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구세정제 아이봉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을 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인생은 삶(Birth)과 죽음(Death)사이의 선택(Choice), 즉 결정이란 말이다. 사람의 인생도 인류의 역사도 따지고 보면 모두 결정의 축적물이다.”
“중국 소비자들은 다양한 쌀 품종 중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품종을 골라 밥을 지어 먹는 시대로 이미 들어섰다. … 향미 계열 쌀로 밥을 지으면 그윽한 향기가 집 안을 가득 채워 밥을 잘 안 먹는 아이의 식욕도 돋울 수 있다. 전통 된장찌개와 함께 먹을 땐 차진 식감이 강한 저아밀로오스 계열의 쌀인 백진주벼를 써보자. 밥알이 하나하나 살아 있는 골든퀸3호벼는 향미이면서 동시에 저아밀로오스 계열의 쌀이니 볶음밥이나 덮밥, 초밥처럼 밥알 하나하나 살아 있는 식감을 원할 때 특히 좋다. 오늘 저녁 인도식 카레를 먹는다면 부들부들한 삼광벼와 함께 먹으면 맛이 배가된다. 초대한 손님에게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시각적 효과를 주고 싶다면 간척지에서 재배한 신동진벼가 제격일 것이다.”(문정훈, 푸드비즈랩 소장)
Immoral man and even more Immoral Society
조직 내부의 모순을 외부로 투사하면, 명분을 얻는 한편 책임도 희석된다. 주창자는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되기도 한다.
<다음 침공은 어디인가>(2015)에서 마이클 무어는 스스로 미국의 전사가 되어 다른 나라들을 침공하기로 한다. 단, 세 가지 규칙이 있다. 누구에게도 총을 쏘지 말 것, 기름을 약탈하지 말 것, 친애하는 미국인들에게 유익한 것을 가지고 돌아올 것. 총을 쏘지 않고 기름을 약탈하지 않는다면, 진지한 의미에서 미국식 침공은 아니다. 결국 침공은 세 번째 규칙을 위해서다. 무어는 미국인에게 유익한 것을 가지고 돌아가기 위해 이탈리아의 휴가, 프랑스의 학교 급식, 독일의 과거사 성찰, 아이슬란드의 양성평등 그리고 핀란드의 교육을 침공한다.
핀란드 침공에서 무어는 묻는다. 예전엔 핀란드 교육이 미국처럼 엉망이었고 학력 수준도 다를 바 없이 바닥이었는데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었을까. 무어는 적국 교육부 장관을 찾아간다.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핀란드 교육부 장관은 ‘일급비밀’을 털어놓는다. “핀란드 학교엔 숙제가 없습니다.” 경악한 무어는 아이들을 만난다. 상대적으로 숙제가 많을 법한 고학년 아이들은 말한다. “숙제는 없어요. 있다고 해도 10분밖에 걸리지 않아요.” 핀란드 교육부 장관은 이어 말한다. “아이들에겐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로 지낼 시간, 청소년으로 지낼 시간, 삶을 즐길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작고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0여년 전 말했다. “한국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교육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토플러는 한국 교육이 ‘산업화 시대의 인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 평가했다.
“뒤에서 안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귀지 파주는 것을 좋아한다. 고양이의 관능과 무심함을 좋아한다. 무신경하고 무성의한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슬픔과 리듬을 믿는다. 꽃보다 나무. 서슴서슴한 사귐을 옹호한다. 영롱보다 몽롱. 미신을 좋아한다. 집필 오르가슴을 느낄 때 충만하고 잎사귀를 들여다볼 때 평화롭다. 한 생은 나무로 살 것이다. 병이 될 만큼 과민한 탓에 생활의 불편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의 예민함은 스크래치 기법의 뾰족한 칼끝 같은 것이라고, 그것으로 검은 장막처럼 칠해진 어둠을 긁어내는 것이라고 우기며 위로한다.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지 않지만 상상하려 애써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애쓰며 쓰는 일로 절반의 삶을 쓰고 싶다. 무어든 더디고 늦되는지라 뒤늦게 시를 만났고, 이제야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허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