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October 20th, 2015

October 20, 2015: 4:25 pm: bluemosesErudition

홀로 먹거나 말을 삼가라.

: 12:52 pm: bluemosesErudition

서경식 _ “서구적인 표현이지만, 로고스(Logos)와 미토스(Mythos)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해볼게요. 서양에서는 로고스만으로 삶의 구석구석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었어요. 그런데 아우슈비츠 이후 로고스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여백이 조명받기 시작했지요. 이렇게 용어를 차용하면 서양적인 것의 답습이 될까 우려되기도 하지만, 이런 여백을 미토스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제가 미술이나 음악에 관심을 갖는 건 이런 여백이 예술을 통해 표현되기 때문일 겁니다. 미토스에 대한 조명은 서구적 합리성에 대한 정면 대결이나 부정이라기보다는 로고스적인 이해의 한계를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 11:55 am: bluemosesErudition

kenosis, 비움. “전통적인 유신론은 통상 우주의 시원에 하나님이 자기 밖에다 세계를 창조하셨으며, 첫 창조는 그 자체로 완결된 좋은 창조였다고 이해했다. 하나님과 세계를 이런 구도로 간주할 때 신의 역할이란 자신이 만든 세계를 돌보고 통치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케노시스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자기 밖이 아닌 자기 안에 공간을 만들어서 그곳에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창조란 하나님의 자기 비움 행위이며,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비우면서까지 세계 창조를 기뻐하신 사랑의 존재였음을 말한다.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시기 위해 자신의 속성인 전능, 전지, 편재 등을 일부 희생시켜가면서까지 피조물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그럼으로써 그 피조물들이 자유의지를 갖고 신의 계속적 창조에 동역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다.”

: 2:41 am: bluemosesErudition

나치가 공산당원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태인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항의해 줄 누구도 더 이상 남지 않았다.

_ 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öller, 1892~1984

: 2:17 am: bluemosesErudition

Horace Miner, American Anthropologist, 58(3), 1956

: 2:07 am: bluemosesErudition

호세아서 4:14 RNKSV

너희 남자들도 창녀들과 함께 음행을 하고, 창녀들과 함께 희생제사를 드리는데, 너희 딸들이 음행을 한다고 벌하겠느냐?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한다고 벌하겠느냐?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한다.

“오늘 매일성경 본문에서 가장 인상 깊은 구절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오바댜는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여 구별된 삶을 감행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이게 어찌 가능할까, 묵상해봅니다. 저는 그 한 가지 이유가 깨달음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사화복 주관하심을 온전히 알면, 도저히 주께 등을 돌리고 세상의 권세에 편승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