 입자의 ‘질량’이다. 전자기력은 ‘전하’가 일으킨다. … 일상에서 전하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전하에는 양(+)과 음(-)의 두 종류가 있는데, 대개 이들이 같은 양만큼 있어 상쇄되어 전하가 없는 중성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양(+)의 질량을 상쇄시킬 음(-)의 질량은 존재하지 않기에 질량은 상쇄되는 법이 없다. 질량은 언제나 양(+)의 값을 갖는다. 그래서 중력을 숨길 방법은 없다.

167~168. 힘은 두 입자 사이에 작용한다. 입자가 혼자 있을 때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힘은 상호관계다. … 힘은 입자 사이의 거리가 중요하다. 놀랍게도 중력과 전자기력의 크기는 모두 거리 제곱에 반비례한다. 즉, 거리가 2배, 3배로 멀어지면 힘의 크기가 4배, 9배로 작아진다.

168. 전자는 전하와 질량을 모두 가지고 있으므로 중력과 전자기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두 전자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과 전기력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전기력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전기력이 4,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배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자를 연구할 때 중력은 완전히 무시된다.

171~172.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실전화기는 실의 진동으로 소리를 전달한다. 공간이 전자기장으로 가득하다면 장을 진동시켜 무언가 전달할 수도 있을 거다. 맥스웰이 전자기장의 진동을 기술하는 수식을 구하다보니, 놀랍게도 이 진동은 바로 ‘빛’이었다. … 전하가 있으면 그 주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장이 펼쳐진다. 중력도 마찬가지다. 질량을 가진 물체 주위에는 중력장이 펼쳐진다. 전기장을 만들면 전자기파가 생기듯, 중력장을 흔들면 중력파가 발생한다.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175. 맥스웰 방정식은 모든 전기현상을 네 개의 방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 방정식은 전기장과 자기장을 기술한다. 전기장과 자기장은 전자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마이클 패러데이가 도입한 것이다. 자석 주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장이란 것이 존재한다. 자석에 나침반을 가져가면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주변의 자기장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전하電荷’가 존재하면 주위에 전기장이 생긴다. … 전기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국면은 전류가 흐르는 도선 주위에 자기장이 생긴다는 발견이다. 전류는 말 그대로 전하의 흐름이다. 즉, 도선에 전류를 흘려주면 자석이 된다. 이름하여 전자석이다. 사실 전기로 움직이는 기계는 대부분 이 원리를 이용한다. 전기모터가 한 예다.

176~177. 맥스웰 방정식은, 전하가 있다면 그 주위 공간에 전기장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전류가 있다면 자기장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알려준다. 전기장, 자기장은 공간 어디에나 있다. … 자기장이 시간에 따라 변햐도 전기장이 만들어진다. … 쉽게 말해서 자석을 흔들면 주위에 전기장이 만들어진다. … 결국 도선 근처에서 자석을 흔들어주면 도선에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마술 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이것이 오늘날 발전소에서 전기가 만들어지는 원리다. 도선이 정지하고 자석이 흔들리나, 자석이 정지하고 도선이 흔들리나 마찬가지다. 실제 발전기에서는 고정된 자석 내에서 도선이 회전한다. 회전하는 부분을 터빈이라 부른다. 결국 터빈을 돌려주면 전기가 만들어진다. 수력발전에서는 물이 떨어지며 물레방아 돌리듯이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화력발전에서는 석탄으로 물을 끓이고, 뿜어져 나온 수증기가 터빈을 돌린다. 원자력발전도 방사능물질이 핵분열하며 내는 열로 물을 끓여 수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177~179. 전하가 있거나 자기장이 변하면 전기장이 만들어진다. 전류가 있거나 전기장이 변하면 자기장이 만들어진다. 멕스웰 방정식은 단지 이것을 수식으로 쓴 것에 불과하다. … 자기장이 변하면 전기장이 만들어진다. 반대로 전기장이 변하면 자기장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전기장이 자기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기장이 다시 전기장을 만드는 상황이 가능하지 않을까? 전하나 전류 없이, 오직 전기장과 자기장이 마치 에셔의 석판화 <그리는 손>처럼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가며 공간으로 진행한다. 맥스웰은 이것에 ‘전자기파’라는 이름을 주었다. 놀랍게도 전자기파가 정말 존재한다. 바로 ‘빛’이다.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다. 전자기파는 파장이나 주파수에 따라 그 종류가 나뉜다. 주파수가 커지는 순서로 차례로 알아보자. 우선 주파수가 작은 영역에 우리에게 익숙한, AM, FM 같은 라디오전파가 있다. TV나 핸드폰에 사용되는 전파도 대략 이 영역에 해당된다. 다음에 전자레인지에 쓰는 마이크로파가 나오고, 이후로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이 있다.

180. 맥스웰 방정식이 아니었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빛, 즉 전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 맥스웰의 전자기파를 실험으로 확인해준 사람은 하인리히 헤르츠였다. 그의 이름은 진동수의 단위에 남아 있다.

181~182. 상업전신이 개통된 것은 1844년이다. 전신은 전자석의 원리를 이용한다. 전기가 흐르면 자석이 되므로 금속을 끌어당길 수 있다. 금속을 전자석과 좁은 간격을 두고 고정시켜 놓으면, 전류가 흐를 때마다 금속이 전자석에 끌려가 부딪치게 된다. 이제 전기를 흘렸다 끊었다 하면 금속이 전자석에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스위치의 움직임을 금속의 움직임으로 전달할 것이다. 도선이 충분히 길어서 스위치는 서울에, 전자석은 부산에 있더라도 그 신호는 빛의 속도로 전달된다.

182~183. 전기를 이용한다는 것은 전기장과 자기장을 제어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에너지를 전기장 형태로 저장하는 장치를 ‘축전기’라고 하고, 자기장 형태로 저장하는 장치를 ‘코일’이라고 한다. … 전기를 이용하여 불을 밝히거나 전열기를 뜨겁게 하려면 전기에너지를 빛이나 열에너지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 해주는 장치를 ‘저항’이라 한다. 만물이 원자들의 조합으로 되어 있듯이, 결국 모든 전기 장치는 축전기, 코일, 저항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183. 라디오나 핸드폰 같은 장치는 전파를 보내거나 받을 수 있다. 전자기파를 송수신할 수 있어야 한다. 앞에서 전자기파는 전기장이 자기장으로, 자기장이 전기장으로 바뀌며 진행한다고 했다. 따라서 (전기장을 저장하는) 축전기와 (자기장을 저장하는) 코일을 서로 연결해주면 송수신기가 된다. 보통 코일을 L, 축전기를 C라고 쓰는데, 이런 연결회로를 ‘LC 공진회로’라고 부른다.

_ 김상욱, <떨림과 울림>, 동아시아,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