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레프트리뷰』는 영국에서 1960년 창간되어 격월간으로 출간하고 있고 있으며, 한국어판은 그간 출간된 것들 가운데 우리에게 유의미한 글들을 추려 1년에 한 번 출간하고 있다.”
“『뉴레프트리뷰』는 영국에서 1960년 창간되어 격월간으로 출간하고 있고 있으며, 한국어판은 그간 출간된 것들 가운데 우리에게 유의미한 글들을 추려 1년에 한 번 출간하고 있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도덕적으로 기껏해야 관용되는데 불과했던 이윤의 추구를 프랭클린은 어째서 직업(소명)으로 생각했는가”를 묻는다. 이 물음은 탐욕으로 간주되던 금전 추구행위가 어떻게 하여 존경받는 행위가 되었는가로 확장할 수 있다.
베버의 물음에 함축되어 있듯이 중세적 사회에서 이윤의 추구는 기피되는 행위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금전욕, 권력욕, 색욕을 3대 죄악으로 간주했고, 최소한 인정한 것은 명예욕과 결합한 권력욕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악덕의 본질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고, 악덕에 의한 악덕의 견제 가능성을 인정하는 한에서만 그러했을 뿐이다.
근대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자각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대이고 이러한 파악이 모든 탐구 영역에서 바탕이 된다. … 홉스는 갈릴레이의 이론에 기초하여 인간 본성을 파악하려 했으며, 그에 따라 «리바이어던»은 국가에 관한 논의 이전에 10개 장을 인간에 관한 논의에 할당한다. 스피노자, 비코, 루소 등도 이러한 논의에 가담하였으며, 이들 모두는 도덕철학과 종교적 교훈만으로는 인간의 파괴적 정념을 통제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파괴적 정념에 대처하는 방안들은 여러 가지로 나뉘어진다. 첫번째는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강제와 억압에 호소하는 것인데 근대에서는 칼빈이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하기도 하였다. 두번째로는 “분열적인 정념을 건설적인 것으로 전환시킨다는 생각”, 즉 정념을 이용하는 것인데 이러한 태도는 비코에서 선구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새로운 학문» 132절과 13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법률이란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인간 사회에 유용하도록 고찰하는 것이다. … 지상의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이들 3악[흉포, 탐욕, 야심]으로 사회적 행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각자가 사리(私利)에만 몰두해 있다면 야수 못지않은 고립상태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정념으로부터, 인간적 사회생활이 가능하도록 사회질서를 창출하는 신성한 입법정신이야말로 신의 섭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부론» 3편 4장의 제목은 “도시의 상업은 농촌의 개량에 어떻게 공헌했는가”이다. 이 제목은 분명 상업이 농촌의 개량에 공헌한다는 것을 천명한다. 4장의 한 구절은 이러하다: “상업과 제조업은 [이전에는 인근 주민들과의 끊임없는 전쟁상태와 영주들에 대한 노예적인 종속상태에서 살았던] 시골 주민들 사이에 질서와 훌륭한 정치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안전을 점차로 도입한다. 이 점은 지금까지 거의 관찰되지 않은 바지만 상업과 제조업의 효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흄은 그것을 주목한 유일한 저자이다.”
“상업과 지식이 없다면 봉건적 속박으로부터의 인간의 해방은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단순한 경제적 동기가 아니라 부르주아가 중세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한 기초인 것이다.
흄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은 정념에 의존하고 정념은 경험에 의존한다. 그리고 상업은 인간의 경험, 지식, 가치를 확장한다. 우리는 이러한 논의를 흄의 저작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가 1725년에 Political Discourse라는 제목으로 묶어낸 12개의 에세이 중 중심이 되는 것은 “상업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서 흄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국가의 위대함과 그 신민의 행복은 … 일반적으로 상업과의 관련에서 분리될 수가 없다. 사적인 인간이 교역과 부의 소유에 있어 공공의 힘으로부터 더 많은 안전을 얻게 될수록 공공[영역]은 사적인 인간의 풍요로움과 확장된 상업에 비례하여 더 강력해진다. 이러한 공리는 일반적으로 참인 것이다.” 이렇게 흄은 “상업과 정념을, 정치사회의 구축과 능동적이고 활력있는 역사에 기여하는 역동적 힘”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해관계가 인간 행위의 지배적 동기라는 생각은 가능한 사회질서를 위한 현실적 기초가 마침내 발견되었다는 지적인 흥분은 야기시켰다. 이해관계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이라는 생각은 [플라톤에서와 같은] 존재하지도 않는 이상적 국가 모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되었다. 가장 일반적인 특성이 예측성이다.” 이해관계를 잘 따지는 것은 이제 합리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다(로크의 «통치론»이 옹호하는 부르주아적 합리성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지도적인 철학자들은 자본주의가 인간의 나쁜 성향을 억누르고 좋은 면을 활성화시킨다는 이유로 자본주의를 찬양하였고, 아울러 이렇게 되면 인간 본성의 파괴적이고 불길한 요소를 억누를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이러한 태도를 집약한 명제가 바로 ‘온화한 상업(doux-commerce)’론이다. 이 입장의 선구적인 사상가로는 몽테스키외를 거론할 수 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상업주의 정신에는 근검절약, 경제성, 온화함, 평정, 지혜, 질서 및 규칙성의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정신이 지배적이면 상업에 의해 창출된 부는 어떠한 부정적 효과도 없다”고 말한다. 몽테스키외의 언급에서 우리는 서두에서 제기된 베버의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전조를 가지고 있는 스미스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자유로운 사적 이익 추구를 옹호하면서 이해관계와 정념을 구분하지 않았다. 이익 추구에 의해 정치적 위험이나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점 대신에 이것이 가져올 경제적 이익을 강조하였다.” 그는 «도덕감정론»에서는 “여타의 모든 정념을 재산증식 욕구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로써 “이전의 많은 사상가들이 규명하려고 노력했던, 이해관계가 정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색이 끝나게 되었다. 스미스 이후의 학문적, 정책적 논쟁은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이기심에 충실할 때 물질적 복리가 향상된다는 스미스의 이론에 대해서만 집중되었다.”
그렇다면 17~18세기에 상업과 산업에 대한 옹호가 이처럼 강력해진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허쉬먼은 당시 사람들이 “빈번해진 전쟁과 내란 때문에, 종교적 가르침을 대신하여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엄격히 규율할 새로운 행위 규범을 찾고 있었고, 상업과 산업의 발전이 바로 이런 규범으로 작용하리라고 기대”했다고 본다. 이는 “돈벌이 자체를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익한 부수효과가 있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며, 바로 이러한 기대 속에서 “사회적 파멸을 피하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자본주의 확산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책은 “인간의 충동과 어떤 성향들을 억누르고 좀 더 단순하고 예측가능한 ‘일차원적’ 인간성을 만들어” 내게 되었는데 이는 본래의 의도가 충실하게 실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_ 강유원, 2015.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