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19, 2019: 11:47 am: bluemosesErudition

“Doctrine divides, Jesus unites” may be a catchy slogan, but it’s actually nonsense.

February 18, 2019: 12:38 am: bluemosesErudition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선교적 교회”

February 17, 2019: 12:33 pm: bluemosesErudition

김찬호는 “유머가 단순히 웃기기 위한 스킬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정한 세계를 공유하는 사람들만이 함께 웃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세계를 공유하지 않은 유머, 상대에 대한 존중 없이 발휘되는 유머는 얼마나 공허한가. 누군가에 대한 비난과 폄하가 웃음을 유발하는 방아쇠 역할을 하면 안 된다.”

“제가 처음 글의 맛을 안 것은 문학을 통해서였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고운기 시인이 친구였어요. 정식 출판은 아니지만, 중학교 때 이미 시집을 냈더라고요. 그걸 읽고 깜짝 놀란 거죠. 그 무렵부터 시를 무척 좋아하게 됐어요. 대학교 들어가서 처음 구입한 책도 김종삼 시집 <북 치는 소년>이었어요. 학생 때 없는 돈을 털어서 시집을 사곤 했지요.”

“고려대 명예교수 김우창 선생님의 책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읽어왔습니다. 1980년대에 사회구조와 체제의 변혁을 둘러싼 담론이 지식사회를 지배할 때, 그분의 글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었지요. 전공으로 삼은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인문학에 발을 들이게 되었지요. 신학에 대한 관심도 컸어요. 다행히 연세대에 신학과가 있어서 학문적으로 많이 깊어질 수 있었지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긴 했는데 지적으로 풀리지 않는 게 너무 많았거든요. 그때 읽은 실존주의 신학자 폴 틸리히(파울 틸리히)의 <흔들리는 터전>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문학과 신학이 저를 지금 여기로 이끌어준 셈이죠.”

‘마음의씨앗’은 파커 팔머가 지난 20년 동안 운영해온 ‘신뢰 서클’ 즉, 교사들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일종의 내면 성찰 프로그램을 국내에 도입한 것이다. “한국에 가져와 10년째 진행하고 있죠. 피정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주로 시를 읽어요. 시를 깊게 읽고 함께 나눈 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지요. 나를 살핀다는 점에서 피정의 성격과 유사하고요. 작년에는 10주년을 기념해서 교사들과 함께 <나는 오늘도 교사이고 싶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어요.”

“살면서 한번도 관심을 기울여본 적 없는 대상과 대화하는 일은 중요하지요. 다른 수업에서는 이런 숙제를 내준 적도 있어요. 평생 절대로 안 만날 것 같은 사람을 찾아가 인터뷰해보라고. 어려운 숙제 맞아요. 우리의 행동반경이 빤하잖아요.(웃음) 인터뷰 대상에 권투선수도 있고 자살 시도를 여러번 한 여성도 있었지요. 숙제를 공유하며 저도 크게 배우고 학생들도 깨달았어요. 사람들의 삶이 저마다 크게 다를 줄 알았는데 멀리서 보면 별로 안 다르다는 점이었어요. 나도 어쩌면 저렇게 될 수 있겠다, 저 사람도 나와 비슷한 궤적으로 여기까지 왔구나, 그런 발견들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 복덕방 아저씨를 인터뷰한 학생도 기억에 남아요. 동네에서 인심이 안 좋기로 소문난 분이었대요. 딱딱하고 자기 고집이 강한, 전형적인 꼰대였던 거죠. 인터뷰를 하고 나니 그때부터 그렇게 자기한테 잘 대해주더래요. 외로운 거죠 다들. 자기 얘기를 들어줬다는 게 너무 고마운 거고. 우리에겐 우리 얘기가 있고 그것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알았지요. 큰 수확이었어요.”

“저는 인간을 역사적 존재라고 생각해요. 역사란 말을 우리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이거든요. 기억을 떠나서는 ‘자기’가 없잖아요. 내 기억을 바꾸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나는 곧 나의 기억이지요. 그 기억이 어떻게 구성돼 있고 편집돼 있는지를 스스로 모른다면 내가 전혀 다른, 엉뚱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거죠. 실제로 나를 구성하고 있는 걸 돌아보는 일이 무척 중요하지요. 평소에 자기가 살아온 이력을 파악하는 것은 현재를 점검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살잖아요.”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자기와의 화해가 제대로 안 되고 있어서 그 분노를 바깥으로 표출하거든요. 공격적으로, 폭력적으로. 혐오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지요. … 관심의 뿌리에는 제 모멸의 역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수치심이 좀 많았어요. 사내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대놓고 놀림을 받았으니까요. 중학교 때 아이들에게 시달리면서 한 2년 동안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 골몰했어요.”

“루미(13세기 페르시아 시인)의 시 ‘여인숙’을 읽으면 여러 가지 감정이 손님으로 찾아온다고 하잖아요. 모멸감이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이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거꾸로 질문을 해보는 자세가 필요해요.”

루미의 시 ‘여인숙’은 이렇게 시작된다. “인간이란 손님이 머무는 집,/ 날마다 손님은 바뀐다네.// 기쁨이 다녀가면 우울과 비참함이,/ 때로는 짧은 깨달음이 찾아온다네.” 어떤 감정은 금세 왔다가 사라진다. 어떤 감정은 찾아온 줄도 몰랐는데 아주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문다. 그 감정으로 인해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또 어떤 감정은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두고두고 기억나는 말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유머처럼.

“어빙 고프먼이라는 사회학자가 그랬어요. ‘모든 건 다 연출이다.’ 연출을 일정한 방식으로밖에 안 하니까 감정이 이상하게 표출되는 거예요. 다양하게 자기를 연출할 수 있어야 해요. 어린아이 같은 자기, 어수룩하고 바보 같은 자기도 섞여 나올 수밖에 없지요. 그걸 받아들이는 데가 많지 않으니, 우리는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계속 애쓰잖아요. 나의 허술함을 감추려고 일부러 더 과시하고 위세를 부리죠.”

“독일의 오페라 감독 아우구스트 에버딩의 말이 생각나네요. ‘유머 감각이 없다는 것은 내 현실과 차이가 나는 다른 현실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음을 뜻한다.’”

February 16, 2019: 8:24 pm: bluemosesErudition

세금 4.4%

: 7:16 pm: bluemosesErudition

“조선일보와 삼성전자가 공동으로 공모한 ‘제2회 삼성 리더스허브 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상금 1억원인 대상은 신인 작가 김재욱(26)씨가 자신의 첫 장편소설 ‘쇠당나귀‘로 수상”했다.

: 6:49 pm: bluemosesErudition

“친구들과 사이가 나쁘거나 협조성이 없는 게 아니라 문득 자연스럽게 혼자가 되는 아이”

: 6:19 pm: bluemosesErudition

5. 한국에서 <타이타닉>이 개봉한 날짜는 1998년 2월 20일이다. 개봉 전부터 반응이 열광적이어서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개봉 열흘 전부터 예매표를 팔았고, 개봉 첫 주말 서울에서만 13만 6천 명의 관객이 몰렸다. 그런데 당시는 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였고, 전 국가 차원에서 금을 모아 외채를 상황하자는 금 모으기 운동이 진행 중이었다.

7~8. IMF의 구제금융은 IMF가 제시하는 대폭적이고 강력한 경제 개혁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 것을 조건으로 했고, 한국의 신자유주의 경제 관료들은 이 ‘곤경’을 80년대부터 추진하려 했던 개혁을 관철하는 계기로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 … 지주형은 IMF 구제금융을 ‘트로이의 목마’에 비유하며 이렇게 쓴다. “‘트로이의 목마’를 만든 건 그리스인들이었지만 성안으로 들여온 것은 사실 트로이인 자신들이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을 IMF 구제금융으로 몰아간 것은 미국인들이었지만 ‘IMF 플러스’ 개혁안을 먼저 제시하고 받아들인 것은 한국인들이었다.” 이는 ‘IMF 구제금융’ ‘IMF 외환위기’ ‘IMF 사태’ 등 이 책을 포함해 널리 통용되는 명명이 경제위기의 원인을 IMF에 돌리고 한국 정부의 역할을 은폐하는 효과를 지닐 수 있으며, 그것이 IMF 대 한국이라는 내셔널리즘적 서사와 결합할 수 있기에 중요한 지적이다.

8~9. 이 환란이 ‘공식적으로’ 끝난 지점은 IMF에 빌린 돈을 갚고 그 관리 체제가 종결된 2001년 8월이다. 정부는 IMF로부터 받은 195억 달러를 모두 상환해 3년 8개월 만에 IMF 관리 체제를 ‘졸업’한다. 외신들은 한국이 위기에서 빨리 벗어낫다며 칭송했다. 개혁을 통해 금융과 기업 부문의 재무건전성과 수익성이 대폭 개선되었고, 1998년 3461억 달러까지 내려갔던 GDP가 2017년 현재 1조 5297억 달러로 네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당시 39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은 이제(2017년 8월 기준) 3848억 달러로 세계 9위 규모다. 어두웠던 과거는 뒤로 밀려났고, 이제 그 시절은 향수 섞인 목소리로 ‘응답하라’로 부르면 그만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IMF 서사를 거부하는 데서 시작한다. IMF 위기를 단순한 외환 부족에서 일어난, 그것을 갚은 뒤에 진화된 단기간의 사건이 아니라, 전 지구적 변동 속에서 그때까지 한국을 이끌어온 권위주의 개발국가 시스템 자체가 문제시된 사태,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야기한 핵심 계기로 파악하고자 한다. IMF의 시간을 ‘그때는 어둡고 어려웠었지’의 시간이 아니라, IMF 위기와 그 해법을 통해 새로운 금융 축적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고 신자유주의가 삶의 영역마저 잠식하게 된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시간으로 바라보려 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당시의 신문지면을 차지했던 수많은 몰락의 드라마는 없고, 이 막연한 ‘구조적 변동’이 한 사람의 라이프코스 속에 남긴 흔적들은 있다. ‘IMF’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으며 회고의 대상이 아니라 거의 무매개적으로 우리와 함께하게 된 시대의 공기다. 이 책 에서의 ‘IMF’란 바로 그런 것을 가리키며, 그 시대의 공기, 너무도 익숙해진 시간을 사고하게 하는 매개의 기능을 한다.

11. 여기서 IMF는 인터뷰이 각자에게 자신이 시간을 보내온 혹은 시간을 보냄으로써 형성되는 ‘사회’라는 것을 떠올리고 자신의 생애를 그것과의 관련 속에서 말하게 만드는 매개장치다.

13~14. 그/그녀가 경험한 일들을 내가 이미 상정해놓은 사회적, 역사적 흐름 속에서 상징적이고 대표성 있는 일화로 끌고나가려는 의지와, 모든 일어난 일의 의미를 결코 그런 식으로는 처리할 수 없다는 주저함 사이의 긴장이 있었다. 말하자면 1, 2, 3, 4라는 개인적 경험과 실패를 ㄱ, ㄴ, ㄷ, ㄹ이라는 어떤 사회적 사건들, 전형, 패턴에 일직선으로 그어 잇는 식으로 보여주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런 선 긋기가 ‘과정’으로서 동반되지 않는다면, 즉 끝까지 밝힐 수 없는 불투명성을 지닌 개인과 사회 속에서만 성립하는 개인 사이의 왕복 운동이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이해될 만한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을 테고, 이 이야기의 사회적인 힘도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언제나 ‘사회화된 존재’와 ‘사회화되지 않은 존재’의 끊임없는 긴장관계 속에 위치하고 영위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해서, 인간은 언제나 사회의 안팎에 동시에 존재한다. ‘사회’를 실재하는 통일체로서가 아니라 개개 인간의 사회적 행위의 특정한 단면을 통해서만 인식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탐구했던 19세기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그의 작업 속에서 “사회적 환경 속에 위치하는 개인”으로서의 ‘양적 개인’과 “사회적으로 조건지어지지 않으면서 내적으로 자족적인 - 또는 외적으로 배타적인 - 개개인”으로서의 ‘질적 개인’을 매우 엄격하게 구분했다. 이 책을 쓰면서 이러한 구분과 그 사이의 운동을 ‘사회 속의 인간’ 그리고 ‘인간의 삶(상호작용)이 영위되는 곳으로서의 사회’를 그릴 수 있게 하는 하나의 개념장치로 염두에 두고자 했다.

15.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이 책의 인터뷰이들을 알게 되고 섭외해 책으로 내기까지의 ‘과정’이 책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책에 관한 하나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한계’라는 단어로 바꿔도 좋다.

17~18. 결국 내가 찾을 수 있었던 건 친구든, 트위터 지인이든, 소개 받은 이들이든,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분명 모든 인터뷰이의 삶은 그들 각자의 피곤과 근심과 불안에 젖어 있었지만 그래도 자기의 살아온 시간을 이 정도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신이 위치한 좌표를 이해하고 그 뒤를 돌아보거나 앞을 내다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내가 보낸 이 사회의 30년을, 1997년 이후의 세계의 ‘진실’을 가장 분명하게 비춰줄 사람들은 이미 가시권 바깥으로 사라져버린 게 아닐까? 찾아낸다 하더라도 그들은 나를 사로잡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살아온 것과 살아온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자신만의 삶의 전기를 써내려갈 자원”은 곧 “자율적 선택의 폭”이며, 이 선택의 폭이 적은 이들이야말로 ‘IMF 이후’라는 구조의 영향을 뚜렷하게 몸에 새긴 사람들일 것이다.

76. 흔히 ‘IMF’라 불리는 그 사건은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그들의 해법을 받아들인 일뿐만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 경제가 안정을 되찾는 과정에서 특정한 계층에 대한 선택과 배제가 이루어진 일, 이에 따라 사회의 어떤 집단들을 특권적으로 만든 동시에 어떤 집단들은 반대로 더 가장자리로 밀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기를 온 국민이 “하나되어” 극복한 것으로 기만한 채 생존 경쟁만을 내면화해온 시간을 모두 의미한다. 소설 <1997 방사능 치킨 극장>은 이 과정 내내 계속 바깥으로 밀려난 한 가족을 통해 우리 시대에 IMF가 무엇이었는지를 정면으로 묻는다.

80~81. 성남시 분당구가 수도권 1기 신도시 다섯 곳 중 하나, 계획인구 40만 명(10만 5천 가구)이라는 다섯 곳 가운데 최대 규모의 ‘분당’이란 고유명사로 거듭나는 사업이 시작된 것은 서울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 최초 입주가 시작된 것은 1991년 9월의 일이다. 서울 강남 지역의 전체 아파트가 23만 가구에 불과하던 시절, 이제 막 입주가 시작된 신도시에는 상업 시설 부족을 포함해, 자족 기능이 미비했던 시절이다. 김재욱이 기억하는 그때 살던 32평형 아파트의 매매가는 3000만 원, 전세가는 1500만 원이었다. (중략) 1기 신도시의 공사가 완료된 1995-96년까지만 해도 이 사업은 실패에 가깝게 묘사되었다. 도시의 자족 기능 미비로 사람들은 여전히 서울로 출근했으며 서울로 놀러 소비하러 다녔다. 출퇴근 시간엔 인근 도로가 꽉 막히고 낮엔 텅 비는 베드타운이라 놀림받았다. … 하지만 1기 신도시 착공이 10년 된 시점인 1999년부터는, 특히 분당과 일산이 최신 유통업체가 일순위로 진출하는 유통 천국이자 부동산 경기를 주도하는 곳으로서 수도권 내 가장 경쟁력 있는 주거 지역이 됐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매매, 전세, 분양권 가격은 크게 올랐고 이와 동시에 어떤 이들은 바깥으로 밀려났다.

83. 1995년 주유소 간 거리 제한이 완전 폐지되면서 정유사들은 자사의 주유소를 세우기 위해 개인사업자들에게 대규모 자본을 투입했다. 좋은 시절이었다.

101. 무엇을 한들 ‘차곡차곡 쌓아서 뭔가를 이루기’보다 단속적으로 시달리고 소모될 가능성이 높은 시대, ‘확실히 아닌 것’부터 정하고 그걸 피하는 데 전력을 쏟는 그의 행동은 차라리 합리적으로 보인다. … 소설 쓰기는 여기서 또 한 번 ‘다른 건 하기 싫다’라는 네거티브한 동기를 밀어붙인 결과였다.

102. <쇠당나귀> 구상은 군대에 있을 때부터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걸 써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배경지식은 아무것도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파기 시작했죠. 나중에는, 도서관 조선 후기 역사 분야 있잖아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읽었어요. 논문 저자한테 메일 보내서 묻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쓰고 해서, 다 합치면 6개월 정도 걸렸을 거예요. 근데 절박한 게 있으니까. 내가 여기서 이걸 못 하면 취직해야 되니까. 너무 싫었죠. 저는 모든 동기가 네거티브한 거 같아요. 하기 싫으니까, 그걸 안 하기 위해 다른 걸 열심히 하는 거예요.

110~111. “위기의 해법은 사물들이 움직이는 방식을 오랫동안 규정한다”고 프랑스의 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말했다. 이는 <1997 방사능 치킨 극장>에도, 김재욱이 이 소설을 쓰면서 IMF 외환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참고했다는 지주형의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에도 인용되는 말이다. 오래전에 쓰인 이 문장은 ‘한국전쟁’ 같은 물리적 파괴가 아니었음에도 IMF 위기가, 그 해법이 왜 우리 삶에 그렇게 큰 사건이었는지를 함축해 보인다. 지주형은 현실의 위기 해석과 그 관리를 결정하는 것은 그 위기의 객관적 구조에 의해서가 아니라 “위기관리에 따라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볼 수 있는 사회세력들 사이의 직간접적인 사회적ㆍ정치적 투쟁”에 의해서임을 역설한다. 단순한 외환위기가 아니라 금융, 산업, 발전 모델, 정치까지 아우르는 넓은 분야에서, 그 시점 한국이 내외적으로 경험해온 역사 속에서 형성된 매우 복잡하고 특수한 현실의 위기였던 IMF 위기 역시 그야말로 이런 정치적이며 구체적인 투쟁 과정을 통해 ‘해결’되고 그다음 단계로 진입했다. 그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미 재무부와 월스트리트, 그리고 그동안 여러 차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시도해왔던 한국의 경제관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지배적인 위기관리의 방식이 결정되자 승리한 집단에겐 전리품이, 패배한 집단엔 고통이 배분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승패의 여파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기로 증폭된 불확실성 덕택에 열렸던 여러 대안적인 미래의 가능성들이 위기 효과와 위기관리 비용이 불균등하게 배분되면서 하나둘씩 제거된다는 점이다. 지배적인 위기관리 방식에 순응하면 생존하거나 보상을 받고, 저항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면 처벌을 받거나 도태된다. (…) 특정한 수준의 위기에 초점을 맞춘 위기관리를 통해 다른 종류의 경험이 배제되고 특정한 종류의 경험이 반복됨으로써 행위자들은 특정한 교훈과 형태를 내재화한다. 보상을 받고 선택되는 행태는 강화되고 처벌을 받거나 도태를 가져온 행태는 약화된다. 그 결과 초기의 차별적이고 불균등한 사회적 배분이 구조화되면서 새로운 사회 구조로 나아가는 장기적 발전 경로가 형성된다.” “1997년의 해법은 여전히 우리가 움직이는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고 재욱 씨는 소설에 썼다. 인용한 지주형의 통찰을 빌리자면 이 해법은 우리가 움직이는 방식뿐 아니라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마저, 가능성을 셈하는 시야마저 규정하고 내면화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눈에 띄는 상처 없이 살아남았다 해도 이 사회에 사는 이상 우리의 선택들이 이 특정한 발전 경로의 작용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긴 어렵다. 김재욱은 소설에서 그 점을 말하려 했고,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27. (학원에서 배운 건)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했어요. 내가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을 갖기도 전에 나의 확고한 생각과 취향이 정해졌으니까요.

_ 안은별, , 코난북스, 2017.

February 15, 2019: 10:29 am: bluemosesErudition

“Though the fig tree should not blossom, nor fruit be on the vines, the produce of the olive fail and the fields yield no food, the flock be cut off from the fold and there be no herd in the stalls,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take joy in the God of my salvation.”

February 14, 2019: 9:37 pm: bluemosesErudition

오즈 야스지로,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이마무라 쇼헤이, <우나기 선생>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9:34 pm: bluemosesErudition

“2006년 칸영화제에서 <괴물>이 최초로 공개되었을 때 수많은 반응이 쏟아져 나왔지만 많고 많은 평론가와 기자 들의 그 어떤 코멘트보다 내 가슴에 강렬하게 새겨진 건 일본의 어느 나이 든 영화제작자의 코멘트였다. “이것은 마치 이마무라 쇼헤이가 만든 괴수 영화 같다.” 매우 가슴 설레고 영광스러운 코멘트였다. 이마무라 쇼헤이라는 거장의 이름은 내게 매우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을 준비할 때도 그의 역작 중 하나인 <복수는 나의 것>, 실제 일본 연쇄살인마의 흔적을 그린 이 괴력의 작품에서 큰 영감과 자극을 받았고, <돼지와 군함>이라든가 <붉은 살의> 등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영화들을 오랫동안 존경해왔다.”(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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