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 2019: 11:13 am: bluemosesErudition

“편안하게 지낼 적에 위태로움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대비가 있게 되고, 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습니다. 천하의 일은 어렵거나 일이 많은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편안한 것이 짐독(酖毒)이 됨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설령 정치가 잘 행해져서 해야 할 일이 한 가지도 없다 하더라도 아침저녁으로 두려워하고 거안사위하면서 조금이라도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 <좌씨전>, 주희가 송 효종에게 올린 봉사(封事)

: 12:24 am: bluemosesErudition

먼저 ‘인자’라는 칭호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인자’라는 칭호는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있는데, 사실 이 견해는 잘못된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고대 교회로부터 그렇게 가르쳐 오기는 했지만, 그 고대 교회가 주로 희랍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인자’라는 예수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즉 희랍 사람들이 히브리어의 숙어가 무슨 말인지를 제대로 모르는 바람에 고대 교회로부터 잘못 가르쳤던 것입니다.

‘인자’라는 칭호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이 칭호가 유대 문서, 특히 묵시 문학에 유행하던 메시아에 대한 칭호 가운데 하나였다는 주장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스스로 이렇게 ‘인자’라고 불렀을 때, 자기가 곧 메시아라는 것을 밝힌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책들을 펴내기도 하는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이 말은 도대체 칭호로 쓰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 문서에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더러 나오기는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처음으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에 ‘그’라는 관사를 붙인 표현, 즉 “그 ‘사람의 아들’”을 하나의 칭호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이상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칭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푸는 열쇠는 ‘그’라는 지시 관사에 있습니다. 유대 문서에 ‘사람의 아들’이란 말은 많이 나옵니다. 이 말은 단순히 ‘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셈족 언어의 숙어입니다. 칭호가 아니었습니다. 이 표현에다 예수님이 ‘그’라는 관사를 붙임으로써 자기가 어느 특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음을 나타냈고, 그리하여 ‘그’라는 관사와 더불어 ‘사람의 아들’은 하나의 칭호가 되었습니다.

다니엘 7장 13절에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시편 8편에도 나오고 에스겔서에도 여러 번 나옵니다.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 앞에 구름을 타고 오는 한 분을 보는데, 그분이 ‘사람의 아들’ 같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은 칭호가 아닙니다. 어떤 한 분이 나타났는데, 그분이 사람 같이 생겼다는 의미의 표현입니다. 그분이 구름을 타고 왔다는 점에서 신적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름은 오직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만 동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나타나도 구름을 타고 나타났다는 말은 없습니다. 구름이 나타나는 현상은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다니엘서 문맥을 보면, 구름을 타고 오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신적 존재’임을 알 수 있으며 그 신적 존재가 ‘사람 같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그 ‘사람의 아들’”이라 하셨을 때, 그리고 종말에 구름을 타고 천사를 동반하고 와서 이 세상을 심판하는 이로 나타난다고 하셨을 때, 분명히 다니엘 7장 13절을 두고 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_ 김세윤, <구원이란 무엇인가>, 두란노, 2001, 34~37쪽.

August 1, 2019: 5:00 pm: bluemosesErudition

279~280. 상대방의 주장을 부인하는 흔한 실수를 저지르지 마라. … 프레임이 사실을 이긴다. 프레임은 유지되고 사실은 튕겨 나간다. 언제나 프레임을 재구성하고 사실을 ‘나의’ 프레임에 맞추어라. 프레임 형성에 대해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이것 하나만은 기억하라. 일단 나의 프레임이 담론으로 수용되면,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 그냥 상식이 된다. 왜? 이미 자리 잡은 일상의 프레임 안에서 사고하는 것이 바로 상식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상대편의 시각에서 프레임이 구성된 질문에는 절대로 대답하지 마라. 언제나 나의 가치와 나의 프레임에 맞도록 질문의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 3:43 pm: bluemosesErudition

219. 프레임은 우리 뇌의 시냅스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신경회로의 형태로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만약 사실이 프레임에 부합하지 않으면, 프레임은 유지되고 사실은 무시된다.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은 진보가 믿는 흔한 속설이다. 만약 바깥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실을 모두 대중의 눈앞에 보여주기만 한다면, 합리적인 사람들은 모두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헛된 희망이다. 인간의 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 2:41 pm: bluemosesErudition

“지난 3월 11일 미 국방부는 올해보다 4.9% 증액된 7500억달러 규모의 2020 회계연도 국방예산을 편성해 의회에 제출했다. 7500억달러 중 순수 국방예산은 7180억달러이고, 나머지 320억달러는 미 에너지부(핵무기 예산) 등 다른 기관에 편성된 예산이다. 내년도 미 정부 예산은 국방 관련 부서(보훈부·국토안보부·국방부) 예산이 증가한 반면, 비국방 관련 부서 예산은 평균 5%가 감소한 것이 특징이다. 보훈부는 7.5%, 국토안보부는 7.4%가 각각 증액됐다.”

“패트릭 새나한(Patrick M. Shanahan) 미 국방장관 대행은 이번 국방예산이 <2018년 미 국방전략서>를 구현하기 위해 4가지 부문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그 4가지 부문은 ①우주 및 사이버 영역 장악 ②지상·해상·공중 영역 지배 강화 ③첨단 군사과학기술 개발 ④전투력 강화 등이다. … 새나한은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내년도 국방예산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평화를 원한다면 적들이 우리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도 우리가 되새길 필요가 있다.”

: 1:22 pm: bluemosesErudition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인들의 평균 임금은 남성 1만9100홍콩달러(약 288만 원), 여성 1만4700홍콩달러인데 홍콩 도심의 방 한 칸짜리 다세대주택 월세가 1만6551홍콩달러에 달한다. 매달 수입이 약 2만 홍콩달러인 레이먼드 신 씨는 월세가 2만 홍콩달러인 800평방피트(약 74m²) 집에서 살고 있다. 아내의 수입이 없으면 생활이 어렵다.

빈센트 입 씨는 “홍콩 반환 이후 매일 150명의 중국인이 중국 장기체류 비자를 받아 홍콩에 정착했다. 20여 년간 100만 명이 온 것이다. 홍콩 정부는 이들을 막거나 심사할 권한조차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 결과 홍콩 인구 700만여 명 중 7분의 1을 돈 많은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 그는 “이들이 집값과 물가를 올려 홍콩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며 “영국 식민지 때는 능력이 있으면 성공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중국과 인맥 등 관계가 조금도 없으면 어렵다”는 인식을 보였다.

: 1:02 pm: bluemosesErudition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란 자발적으로 고통의 세계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면의 명령에 이끌리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피 속에는 보통 사람들이 겪지 않는 불안과 좌절이 흐른다.”

“부풀었던 기대와 여행지의 현실은 다르다. … 여행의 기대와 현장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여행자의 준비 상태다. 준비된 만큼 보고 느낀다. 호기심, 지식, 관점이 갖추어질 때 여행은 여행다워진다. 준비된 여행의 대표적인 예는 독일의 알렉산더 훔볼트다. 남미 여행을 위해 적어도 3년간 철저한 준비를 했다. 자연과학 전반을 공부했고, 화산 공부를 위해 1년 반의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 대학과 천문대를 두루 훑고 당대의 내로라 하는 동물·식물·물리·천문학자들을 찾아 배웠다. 고도계·기압계·수중계·크로노미터 등을 구입하고 측정 기술을 배웠다. 체계적 기록을 위해 그만의 기록법도 만들었다. 이런 준비 끝에 1800년에 여행을 나섰다. 여행은 당시의 가장 빠른 전달 수단인 편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독일의 매체에 중계되었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훔볼트의 남미 여행 기록은 자연지리학이란 새 분야를 태동시켰다. 남미는 그로 인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남아메리카의 발명자’라고 부른다. 훔볼트의 여행은 통상적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국 함정에 납치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열대 우림의 모기와 맹수, 늪과의 사투에 가까운 싸움이었다. 고통스런 여정이었지만 철저히 준비된 그에게는 여행이었다.”

“첫 음악회에서 유일하게 기억에 남은 건 지루함이다. 대학 1학년 때 의욕적으로 사본 철학 서적의 지루함도 잊을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탓이었다. 여행자로 시작했지만 관광객으로 끝났다. … 자신의 알고리즘이 여행하는 공간에 대한 준비와 호기심이 없는 엔지니어는 여행지를 다녀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관광객과 같다. 공개 코드 알고리즘 하나를 구해 덜렁 공간으로 내보내면 알아서 좋은 답을 잘 찾아갈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호기심이 필요하고, 여행 중에 만날 난관을 극복할 탐험의 기술이 필요하다. 여행 준비에는 기초 공부와 시행착오의 축적이 반드시 포함된다. 이런 시간의 무게를 가벼이 생각해서는 제대로 된 여행을 하기 힘들다.”

July 31, 2019: 11:09 pm: bluemosesErudition

이상은, 사랑할거야

“우리 이제는 좋아하게 될 거야 / 지나버린 시간들이 다시 되돌아오면 / 우리 이제는 사랑하게 될 거야 / 달콤했던 추억들이 영원히 아름답도록 / 소중했던 그날들은 지나도 / 아름다운 사랑을 할 거야”

: 10:25 pm: bluemosesErudition

옥스퍼드의 동료들은 루이스가 “세상 명성을 위해, 대중적 팥죽을 위해 학문적 장자권을 팔았다”고 비난했다. 심지어 그는 학술 저서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정교수 심사에 3차례 낙선한다. 또한 그는 현대 문학에 호의적인 소장파 교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문적 성과보다 어린이 소설이나 쓴다고, 많은 사람들의 놀림과 공격의 대상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그는 옥스퍼드에서 ‘영예 없는 예언자’와 같았다.

: 5:57 pm: bluemosesErudition

카너먼은 1934년 3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원래 프랑스 파리에 거주했으나 친척을 만나러 간 이스라엘에서 아들을 낳고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카너먼은 여섯 살 때인 1940년 파리를 점령한 나치 독일군에 쫓겨 숨어 살았다. 유년시절에 겪은 끔찍한 공포는 카너먼에게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일찌감치 버리게 만들었다. 카너먼은 2003년 나치 점령 기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1940년대 초 파리에 살던 유대인은 모두 ‘다윗의 별’ 표시를 해야 했고 저녁 6시 이후에는 집 밖에 나설 수 없었다. 어느 날 친구들이랑 놀다가 6시 통금시간을 어기고 말았다.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데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그때 한 독일 병사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다짜고짜 나를 포옹했다. 내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군인은 지갑을 열어 그의 아들인 듯한 소년의 사진을 보여주고는 돈까지 쥐여줬다. 집에 와서 기묘한 느낌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인간은 언제나 너무나 복잡하고 흥미로운 존재’라고 한 어머니의 말씀이 맞다고 확신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헤브루대학에 진학한 카너먼은 심리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1954년 졸업 후 입대해 장교로 활동하다 1958년 미국 유학을 선택한다. 6년 만인 1964년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지만 미국 대학에서 바로 자리를 잡지는 못한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가 발목을 잡았다. 그는 모교인 헤브루대를 거쳐 1978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로 부임했다. 전망이론의 공저자인 아모스 트버스키 교수 또한 헤브루대 출신인 데다 이스라엘군 복무 경험이 있어 둘은 잘 통했다. 1970년대엔 혁신적이었던, 심리학과 경제학을 접목하려는 시도 또한 궁합이 잘 맞는 학문적 동료를 만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하지만 트버스키 교수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으로 1996년 59세로 사망하는 바람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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