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치 코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이 참호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 입던 야전 코트를 말한다. ‘트렌치’라는 단어가 ‘참호’라는 뜻이다.”
“전쟁이 시작할 1914년 7월말과 8월초만 하더라도 그들 대부분은 ― 병사뿐만 아니라 수뇌부조차도 ― 이 전쟁이 1주일 안에 끝날 거라고 예상했고, 때문에 병사들 대부분은 넘치는 명예심과 민족주의적 애국심으로 자원입대한 상태였다. 1주일, 2주일, 한 달, 한 계절, 아무리 늦어도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집으로 돌아가 명절을 즐길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연사가 가능하고 사거리도 긴 ‘기관총’이라는 현실은 중세 기마병의 돌격처럼 보병의 돌격전이야말로 전투의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여긴 연합군 장성들의 낭만적인 생각을 깡그리 날려버렸다. 하지만 독일군 역시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양측은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점점 더 깊은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그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1460일. … 비행기와 탱크가 이 고착상태를 타개하기까지는 20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참호에 쳐박힌 프랑스 군인과 독일군인은 다를게 하나도 없다. 둘 다 가엾은 존재들이고, 그게 사태의 본질이다.” “병사들은 이전에 알던 세계와 차단된 후 완전히 생소한 환경으로 내던져”졌으며, “고립감이 병사들을 완전히 응집시켰고, 그들은 상황을 견뎌낼 수 있는 집단적 자부심을 발견했다.” 이러한 기묘한 자부심은 앞서의 동정심과 결합하여 “저주받은 자들의 형제애를 구성”했으며, 이것의 쌍생아는 “시련을 함께 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경멸감”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에서 주조된, “독자적 의식과 사고방식을 지닌 순교자 집단”은 바로 이러한 심성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영웅적 니힐리즘으로 집약된다. 참호전의 무명 용사들은 전간기를 거치면서 등장한 나치의 핵심 구성원의 의식세계를 지배했다. 1차 세계대전의 참호는 모든 것을 전투로 환원시켜 이해한 히틀러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그와 영혼의 주파수를 맞추었던 파시스트들 모두를 잉태한 거대한 자궁이었다.
닐 그레고어의 『하우 투 리드 히틀러』에 인용된 히틀러의 『나의 투쟁』 한 단락을 보자: “그런 다음 우리는 플랑드르 지방의 축축하고 추운 밤을 통해 침묵 속에서 행군했다. 안개를 뚫고 낮이 시작될 무렵 갑자기 강철로 된 아침 인사가 윙 소리를 내면서 우리 머리 위로 날아오더니, 날카로운 폭발음을 내면서 작은 탄알들이 대열 사이로 날아 축축한 땅바닥에 꽂혔다. 하지만 작은 연기가 미처 가시기도 전에 200개의 목구멍에서 최초의 만세 소리가 터져나와 죽음의 심부름꾼을 맞이했다. 그런 다음 딱딱하는 소리, 외치는 소리, 노래하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가 시작되고, 우리는 불타는 눈길로 앞을 향해 점점 더 빠르게 달려나가 마침내 순무 밭과 산울타리를 지나 전투가 시작되었다. 사나이 대 사나이의 싸움이었다.” 이 구절을 닐 그레고어는 다음과 같이 읽는다: “계층 간의 온갖 한계와 구분을 넘어서는 이런 단합의 순간이란 극우파에게 ‘참호 속의 사회주의’로서 언제까지나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료들의 출신 성분이나 평화 시절의 직업과 관계없이 모두가 서로를 위해, 그리고 조국을 위해 싸우는 군인들의 공동체다. 의심할 줄 모르는 노동자들에게 거짓말쟁이 유대인들이 주입해넣은 가짜 사회주의가 아닌, 참호의 피를 통해 만들어진 진짜 ‘사회주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