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y 4th, 2007

May 4, 2007: 10:12 am: bluemosesErudition

“16세기가 해부학, 17세기가 생리학, 18세기가 병리학의 시대였다면 19세기는 세포, 20세기는 유전체의 시대라 할 수 있다. 16세기의 해부학이 몸을 무정형한 액체가 아닌 일정한 형태와 구조를 지닌 실체로 인식한 이래로 탐구의 단위가 이처럼 변하자, 고대의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로부터 이어진 4체액설은 설 곳을 잃게 된다. 해부학이 구조와 형태로 된 몸을 확립하자 생리학은 그것을 바탕으로 몸의 기능을 설명했고, 병리학은 질병을 그 구조와 형태의 변화로 파악했다. 이것이 파라켈수스(통보Intimatio, 1527)를 시작으로 베살리우스(인체의 구조에 관하여De Humanis Corporis Fabrica, 1543)에서 하비(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하여Exercitatio Anatomica de Motu Cordis et Sanguinis in Animalibus, 1628)를 거쳐 모르가니(질병의 원인과 자리에 관한 해부학 연구De sedibus et causis morborum, 1761)에 이르는 200여 년 동안의 흐름이다. 이후 비샤가 조직에서, 비르쇼가 세포에서, [19세기 베르나르가 도입한 생체실험을 바탕으로] 20세기에는 세포 속의 염색체에서 병의 원인을 찾아낸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근대서양의학의 흐름은 끝없는 환원(reduction)의 역사라고 할 만하다. 이렇게 질병의 자리는 기관-조직-세포-유전체로 점차 하부단위로 옮겨졌다. (중략) 베살리우스 이래로 물질의 질서를 갖춘 실체가 된 몸은 이제 다시 조직과 세포와 분자로 나뉘고 구조와 형태가 아닌 관계와 반응으로 존재하게 된다. (중략) 애초에 시계와 같은 기계장치로 가정한 근대의 몸은 해부학과 생리학 연구를 통해 경직성을 털어내고, 복잡한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화학공장이 되기도 하고, 유연한 세포들의 공동체로 설정되기도 한다.”

: 2:52 am: bluemosesErudition

1. “본질적으로 다툼의 대상인 모든 개념들이 그렇듯이 무엇보다 실재론의 복잡성은 혼동의 결과가 아니다. (중략) 실재론의 개념은 확실히 평가적이다. (중략) 실재론의 개념이 본질적으로 다툼의 대상이라면 마음과 무관한 객체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태도, 진정 지식을 의심하지는 않으나 형이상학의 가능성은 의심하는 회의적 태도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태도는 철저하게 수사학적인 과학관, 즉 지식은 설득과 의견일치의 문제라고 보는 관점에 적합하겠다. (중략) 수사학자들한테 과학은 직업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일치를 획득한 언설들의 통일성있는 네트워크다. [다시 말해,] 과학의 진리를 사실과 실재의 들어맞음이라기 보다는 일정한 범위의 언설들이 지닌 통일성에 대한 의견일치로 여긴다면, 개념 변화의 정당화도 그것이 실재에 얼마나 더 근접했는지에 토대를 둘 필요는 없어진다. 그보다 과학의 진리는 … 설득과정의 자연스런 결과이며, 잠재적으로 분열적인 언설들은 계속 유입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의견일치를 만들어내려는 끊없는 노력의 자연스런 결과이다. (중략) 과학은 진리의 문제라기 보다는 세계 구성의 문제다.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는 ‘이미 만들어진 세계’는 존재하지 않기에, 새로운 세계는 옛 세계에서 가져와 건설할 수밖에 없다. 구성이란 언제나 전통이 인정하는 방법에 크게 의존하는 재구성이다(Gross, 2007).”

2. ”[급진적 과학수사학자인] 그로스의 과학수사학은 ‘지식의 민주주의’에 닿아 있다. 그는 과학도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상 다른 지식이나 담론과 마찬가지로 설득과 합의에 의해 지식을 구성하므로, 과학수사학은 과학의 이런 성격을 분석하여 과학 지식이 지닌 인식론적 절대 우위, 또는 지식의 특권을 해체하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오철우,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