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9, 2019: 8:25 pm: bluemosesErudition

91. ‘97년 체제’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신자유주의적 제도의 일반화’라기 보다는 ‘네트워크 위계의 완성’이 그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본다. 자유주의적 제도가 깔린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경쟁에 맞서기 위해 더 강고한 위계 구조를 구축한 것이 97년 체제의 특징인 것이다.

92. 1997~1998년 금융 위기는 기업 내에서 이들의 권력을 극적으로 강화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386세대가 유교적 관료제와 결합한 권위주의에 ‘반체제 운동’으로 저항하며 ‘재야’에서부터 대항권력을 구축한 반면, 기업의 386세대는 1997년 금융 위기로 인해 ‘저절로’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먼저, 1997년 금융 위기의 폭탄은 산업화 세대의 머리 위에서 폭발했다. 당시 이들(1930년대 후반 ~ 1940년대 후반 출생 세대)은 추풍낙엽처럼 노동시장에서 퇴출했다. 대기업들은 금융 위기를 적체된 인력을 구조 조정하는 기회로 삼았고, 이 세대는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 없이 ‘구조 조정’의 칼날에 몸을 맡겨야 했다. 반면, 30대로 기업 조직의 밑바닥부터 중간 허리를 구성하고 있던 386세대는 이 칼날을 무시 비켜나며 대부분 생존했다. 그런데 이들이 의도하지 않은,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그다음 세대의 ‘전멸’로부터 비롯됐다. 1997년 금융 위기에 닥쳐 기업들은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정규직’ 사원을 채용하지 않는다. 채용하더라도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장기 호황에 입사한 386세대에 비해 훨씬 작은 규모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차별화된 채 입사한다. 386세대는 졸지에 아래위가 모두 잘려나가면서 기업 조직에 사실상 홀로 남겨진 ‘거대한 세대의 네트워크 블록’이 되어버린 것이다.

107~108. 한 세대가 권력을 독점하면, 그만큼 밀려난 세대가 있기 마련이다.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희생된 세대는 바로 아랫세대인 40대다. 1960~1964년 출생 세대가 30대 중ㆍ후반(1990년대 후반)에 최초로 임원에 진입(2퍼센트)해 40대 중ㆍ후반(2000년대 후반)에 25퍼센트에 이르며 확실한 주류로 자리매김했고, 1965~1969년 출생 세대가 1퍼센트(2000년대 초반)에서 20퍼센트(2010년대 초반)로 그 뒤를 따랐다. 반면 1970~1974년 출생 세대는 2000년대 후반 0.3퍼센트로 진입해, 10년 후 오늘날 386세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9.4퍼센트를 기록 중이다(성장의 기울기를 비교해보라). 50대가 임원직을 틀어쥐고 놓지 않으니, 40대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적체되어 있는 것이다. 이 데이터의 결과와 1장의 정치권 데이터를 합산하면, 386세대는 근 20년에 걸쳐 한국의 국가와 시장의 수뇌부를 완벽하게 장악했고, 아랫세대의 성장을 억압하며 정치권과 노동시장에서 최고위직을 장기 독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_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문학과지성사, 2019.

: 6:41 pm: bluemosesErudition

1. 이 논문은 선거민주주의의 형식이 유지되고 있으되 선거가 실제로 민주적 대표와 경쟁의 제도로 기능할 수 있게끔 하는 제반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혼합 정치체제의 문제틀에 기초하여, 멀리는 1987년 민주화 개시 이후 한국 정치의 한계, 가까이는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9년 동안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분석한다. 특히 선거체제가 임헌ㆍ법치주의에 얼마나 착근되었는지를 주목하는 ‘착근된 민주주의’(embedded democracy)와 ‘결손 민주주의’(defective democracy)의 이론에 의거하여, 한국 민주주의가 87년 이후 전토적인 위임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가운데 점차 비자유 민주주의, 배제적 민주주의, 나아가 후원 민주주의의 문제까지 포함하는 총체적 결손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5. 문제는 선거가 현대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필수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 자체를 부정하거나 명백히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오용하거나 여론을 조작할 수 있으며, 또는 선거를 통해 획득한 권력으로 시민들의 기본권과 법치질서, 민주주의 제도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명백한 독재가 감소해온 바로 그 역사적 과정에서 여러 유보조건이 붙는 “형용사가 붙은 민주주의(democracy with adjectives)”가 증가해왔다(Collier & Levitsky, 1997).

8~9. 1990년대 이후 국내적 상황이나 국제적 환경에 의해 명백한 독재로의 회귀가 어려워진 조건 하에서 선거경쟁이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기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결손 또는 부재를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기제로 기능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9. 말하자면 ‘민주주의에 대한 입헌주의적 견제’, 즉 민주주의가 선거 승리에 의해 정당화된 권력 남용으로, 혹은 다수자의 지지나 묵인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파괴로 이르게 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이론과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체계적으로 반영한 것이 ‘착근된 민주주의(embedded democracy)’의 이론이다. 독일의 정치학자인 메르켈(Wolfgang Merkel)과 그의 동료들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제도적 부분 체제를 구분한다. ①선거체제, ②정치적 기본권, ③시민적 자유(국가권력 남용 방지), ④수평적 책임성(권력분립), ⑤선출된 대표자의 실질적 권력이 그것이다. 이 5각형의 개념체계는 사실상은 1+4의 형태다. 그 중심에 선거 체제가 있다. 선거 체제는 민주주의 나머지 네 가지 하위 체제에 착근될 때에 비로소 민주적 기능을 할 수 있다.

9~10. 입헌주의 없는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해 선출된 권력의 무제한적 권력을 허용하며(민주적 전제주의), 반대로 민주주의 없는 입헌주의는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한 헌법 체계의 과대 권력을 허용한다(권위주의적 법치주의). 착근된 민주주의는 전자의 위험에 초점을 두고 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바이마르 민주주의의 붕괴와 나치 체제의 등장을 경험한 독일 현대사로부터 얻은 교훈을 반영하고 있다.

11~12. 선거 체제에 상당한 결손이 있다면 권위주의 체제에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 체제에 명백한 훼손이 없다 할지라도 다른 네 가지 하위 체제의 결손은 선거가 민주적 기능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착근된 민주주의 이론은 이 같은 현상을 ‘결손 민주주의(defective democracy)’로 개념화하고, 민주주의의 각 하위 체제에 상응하여 결손의 네 가지 유형을 체계화했다. ①정치적 기본권이 심각하게 제한될 경우는 ‘배제적 민주주의(exclusive democracy)’, ②시민적 자유가 국가권력 남용에 의해 빈번히 침해될 경우에는 ‘비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③권력분리의 결여, 즉 행정부 권력을 의회와 사법부가 견제하지 못할 경우에는 ‘위임 민주주의(delgegative democracy)’, 끝으로 ④선출된 대표자가 실질적인 권력을 갖지 못하고 군부, 군벌, 경제권력, 기타 배후세력이 실권을 갖고 있는 경우는 ‘후견 민주주의(tutelary democracy)’로 개념화된다.

_ 신진욱, “한국에서 결손 민주주의의 심화와 촛불의 시민정치”, 시민과세계, 29호(2016. 12.)

September 18, 2019: 10:19 pm: bluemosesErudition

설득할 때 정말 거꾸로 많이 해요. 예를 들어 제가 저희 대학 총장님한테 어떤 프로젝트를 해야 된다고 설득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좋은 지 열심히 설명을 하게 되죠. 그런데 제가 방을 나가고 난 다음에 총장님은 이렇게 말하죠. “김교수는 아직도 철이 없어.” 그 소리를 듣고 제가 화가 나서 후배 교수들을 모아 놓고 또 설득을 합니다. 그런데 이 때는 이 프로젝트를 안 하면 대학이 망할 것이라고 열심히 얘기를 하죠. 그러면 제가 집에 가고 난 다음에 후배 교수들끼리 이렇게 얘기할 겁니다. “김 선배가 점점 ‘꼰대’가 돼 가고 있어.” 여기서 저는 나이의 변수를 놓친 겁니다. 나이가 나보다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걱정이 많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그걸 함으로 인해서 어떤 문제를 막아낼 수 있는가, 어떤 걱정을 덜어 낼 수가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보다 위인 총장님한테 이 프로젝트를 하면 무엇이 좋은가만 열심히 얘기한 것이죠. 반대로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은 ‘그걸 하면 무엇이 좋은가’가 궁금합니다. 그런데 저는 후배들에게 그거 안 하면 망한다는 얘기만 열심히 했죠. 그래서 결국 나이 많은 분에게는 철없다는 소리를 듣고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는 ‘꼰대’란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양쪽 모두에게 진심으로 노력했지만 양쪽 다 설득하기에는 실패한 겁니다.

: 5:07 pm: bluemosesErudition

“구성역 일대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는 GTX–A 노선 사업은 계획상으로 올 연말 착공한다. 용인 기흥구는 서울 강남이 가깝고, 분당선(2011년 개통)도 이미 운행 중이지만 신분당선이 닿는 지역에 비해 서울 접근성은 크게 떨어진다. 노선 자체가 구불구불한 탓이다. 분당선은 구성역에서 선릉역까지 정거장이 20개나 되고 45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GTX A노선이 개통하면 구성역에서 삼성역까지 2정거장이면 닿을 수 있고, 시간도 강남권은 10분 대, 강북권도 20분이면 닿을 수 있다.”

: 12:03 pm: bluemosesErudition

“불란서의 보들레르는 지금부터 백 년 전인 1850년에 ‘악의 꽃’을 발표해서 그 유명한 악마파 선언을 하지 않았소?… 이번에 내 ‘오감도’는 ‘악의 꽃’에 필적할 세기적인 작품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해요.”

September 16, 2019: 8:43 pm: bluemosesErudition

제1 공식. 성과 + 연결망 = 개인의 성공. 성과는 성공의 원동력이지만, 성과를 측정할 수 없을 때는 연결망이 성공의 원동력이다.

46~47. 비슷한 성과를 올렸지만 명성은 하늘과 땅 차이인 레드 배런과 르네 퐁크의 사례는 성공의 과학을 관장하는 가장 원칙적인 공식과 앞으로 우리가 ‘성공’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규정할지를 잘 보여준다. 간단히 말하면 당신의 성공은 당신 혼자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이룬 성공이라는 뜻이다. 성공에 대한 이런 정의는 이 책에서 설명하는 성공 연구의 바탕이 되는 전제조건이자 출발점, 또는 원칙이다. 일의 성과는(자전거 경주 기록이든, 판매한 자동차 대수든, 사지선다 시험에서 얻은 점수든) 당신이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한 변인임에 틀림없다. 기술을 연마하고, 연습하고, 준비하고, 전략을 짜면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 당신의 성과를 남들과 비교해 자신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가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은 전혀 다른 문제다. 성공은 사람들이 당신의 성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측정하는 진단적인 척도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성공을 측정하거나 나중에 어떤 보상을 받을지 파악하려면, 성과나 업적만 따로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당신이 속한 공동체와 당신이 기여한 바에 대해 그 공동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48. 성공은 개인적인 현상이라기보다 집단적인 현상이다. 개인이 속한 공동체가 그 개인의 성공을 좌우한다면 개인의 성과에 집단적으로 반응하는 사회적, 전문적 연결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처음 무대에 올라 수천 명의 갈채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처음에는 미치는 효과가 국지적일 수밖에 없다. 가족, 동료, 친구, 이웃, 협력한 사람들이나 고객들만이 당신의 성과를 목격한다. 그러나 이따금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사람들의 테두리를 넘어 파장을 일으키면서 보다 폭넓은 공동체로부터 반응을 얻을 때가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이런 연결망을 터득하고 이를 이용해 집단의식 속에 자리 잡아 뜻밖의 사람들이 두고두고 기억하게 만든다.

66. 대학 합격 심사라는 중요한 절차가 왜 그리도 애매모호하고 주관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것일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이 의문에 마주했다. 성과를 측정하는 분명한 척도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85~86. 디아즈와 바스키아가 전혀 다른 경로를 걷게 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두 사람은 한 가지 본질적으로 다른 면이 있었다. 디아즈는 외톨이였던 반면, 바스키아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인맥을 쌓았다. 두 사람이 아주 어렸던 세이모 시대에조차 그런 차이는 분명했다. 디아즈는 두 사람이 공유한 정체를 숨기자고 주장했지만, 바스키아는 100달러를 받고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에 둘의 협력 관계를 발설했다. 이런 차이는 계속해서 나타난다. 실제로 바스키아는 주도면밀하게 화랑 전시회를 준비하듯이 예술계에서 인맥을 쌓았다. 무모하고 건방진 10대였던 그는 당시 뉴욕 미술계의 제왕이었던 앤디 워홀에게 접근했고, 감언이설로 꼬드겨 자신이 직접 그려 길거리에서 팔던 엽서 한 장을 그에게 팔았다. 그리고 이 거래를 십분 활용해 워홀과 평생 교분을 맺었다. 또한 바스키아는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근처에도 얼쩡거렸다. 그 학교에 다니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결국 키스 해링을 만나고 사귀기까지 했는데, 그는 당시에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로 손꼽혔다. 바스키아는 유선방송 프로그램 프로듀서와도 친분을 맺어 그 쇼에 출연했고, 거기서 맡은 역할 덕분에 그 지역에서 꽤 잘 알려지게 되었다. 어쩌면 바스키아가 쌓은 인맥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이스트 빌리지의 예술가이자 마당발인 디에고 코테즈일지도 모른다. 그룹 전시회를 열면서 바스키아의 작품을 자그마치 20여 점이나 포함시킨 주인공이 바로 코테즈다. (중략) 적극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맥을 쌓음으로써 바스키아는 2년 만에 집도 절도 없는 10대에서 A급 예술가로 변신했다. 한편 디아즈는 여전히 언더그라운드 거리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92, 예술에 내재된 가치가 없다면 15억 달러라는 가격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바로 연결망이다. 예술 세계는 ‘선공의 제1 공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성과는 성공의 원동력이지만, 성과를 측정할 수 없을 때는 연결망이 성공의 원동력이다.

99. 한때 세계에서 가장 수익이 높은 미술가였던 앤디 워홀은 이런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았다. “미술라고 성공하려면 권위 있는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어야 한다.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손수 만든 명품을 대형 마트인 울워스 판매대에서 전대로 팔지 않은 것과 똑같은 이치다.”

제2 공식. 성공 + α = ∞. 성과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성공은 무한하다.

112~113. 도대체 감정사들이 얼마나 정확하고 일관성 있게 탁월한 와인을 식별해낼까? … 한 감정사는 첫 시음에서 최저 등급인 80점을 주었는데, 잠시 후 그 와인을 다시 시음했을 때는 90점이라는 우수한 점수를 주었다. 똑같은 와인을 세 번째로 제공받았을 때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금상을 수상할 만한 점수인 96점을 주었다. “감정사들은 똑같은 와인에 전혀 다른 점수를 매겼다”라고 호슨은 회상했다. 그는 와인 경진대회에서의 수상 여부는 거의 운에 달렸다는 결론을 내렸다.

118~119. 대부분의 분야에서 인간의 성과를 측정하는 적절한 도구는 없다. 바이올린 경연대회, 대중음악 경연대회, 문학상의 수상자나 올해의 의사를 선정할 때, 화랑에 걸린 어떤 그림이 최고인지 판단할 때 사용할 만한 도구는 사실상 없다. … 호슨의 데이터를 보면 확실히 그렇다. 4년 연속 실험을 반복하고 나서 그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다. 감정사가 똑같은 와인에 일관성 있는 점수를 매긴 비율은 겨우 18퍼센트에 불과했다. 특정한 와인의 점수에서 일관성이 나타난 아주 드문 사례가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낮은 점수일 때였다. 즉 감정사가 애초에 특정한 샤르도네가 맘에 들지 않았을 경우, 두 번째나 세 번째 시음에서도 낮은 점수를 주었다는 뜻이다. 품질이 엉망인 것은 쉽게 식별한다. 그러나 훌륭한 와인의 경우 감정사들의 판단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경우는 무려 82퍼센트에 이르렀다. 동일한 와인에 대한 동일한 감정사의 판단은 금메달 수상급에서부터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경우까지 오르락내리락했다.

120. 이 감정사들이 과거에 보여준 성과와 현재의 신뢰도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다. 한 해 동안에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 있는 판단을 했던 감정사가 다른 해에는 전혀 신뢰할 수 없는 판단을 했다. 훌륭한 감정사가 되기 위해 배우거나 갈고닦아야 할 특별한 기술 같은 것은 없어 보였다.

121~122. 유니버시티 칼리지 챠쥥차이가 프로 음악가와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클래식 경연대회에서 결선에 오른 세 명 중 누가 이길지 예측하는 실험을 했다. 한 집단에게는 연주 소리만 들려주었고, 다른 집단에게는 연주 오디오와 비디오를 함께 보여주었다. 소리 없이 비디오만 보여준 집단도 있었다. 최고의 음악가를 선정하는 데 말도 안 되는 주문이었다. 차이는 이 실험에 앞서 전문가와 초보자 모두 오디오만으로 승자를 예측할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했다. 음악 경연대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리만 듣고 판단한 집단이 승자를 맞힐 확률은 25퍼센트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셋 중 하나를 고르는 일임을 감안하면 사지선다 시험에서 무작위로 찍어 답을 맞힐 확률보다도 낮았다. … 놀랍게도 승자를 맞히는 데 가장 우수한 실력을 보인 집단은 소리를 끄고 비디오만 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화려한 몸짓을 구사하며 연주하는 연주자를 선정했다. 이 집단에 속한 초보자와 전문가 모두 승자를 맞힐 확률이 50퍼센트였다. 다시 말해 연주 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들이 들은 사람들보다 승자를 맞힐 확률이 두 배 높았다는 뜻이다. 전문가라고 해도 가장 우수한 연주자를 골라내는 데는 초보자보다 나을 게 없었다. 심지어 초보자보다 못한 경우도 있었다.

124~125. 퀸엘리자베스 국제음악 경연대회를 예로 들어보자. … 이 경연대회는 심사위원의 편견이 개입하지 않도록 많은 규칙을 만들어놓고 이를 준수하지 않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공정하다는 평판을 누려왔다.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85명의 연주자들이 초청 받아 기량을 겨루는데, 브뤼셀에서 열리는 예선에서 12명의 결선 참가자가 압축되고, 결선에 진출한 연주자들은 이 경연대회를 위해 특별히 작곡된 똑같은 협주곡을 연주한다. 새로 작곡된 똑같은 곡을 연주하기 때문에 직접 선정한 곡을 연습해서 연주하는 이점을 누리지 못한다. 게다가 연주 순서를 무작위로 정하고 날짜 배정도 임의로 하기 때문에 마지막 연주를 하시 전에 연습할 시간은 딱 일주일뿐이다. … 그런데 이 절차는 사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피아노 경연 대회를 보자. 1952~1991년 동안 똑같은 규정 아래서 11차례 경연이 열렸다. 연주 순서는 무작위로 배정하므로 가장 재능이 뛰어난 연주자가 몇 번째로 연주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약 40년의 기록을 살펴본 결과 아주 독특한 점들이 발견되었다. 일단 우승자 가운데 첫날 연주한 사람은 없었다. 또한 둘째 날에 연주하고 우승한 사람은 겨우 두 명이었고, 마지막 날 연주하고 우승한 사람은 한 명이었다. 나머지 여덟 명의 우승자 중 절반은 닷새째 되는 날 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하지 않은가?

127. 악보만 보고도 연주를 제대로 심사할 수 있는 심사위원은 극히 드물다. 작품의 미묘한 부분들은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고 나서야 비로소 파악된다. 심사위원들은 결선에 첫 번째로 연주하는 연주자를 통해 그 곡을 처음 듣게 되고, 따라서 매우 생소하게 들린다. 그러나 결선이 무르익을수록 곡이 귀에 익숙해진다. 결선 첫날 음악의 생소함에 짓눌린 심사위원들은 연주자가 어떻게 곡을 해석하고 미묘한 접근 방식을 취하는지, 어떤 독특한 색깔이나 톤으로 연주하는지 제대로 파악할 확률이 낮다. … 심사위원들은 한 번 내린 평가를 수정하지 못한다. 당신이 심사위원인데 첫 연주자의 연주에 깜짝 놀랐다고 하자. 그 연주자에게 최고 점수를 주는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그랬다가 나중에 더 훌륭한 연주자가 등장하면 궁지에 몰릴지 모른다. 대회가 진행되다 보면 심사위원들의 귀가 트일 뿐만 아니라 평가하는 역량도 개선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수도 점점 후해진다.

128~129. 또 다른 예로 피겨스케이팅이 있다. … 매우 투명하고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선수의 출전 순서가 뒤로 갈수록 점수도 일관성 있게 상승한다. 나중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기적적으로, 일관성 있게) 훨씬 좋은 성적을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운명은 출전 순서가 결정한다.

134~135.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하려면 당신의 경쟁자들은 당신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준비를 철저히 했고, 성취도도 높고, 맡은 일을 해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말이다. … 면접에서 ‘어떤 질문’이 나오고 ‘누가’ 면접장에 들어서는지 보다는 면접을 보는 ‘시기’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중략) 채용 절차의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면접을 보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더 똘똘해진다. 마지막으로 면접을 보는 후보가 그보다 앞선 후보보다 대답을 더 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면접관들은 앞의 후보들을 면접한 뒤라 훨씬 정제된 질문을 던지게 되고, 심사위원들은 앞서 연주한 참가자들의 연주를 반복해서 들은 후라 훨씬 곡에 익숙해진 귀로 심사를 하게 된다.

136. 어떤 선정 과정에든 무작위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성공은 숫자놀이일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납득하게 된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여러 대회에 참가해야 한다. 일자리를 얻고 싶으면 여러 곳에 이력서를 보내라. 주역을 맡고 싶다면 쉬지 않고 끊임없이 오디션을 보라. 무대 위에 첫 순서로 오를지, 마지막 순서로 오를지는 결정할 수 없다. 하지만 복권에 당첨될 확률을 높이려면 복권을 여러 장 사야 하듯이, 여러 번 도전하면 원하는 순서에 무대에 오를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어느 구름에 비가 내릴지 모르므로 여러 군데 찔러보는 게 상책이다. 희소식도 있다. 한 번 우승하면 그 후로는 계속 우승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데이터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보상은 은밀히, 무분별하게 전이되는 법이다. 성공은 성공을 낳고 시도한 횟수에 비례해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 번 이기면 다시 이기게 된다. 그것도 반복해서.

142. 성과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성공은 무한하다. 성과가 지닌 제한이라는 특징을 정규분포곡선을 통해 이해할 수 있듯이, 성공이 지닌 무제한이라는 특징은 멱 법칙(冪法則, power law)이라는 또 다른 수학적 관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제3 공식. 과거의 성공 × 적합성 = 미래의 성공

211~212. 1997년 구글이 등장했을 당시 대다수는 알타비스타와 야후의 잉크토미 같은 검색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3년 만에 구글은 이들을 제쳤다. 짧은 기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덕에 브랜드 이름인 구글이 검색한다는 의미의 동사로 쓰일 정도가 되었다. … 우선적 애착으로 막강해진 선발 주자를 어떻게 따돌렸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들이 성공한 까닭은 독특하면서도 고품질의 제품으로 무명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중략) 후발 주자들이 어떻게 오늘날 중심축이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각 노드에 그 노드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내재적인 특성을 지정해주어야 했다. 우리는 이 특성을 ‘적합성’이라고 명명했다. 진화론에서 차용한 용어다. 적절한 용어 선택이었다. 적합성은 품질에 의존하기는 하지만 딱히 품질과 동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적합성은 가치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똑같은 구매자, 청중, 매니아들을 놓고 경쟁하는 다른 상품들을 능가하는, 특정 상품이 지닌 내재적인 능력을 말한다.

제4 공식. 다양성 + 균형 + 리더십 = 팀 성공. 팀이 성공하려면 다양성과 균형이 필요하지만, 팀이 성과를 올리면 오직 한 사람만이 공을 독차지 한다.

274. 나는 내 학생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과 공동 작업을 하는 게 과학계에서 평판을 구축하는 최산의 방법이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독자적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

280. 데이터를 보면 단독 연구만 하는 여성 경제학자가 종신직을 받을 가능성은 남성과 동등하다. 성별에 관계없이 경제학자가 독자적으로 논문을 쓸 때마다 종신직을 받을 가능성은 8~9퍼센트 증가한다. 그러나 여성이 일단 공동 저자로 논문을 쓰면 갑자기 격차가 나기 시작하고,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마다 그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공동 저자로 논문을 쓸 때마다 종신직을 받을 확률이 증가하기는커녕 낮아진다. 이 효과는 매우 크기 때문에 오직 공동 연구만 하는 여성 학자들이 종신직을 받을 확률은 남성에 비해 점점 낮아진다. 연구 결과를 보면 여성이 공동 저자일 때 저자로서 받는 공은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 여성이 남성과만 공동 연구를 하면 거의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한다. 다시 말해 여성 경제학자는 공동 연구를 하면 엄청난 불이익을 받는다.

284. 여럿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면 누가 무엇을 했는지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한 명 또는 몇몇 팀원들에게 공을 돌린다. 특히 가장 일관성 있게 성과를 낸 사람이나 인지도가 놓은 사람에게 돌린다. 이는 응당 공로를 인정받아야 할 사람에게 보상을 주는 공정한 방법이 될 때도 있지만, 이따금 프래셔의 사례처럼 명명백백하게 부당한 결과를 낳을 때도 있다.

제5 공식. Q-요인 × 끈기 × 노력 = 장기적 성공. 부단히 노력하면 성공은 언제든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299. 우리가 측정한 자료를 보면 연구논문도 과학자의 생애에서 복권과 같다. 각 논문은 파격적인 논문으로 평가받을 확률이 똑같다. 따라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논문을 계속 발표하는 기간에(거의 속사포처럼 연달아 논문을 발표하면) 최고의 성공을 맛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폭발적으로 논문을 양산하는 기간 동안 훨씬 창의력이 높아서가 아니다. 더 자주 시도하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303. 당신이 성공할 확률은 나이와 아무 상관없다. 개가를 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는 의지가 성공을 낳는다.

_ 알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성공의 공식 포뮬러>, 한국경제신문, 2019.

: 3:07 pm: bluemosesErudition

“현실을 훌륭하게 재구성한 작품은 많지만, 겨우겨우 실존 감각을 확보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노력의 목소리인 경우가 많았다.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메시지는 담지 못한 작품이 많았다.”(김수이)

: 11:53 am: bluemosesErudition

“더 많은 사람을 만나라. 많은 사람을 만나다보면 귀인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더 많은 시도를 하라. 운은 곧 확률이다. 시도 횟수를 늘리면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비전형적인 시도를 더 많이 하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면 똑같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부탁해라. 부탁하지 않으면 누구도 당신을 도울 수 없다.”

: 3:05 am: bluemosesErudition

6. “이 책은 마가복음 1장 15절을 청년 청중과 독자의 가슴에 와 닿는 언어로 풀어쓴 강해 설교서다.”(김회권)

15~16. 예수님을 가장 잘 기록한 문서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고동락한 제자들이 남긴 네 권의 복음서가 그것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고급 정보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것인 마가복음입니다. 마태와 누가 두 사람은 이미 기록된 마가복음을 읽고 마가복음에 있는 많은 자료를 그대로 가져와 약간씩 고쳐서 자신의 복음서에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마태와 누가가 서로의 복음서를 읽은 흔적은 없습니다. 요한은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이 다 기록되고 한참 뒤에, 가장 늦게 복음서를 썼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이 두드러지지요. 요한도 마가복음을 읽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이렇게 보면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지상에 사셨던 때에서 가장 가까운 시기에 쓰인 굉장히 중요한 문서입니다. 이 마가복음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절이 바로 우리가 읽으려고 하는 1장 15절(새번역)입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34~36. 주전 150년경, 마카비우스 형제가 시리아의 지배에 대항하여 일어났습니다. 마카비우스 형제의 게릴라전으로 시리아의 용맹한 장군들이 있는 대군을 물리쳤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들을 민족의 영웅으로 여깁니다. 이 때 예루살렘 성을 탈환해서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한 것을 기념하여 ‘수전절’(하누카)이라는 절기가 생겼고 지금도 유대인들은 부림절과 이 수전절을 세 개의 중요한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회복된 나라도 곧 다시 시리아에 무너지고, 주전 63년이 되면 패권이 또 바뀌어서 로마가 시리아를 정복합니다.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이후 로마의 권력자가 바뀌면서 이스라엘 역사도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이 지리멸렬한 역사 속에서 헤롯 대왕이 등장합니다. 헤롯 대왕은 친로마주의자로, 강대국을 등에 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역사에 함께 얽혀 들어갑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황제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었는데 헤롯 대왕은 안토니우스를 지지했습니다. 그런데 옥타비아누스가 황제에 등극한 것입니다. 헤롯 대왕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지지하던 사람이 아니라 그 경쟁자가 황제에 오른 상황이 되자 그는 로마까지 찾아갑니다. 옥타비아누스는 황제 앞에서 왕관을 내려놓고 “소신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저는 왕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속국의 왕이 로마까지 찾아와서 왕관을 내놓으며 잘못했다고 하는 데 감동한 옥타비아누스는 헤롯에게 염려 말고 돌아가라며 다시 왕관을 씌워주었습니다. 헤롯 대왕은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로마주의자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대통령만 되면 자꾸 미국에 가는 걸 볼 때마다 헤롯 대왕이 떠오릅니다. 로마 황제의 인가를 받고 돌아온 헤롯은 권력기관을 마련하고 피의 숙청을 시작합니다. 아내, 장모, 동서, 다른 왕족, 심지어 자기 자식까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모든 사람을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민중의 고혈을 짜서 건축과 토목 사업을 일으킵니다. 황제 신상과 극장, 경기장, 체육관, 목욕탕 등 로마식 건축물들을 세우고 빌립보 같은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볼 수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 헤롯 대왕이 만든 것입니다. 잔인한 헤롯 대왕은 주전 4년, 예수님이 태어나신 그 때쯤 여리고에서 죽임을 당하고, 유대 영토는 헤롯의 세 아들인 아켈라오와 빌립과 안디바가 나눠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망가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갔습니다. 그나마 있던 나라는 세 개로 쪼개지고, 로마에 붙은 권력자들은 돈을 벌고, 종교 지도자들은 힘 있는 자들에게 붙어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며 자기 배만 불리고, 가난한 민중은 더욱 가난에 찌들어갔습니다. 암울하기 그지없던 그 때, 그 때가 바로 예수님이 오신 때입니다.

49~50. 내가 아는 놀라우신 내 주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주님, 제게 힘을 주십시오. 제가 주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겠습니다’하며 바보가 될 때, 내가 성장합니다. 열심히 성경공부 한다고 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공부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내가 믿고 있는 바를 세속 생활에서 표현할 때 성장하는 것입니다.

92~93. 1974년, 필리핀의 한 작은 섬에서 ‘오노다 히로’라는 일본 군인이 발견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22살의 젊은 장교였던 그는 필리핀의 루방 섬에 파견되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1945년 8월 15일, 전쟁이 끝나고 그의 수하에 있던 모든 부하가 투항했지만 그는 투항하지 않았습니다. … 숨어 지내는 동안 그는 민간인과 필리핀 정찰대를 자그만치 30여 명이나 살해했습니다. 패전을 알리는 여러 전단과 통로를 접했지만 그는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74년, 드디어 그의 직속상관이 그곳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에게 투항 명령서를 건넸습니다. 그 투항 명령서를 받고서야 그는 29년 만에 루방 섬에서 나왔습니다.

96. 헬라어 원문의 “가까이 왔다”는 번역하기가 까다로운 단어입니다. … 이 단어는 ‘엥기조’(engizo)라는 헬라어 단어의 현재완료형입니다. 여기서도 문법이 중요합니다. ‘엥기조’는 ‘가깝다, 가까이 오다, 가까워지다’라는 단어인데 현재완료로 쓰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일까요, 아주 가까이 왔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일까요?

97.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지금 곧 임하였다’는 뜻과 ‘이제 곧 임할 것이다’라는 두 개념이 공존합니다.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독특성이 있습니다.

103.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이중구조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전히 임할 때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이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가져오신 새로운 시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을 보았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106~107. 바울은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의 가르침에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사상이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중적 구조로 인한 종말론적 시간관이 그의 신학에 반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대가 흘러오다가 하나님이 개입하신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로 인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완벽하게 이루어집니다. 이 구원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사이에서 우리는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져가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 유명한 신학자가 학교에서 퇴근하면서 두툼한 성경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청년이 담대하게 그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그러자 이 교수님이 씩 웃으며 답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따르면 있네. 그런데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따르면 지금 그냥 진행 중이지. 그리고 디모데후서 4장 18절에 따르면 아직 못 받은 게 확실하네.” 그 청년은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이미 받은 구원과 미래에 완성될 구원 사이에서 현재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는 현재와 미래의 구원 부분을 잃어버리고 우리가 이미 구원받았다는 얘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확신을 얼마나 단순하고 빈약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 이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세계를 보는 역사의식이자, 시대를 보는 눈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완벽한 구원은 남아 있고, 우리의 구원은 삶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111.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우리에게 기쁨이 없는 것은, 대부분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근심하시기 때문입니다. 근심하시는 성령님을 우리가 계속 무시하면 어느 단계부터는 우리 안의 성령님이 침묵하십니다. 불이 꺼지듯이 성령이 소멸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얘기했습니다(살전 5:19). 중간 시대인 지금은 우리 가운데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성품이 변화되는 성령의 열매, 교회를 세우는 성령의 은사,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성령의 비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결국 성령님이 근심하시다가 소멸되는 것입니다.

112. 교회와 성령, 이 둘은 중간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함께 속해서 같이 살아갈 공동체인 교회와, 우리를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이끌어가시는 성령님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142. 예수님의 주 관심사는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내 주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나’입니다. 우리의 회개는 그런 나에 대한 관심에서 예수님의 관심으로 눈이 옮겨지는 것입니다.

151. “아, 그거 말입니까? 사실은 나도 그냥 한번 흉내 내본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이 내가 잘못한 죄를 대신 뒤집어쓰셨 거든요.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이 잘못한 걸 내가 뒤집어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래서 그를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당신은 일도 잘하고 성실한데 이번에 크게 실수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냥 놔두면 당신이 파면당하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뒤집어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152. 회개는 울고불고 슬퍼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주님께서 우릴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깊이 묵상하면서 내 중심성이 바뀌는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수련회에 참석하고 수없이 많은 기도회에 가서 울었지만 변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셨다면, 우리의 변화는 감정적 변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변화에서 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중에 중요한 것이 예수님에 대한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우리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153~154. 저는 16장 8절에서 끝나는 것이 원래의 마가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뒷부분은 후대 사람들이 덧붙인 것입니다. 가장 오래된 사본에는 16장 8절 이후가 없습니다. 9~20절 내용이 길든 짧든 붙어 있는 사본은 모두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학자가 마가복음 원본에는 16장 8절까지만 있었으리라고 거의 확신합니다. … 마가복음이 기록된 것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뒤 25~30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156.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에게 존경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회개해야 할 영역입니다. 나에게 예수님은, 끊임없이 내 필요를 채워달라고 요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늘 나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 되셔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세 번째 회개입니다.

156~157. 나에게는 어떤 회개가 필요합니까? 첫째, 나에게 꽂혀 있던 나의 주 관심이 예수님의 관심으로 바뀌는 회개입니다. 둘째, 세상 방식대로 맺었던 인간관계를 예수님의 방식으로 새롭게 맺는 회개입니다. 셋째, 참으로 매력적이고 존경할 만한 예수님이지만 단순히 그분을 존경하고 따르며 또는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분을 예배하는 자로, 경배하는 자로 돌이키는 회개입니다. …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생활해 나가면서 삶의 현실에서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회개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됩니다.

_ 김형국, <청년아 때가 찼다>, 죠이선교회, 2012.

: 2:43 am: bluemosesErudition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지를 수학적이고 뇌과학적인 방법을 써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순간 수많은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는 점이, 제가 이 분야에 매료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왜 특정한 의사결정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실생활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의사결정 문제들을 실험실 상황에서 행동과제를 통해 연구하고, 그 행동 이면에 있는 인지적, 생물학적 기반을 알아내기 위해 계산모델링(computational modeling)이나 뇌영상기법(neuroimaging) 등을 이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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