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October 26th, 2015

October 26, 2015: 12:14 pm: bluemosesErudition

0. 김윤식 비평에 나타난 ‘현해탄 콤플렉스’ 비판

1. “문제의 개요는 의외로 간단하다. 비평가이자 소장국문학자 이명원은 박사과정의 공부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선배 학자인 김윤식 교수(이하 존칭 생략)가 일본학자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으로부터 많은 부분을 표절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왜 그런 일이 있었던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는 김윤식이 임화라고 하는 선배학자를 겨냥하여 학적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임화를 극복하는데 실패하고 오히려 동화되어 버렸음을 발견했고, 그 이유를 추궁해본 끝에 김윤식에게는 그 스스로 ‘생리적 감각’이라 부르는 무의식적인 일본에의 향수가 있어 그러한 ‘생리적’ 지향이 그로 하여금 일본학자를 도용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논문으로 발표했다.”(노혜경)

2. “<타는 혀>를 시작으로 문학비평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보여주었던 <해독>, 문학권력과 주례사 비평에 대한 비판, 등단제도와 문학상 논쟁 등을 정리한 <파문:2000년 전후 한국문학 논쟁의 풍경>, 그리고 산문집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등이 그가 쌓아놓은 저작 목록이다. 다니던 대학의 박사과정에서 스스로 자퇴했다가 학문적 망명처인 성균관대에서 지난 8월 박사학위까지 받은 이명원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아 오히려 빨리 대학교수가 될 수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말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 11:51 am: bluemosesErudition

“비평가 김윤식이 문예지에 발표되는 모든 중단편 소설들을 읽는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60년대 초반 문단에 나온 이후 반세기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현장비평에 대한 김윤식의 이러한 열정은 동시대에서 그 예를 찾기 힘든 일이다. 아마 이후로도 그러하지 않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소설가 박완서의 정확한 지적이 있다.”

“김정호가 순전히 발로 뛰고 눈으로 더듬어 최초의 우리나라 지도를 만들었듯이 그도 발로 뛰고 눈으로 더듬어 그와 동시대의 우리 문학의 지도를 만들었다. 훗날 후학들이 그가 그린 지도 위에 그가 미처 못 본 아름다운 섬을 추가할 수도, 산맥의 높이가 틀렸다고 정정할 수도 있을 테지만 아무도 이 최초의 지도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업적을 전적으로 부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읽은 것보다 더 많이, 최소한 그가 읽은 것만큼은 읽어야 한다. 누가 그렇게 많이 읽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읽을 수가 있다고 해도 그가 한 것처럼 따끈따끈할 때 읽으면서 동시대의 증후까지를 읽어내는 일은 미래의 시간 속에서는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박완서)

“아직도 월평을 쓰고 있는가. 딱하고도 민망하게 살펴보았소. 이쯤 되면 나만의 방도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소. ‘작품과 작가의 구별 원칙’이 그것이오. 이 작가는 누구의 자식이며 어느 골짜기의 물을 마셨는가를 문제 삼지 않기. 있는 것은 오직 작품뿐. 이 속에서 나는 시대의 ‘감수성’을 얻고자 했고, 또 하고 있는 중이외다. 내 ‘자기의식’의 싹이 배양되는 곳. 어째서 그대는 세상 속으로 나와, 작가.현실.역사와 대면하지 않는가.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하면 어떠할까. 그러나 작품 속에서 만나는 세계가 현실의 그것보다 한층 순수하다는 믿음은 갖고 있소이다. 카프카의 표현을 빌리면, 그 ‘순수성’이란 이런 것이오. 밤이면 모두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담요에 싸여 잠들지만, 따지고 보면 원시 시대의 인간들이 그러했듯 들판에서 땅에 머리를 처박고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몰라 가까스로 잠이 든 형국이라고.”(김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