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2019

January 25, 2019: 10:31 pm: bluemosesErudition

“아코메야는 일본 각지의 쌀을 엄선해 원하는 대로 정미해서 판매하는 본격적인 쌀집이자, 쌀이 주연이 되는 밥상을 위한 식재료를 비롯해 식도락을 위한 그릇과 액세서리, 욕실용품까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 숍이기도 하다. 일본어로 쌀집인 ‘코메야’에 영어로 ‘하나’를 뜻하는 관사이자 부정의 접두어 ‘A’를 붙인 아코메야Akomeya는 ‘하나의 쌀집’이기도 하면서 ‘쌀집이 아닌 집’도 되는 재미있는 이름이다. 아코메야의 운영사인 사자비 리그Sazaby League는 스타벅스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훨씬 이전인 1995년에 이미 일본에 스타벅스를 조인트 벤처로 들여오기도 했고, 론 허먼Ron Herman, 캠퍼, 플라잉 타이거 코펜하겐, 셰이크 쉑 버거 등 패션과 리빙, F&B를 아우르는 글로벌 브랜드를 일본에 소개해온 거물이다. 이뿐 아니라 40년 된 출판사 창고를 개조한 감각적인 편집숍 라 카구La Kagu를 비롯해 카페 겸 리빙 숍 애프터눈 티 티룸Afternoon Tea Tearoom 등 일본의 로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역시 다수 거느리고 있는 사자비 리그는 2013년 3월, 도쿄 긴자에 아코메야를 처음 선보이며 쌀을 다시 한번 쿨하게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일본 각지에서 생산하는 여러 품종 가운데 엄선한 쌀을 현미부터 백미에 이르는 5단계 도정 중 선택할 수 있고, 5종, 7종, 10종의 쌀을 작은 사이즈로 포장한 샘플러 패키지를 테스트해보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쌀을 고를 수도 있다. 또한 쌀 구매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된장이나 간장, 소금 같은 식품부터 야채와 생선 절임까지, 그리고 이런 식재료로 요리하는 데 필요한 조리 도구와 우아한 상차림을 위한 장인이 만든 식기, 식사 후 차를 내는 다기에 이르기까지 맛 좋고 멋 좋은 한 끼를 위한 모든 것을 한곳에서 구매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의 공간인 셈이다. 일본의 유명 상품인 이마바리 타월을 비롯해 욕실용품까지 구비한 아코메야가 취급하는 상품은 6000여 가지에 이른다.”

: 9:53 pm: bluemosesErudition

8~9.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창의력 연구의 대가인 조이 길포드가 정의했듯 창의력이란 “주어진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나 산출물을 표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중략) 세상의 중요한 것들은 결코 쉽게 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드러난 답은 이미 모두가 다 아는 답이기에 결코 무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숨겨진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좋은 안목이다. 꽁꽁 숨겨놓은 것도 찾아내서 볼 수 있는 킨사이트Keen-sight, 단서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는 것들을 서로 엮고 붙여 그 속에 숨은 놀라운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 크로스사이트Cross-sight,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고 구체화하는 포사이트Fore-sight,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인사이트In-sight는 누구나 갖추기 원하는 안목이다.

20. “세상에 불만이 많다는 것은 이를 해결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미래의 기업가는 지금 불평하는 사람이 아닌, 이 불만들을 풀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나올 것이다.”(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28~30. 2006년 8월 단장으로 취임한 피터 겔브는 티켓값에 대한 관객들의 불만을 간과하지 않고 큰 결단을 내렸다. 그는 오페라단의 공연을 전 세계 극장에 고화질로 생중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 그렇게 2006년 말 ‘메트: 라이브 인 HD’가 시작되었다. 전 세계의 오페라 애호가들이 매번 공연을 보러 뉴욕까지 날아가는 대신, 자신이 사는 도시의 영화관에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공연을 보는 것은 꽤 매력적인 일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처음에는 미국, 캐나다 100여 곳과 영국, 일본, 노르웨이의 일부 영화관에서 시작했던 것이 현재는 전 세계 70여 개국 2,000여 개 영화관에서 매년 수백만 명이 보고 있다. 티켓 판매율은 다시 90% 선을 회복했는데, 영화관에서 ‘메트: 라이브 인 HD’를 경험한 이들이 뉴욕에 가면 반드시 링컨센터에서 직접 공연을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오페라 관람의 문턱을 낮추면서 결과적으로 관객층이 더 두터워진 것이다.

69. 현 교육제도가 창의력을 말살시키는 주범이라는 주장에도 일가견이 있다. 실존주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일찍 죽어주는 것이다”라는 말은 아버지의 권위가 자식의 창의성이나 자립심에 해를 끼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야말로 창의성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101~102. 저물어가는 종이 신문에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났다. 바로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였다. 2013년 8월, 그는 자신의 사비를 투자하여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한다. 1877년 창간된 140여 년 전통의 신문사를 2억 5천만 달러에 산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하면서 제프 베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신문 산업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인터넷에 대해서는 안다.” 종이 신문 중심에서 디지털 뉴스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자신이 직접 디지털화를 주도하며 사업과 운영 방식에는 개입하겠지만, 신문의 편집 방향 등 저널리즘과 관련해서는 편집국에 일임하고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도 내세웠다. 구조조정은 했지만 직원 수는 오히려 늘렸다. IT 인력도 대거 확충했고, 결정적으로 뉴스 제작 인력을 늘렸다. 국내외 취재력을 높이려고 기자와 에디터 50명, 뉴스룸 직원 70명을 각각 증원했다. 콘텐츠 강화가 신문 산업의 위기를 극복하는 기본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신문의 광고 수익이 중요했다면, 콘텐츠가 경쟁력을 지니면 콘텐츠 유료화를 통한 수익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제프 베조스는 단순히 투자 수익을 노리고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한 것이 아니라, 신문 산업의 변화에 도전한 것이다. 제프 베조스는 온라인 독자를 늘리기 위해 아마존도 적극 활용했다. 아마존 프라임 고객들에게 <워싱턴 포스트> 온라인판 6개월 무료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무료 이용이 끝난 후에는 정기 구독료를 대록 할인해 주었다. … <워싱턴 포스트> 온라인 사이트의 순 방문자 수는 2013년 9월 2,600만 명에서 2015년 11월 7,156만 명으로 2년 만에 세 배나 늘었다. 2016년 11월에는 9,911만 명으로 전년 대비 38.5%가 늘었는데, 2013년 9월에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하고 3년 만에 순 방문자 수가 약 네 배 늘어난 것이다. 2016년 신규 온라인 구독자 수도 전년 대비 75%가 늘어나 디지털 구독 수입이 두 배가량 증가했으며 디지털 광고 수입도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125. 아무리 기술이나 제품이 탁월해도 혼자서는 성공에 역부족일 때가 있는데, 자기 기업만 독불장군 식으로 밀고 나가다간 다른 기업들의 연합전선에 밀려 탁월한 제품을 가지고도 실패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니가 만든 비디오플레이어 베타맥스Betamax다. 베타맥스는 JVC가 만든 VHS(Video Home System)보다 크기도 작고 화질도 더 뛰어났지만, 소니가 배타적인 라이선스 정책을 펴 기술도 공유하지 않고 고가 전략을 펴는 바람에 기계값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베타맥스 규격을 이용한 콘텐츠를 출시하려면 폭력적이거나 외설적인 내용을 규제하는 소니의 요구를 따라야 했는데, JVC는 오히려 포르노 제작사와 계약해 북미 성인용 비디오 시장을 점령해버렸다. 그래서 베타맥스로는 오로지 영화만 볼 수 있었지만 VHS로는 영화는 물론이고 성인 비디오까지 볼 수 있었다. 가격까지 저렴했다. 이런 상황에서 화질과 크기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콘텐츠 규모 면에서 차이가 크게 나면서 1984년 25%였던 베타맥스의 점유율은 1986년 7.5%까지 떨어졌고, 결국 1988년 소니도 VHS 비디오 데크를 제조하며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했다.

129~130. 1952년 12월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부산의 유엔군 묘지를 방문하기 직전의 일이다. 당시 대통령에게 황량한 묘지를 보이고 싶지 않았던 미군 측은 한겨울임에도 유엔군 묘지를 푸른 잔디로 꾸며 달라는 입찰을 냈다. 요즘이면 그나마 온실에서 키우는 잔디나 인조잔디를 이용해서라도 만들겠지만 당시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모두 안 된다며 포기할 때 그것을 간단하게 해결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낙동강변의 보리싹을 수십 트럭 싣고 와서 유엔군 묘지를 순식간에 푸르게 만들어놓았다. 한겨울에도 파랗게 돋아나는 보리싹을 활용한 것이다. 과연 이 사람은 누구일까? … 한겨울에 잔디가 없다며 포기한 사람들은 문제에 관성적으로 접근한 것이고, 잔디 대신 보리싹으로 미군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정주영 회장은 문제에 창의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133~134. 신문을 볼 때도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 등 신문 지면에 구분되어 있는 정보들이 실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그 연결 고리를 보려 애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신문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다른 것보다도 신문은 매일, 그리고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매체이므로 더 유용하다. 아울러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폭넓게 받아들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가끔 대단해 보이는 방법들만 좇는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이 꾸준히 쌓이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에 대해서는 간과한다. 그러나 탁월한 안목을 지닌 이들은 그 사소함에 집중한다. 1에서 1%를 더하면 1.01이 되고 1%를 빼면 0.99이다. 1.01과 0.99는 겨우 0.02 차이다. 그러나 1.01을 365번 제곱하면 약 37.8이 되고, 0.99를 365번 제곱하면 약 0.026이 된다. 0.02라는 미미한 차이가 쌓이고 쌓여 37.8이란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하루에 해야 할 목표를 누군가는 1.01만큼 달성하고, 누군가는 0.99만큼 달성했다고 생각해보자. 하루만 보면 별 차이 없지만, 1년이 지나면 절대 극복 불가능한 간극이 생긴다. 동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동창 친구들을 떠올려보자. 분명 과거에는 비슷했지만 수십 년이 지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격이 벌어진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결국 꾸준히 쌓은 능력만큼 강력한 것도 없다. 창의력은 바로 오래 꾸준히 쌓여 탁월해지는 능력이다.

152~153. IBM에는 특별한 조직이 있다. 일종의 정찰부대인데, 외부에 나가 고객과 시장의 트렌드를 살피고, 신사업이나 기업 생존을 위한 다양한 정보를 탐색, 관찰하고 분석해 최고경영진에게 보고하는 고직이다. (중략) 이 조직의 이름은 ‘까마귀 둥지Crow’s Nest’다. 원래는 배의 돛대 꼭대기의 망루를 일컫는 말로, 배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선원이 까마귀 둥지에 올라가서 멀리 내다본 정보를 선장에게 전달하고, 선장은 그것을 토대로 항로 결정 등 중요한 의사 결정을 했다.

171~172. 엔비디아가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자율주행차를 차세대 사업으로 삼아 연구한 것은 오래전부터다. 하지만 이 분야들을 연구하거나 미래 사업으로 삼은 기업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구글이 먼저 두각을 드러냈고, 여타 자동차 회사들의 다양한 시도도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래픽 처리 장치 전문 업체답게 카메라에 찍히는 이미지 데이터를 분석하는 역량에다 자동차 스스로 학습하여 진화하는 딥러닝을 접목시켜 자율주행 자동차에 접근한 것은 단연 주목을 끌 만했다. 무인 자율주행차는 아직 완성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 기술이다. 즉 정해진 답이 없다. 기술을 풀어가는 방법 및 방향이 다양할 수밖에 없고, 예상 답안들 중 점점 좋은 답으로 좁혀지면서 진화할 것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엔비디아가 미래 자동차 분야에서 주도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176~177. 미국의 벤처캐피탈 샤스타벤처스Shasta Ventures에서 미국 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32곳의 ‘시리즈 A(프로토타입 개발부터 본격적인 시장 공략 직전까지의 기간, 즉 사업 초기 단계)’ 시점의 특징에 대해 살펴본 적이 있다. 조사 대상에는 우버, 트위터, 왓츠앱, 핀터레스트,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스냅챗, 인스타그램, 네스트, 리프트 등 쟁쟁한 스타트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초창기 이들의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라고 평가한 이들이 많았다. 에어비앤비에 대해서도 투자자들이 “낯선 사람 집에서 누가 잠을 자겠느냐?”라고 지적했다. 호텔이라는 기존의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는 점도 비즈니스 모델을 부정적으로 보게 했다. 우버에 대한 시선도 비슷했다. 낯선 사람의 자동차를 타는 것에 거부감이 있고, 이미 택시와 렌터카라는 견고한 시장이 있었으니 말이다. 스냅챗에 대해서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강력한 소셜 네트워크가 있는 레드오션에 도전하는 무모한 후발주자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성공했다. (중략) 미래를 만드는 것은 과거의 관성에 빠지지 않은 사람의 몫이다. 지금 무모한 도전자처럼 보인다면 지금의 관성과 어긋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194. “모든 문제에는 그에 따른 해결책이 존재한다. 일단 문제를 세부적으로 나눈 후, 근본적인 측면으로 돌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더 나은 해결책이 반드시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208. 중국의 고전 한비자의 <해로解老>편에 ‘상상’의 어원이 나온다. 전국시대 사람인 한비韓非가 살던 기원전 3세기의 화북 지역에서는 죽은 코끼리의 뼈를 구해 그림을 그려 살아 있는 코끼리의 모습을 떠올려보곤 했다. 기원전 9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 전 지역에 코끼리가 살았지만 기후가 한랭해지면서 코끼리 서식지가 남하했고, 숲이 경작지를 대체하면서 코끼리가 점점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비가 살던 시대에는 코끼리의 모습을 죽은 코끼리의 뼈로밖에 추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현재 눈앞에서 찾을 수 없는 미지의 이미지를 그린다는 뜻의 글자가 ‘코끼리 상象’이 된 연유다. 막연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그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구체적 실체의 단서가 되는 뼈라도 있어야 상상이 가능하다. 결국 상상도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정민의 <일침>에 나와 있듯 상상은 “이미지를 유추해 본질에 도달하는 것”이다.

210~211. “좋은 것은 종종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종종 좋은 것이 아니다.” 마윈 회장의 말이다. (중략)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제럴드 잘트먼 교수는 그의 저서 에서 인간 사고에서 말로 표현되는 부분은 5%에 불과하고 95%는 무의식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헸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의식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 P&G, 일렉트로눅스, LG전자에서는 문화인류학자들이 중요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인텔은 2010년 인텔 사회과학연구소를 만들어 문화인류학자만 100명에 미래학자, 심리학자, 소설가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들을 채용했다. 소비자의 무의식에 숨어 있는 95%의 답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소비자를 관찰하고 함께 어울리면서 조사를 진행하는 문화인류학자들의 접근법과 다양한 분야의 인사이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14.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 왕국을 유럽의 강국으로 키운 프리드리히 2세는 1774년 대흉작으로 기근이 오자, 전국에 구황작물인 감자를 재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곡물이 밀 위주에서 밀과 감자로 양분되면 밀(빵) 가격 폭등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세기의 프로이센 국민들은 감자가 한센병을 일으킨다고 오해하고 악마의 식물로 여겼다. 아무리 국왕이라도 감자 소비를 강제로 확산시킬 수는 없었다. 농민들은 보급된 씨감자를 불태우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심지어 감자 재배를 거부하다 사형당한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2세는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감자는 이제부터 왕실 채소이며, 왕족만 먹을 수 있다고 선포한 것이다. 자신의 식탁에 매일 감자를 올리고 왕실 전용 농장에 감자를 심어 경비병을 밤낮으로 세워놓았다. 그러고는 일부러 경비를 허술하게 하여 농부들이 감자를 훔쳐가게 두었다. 그랬더니 감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어느덧 감자를 재배하는 거대한 규모의 지하경제가 형성되었다. 농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킴으로써 감자가 소비되게 만든 것이다.

215.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이른 봄날, 뉴욕에서 어느 시각장애인 한 명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걸인은 푯말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음. 지금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임!”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무심히 지나치기만 할 뿐 누구도 걸인에게 돈을 주지는 않았다. 그걸 지켜보던 한 사람이 안타까운 마음에 걸인에게 가서 푯말을 뒤집어 새로운 문구를 써주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멈춰서 돈을 건네고 애정 어린 격려까지 해주고 가는 것이 아닌가. 걸인의 푯말에 새로 적혀진 문구는 이것이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봄을 볼 수 없습니다.” 앞선 문구가 이성을 자극하는 강요하는 듯한 메시지였다면, 새로운 문구는 감성을 자극해 동정을 유발해냈다.

216~217. 2005년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BMW코리아와 현대자동차가 VIP 의전용 차량을 비롯해 각종 차량을 제공했다. BMW코리아가 각국 영부인과 고위관료들이 이용하도록 7시리즈 88대를 포함해 총 150대를, 현대자동차가 VIP 의전용으로 에쿠스 리무진 44대를 포함해 각종 승용차와 버스 424대를 제공했다. 행사 기간 동안 각국 정상들이 탄 차량은 매스컴에 자주 노출됐고 홍보 효과는 충분했다. 그러나 행사가 끝난 후 정상들이 탔던 차량의 처분 문제가 남아 있었다. 며칠밖에 안 쓴 차라도 중고는 중고였다. 이때 같은 상황에 놓인 두 자동차 회사는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결과적으로 BMW코리아의 7시리즈 88대는 전부 일반 고객에게 판매되었다. BMW코리아는 정상회의 전에 미리 선계약을 받았고,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정상회의 후 차량 처분 문제를 정상회의 전에 모두 해결한 셈이다. 가격은 정상가의 5% 할인가 수준이었다. 그러나 2억이 훌쩍 넘는 차량을 구매한 사람이 1천만 원 아끼자고 산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차가 특별한 가치를 가진 한정품이기 때문에 구매한 것이다. BMW는 APEC용 차량을 만들 때 트렁크 왼쪽에 ‘APEC Limited’라는 배지를 붙여 희소가치가 있는 한정판으로 만들었고, 차량을 이용한 VIP의 사인을 받아 패널에 붙여 차량 구입자에게 함께 전달했다. 세계 각국의 퍼스트레이디나 외무.통상장관이 이용했다는 점을 강조하여, 평범한 중고차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을 순식간에 특별한 기념품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반면, 현대자동차는 렌트카 회사에 크게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가격에 팔았다.

220~221. 일본 농림수산성의 2015년 식량 자급률 자료에 따르면 1인당 쌀 소비량은 1962년 118kg에서 2015년 54.6kg으로 크게 줄었다. 일본 전체의 쌀 소비량도 1963년 1,341만 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달성한 이래 감소하기 시작해 2014년에는 851만 톤으로 줄었다. 하루 한 번 이상 밥을 먹는 사람의 비율은 1992년 71.4%에서 2014년 53.5%로 줄었다. 쌀 소비는 지금까지도 계속 줄어들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 중국, 대만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코메야는 쌀의 위기 시대에 시작되었다. 모두가 위기라고 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것이 탁월한 안목이다. 비즈니스는 산업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산업이 위기여도 특정 비즈니스는 기회일 수 있다. 그러니 산업의 위기라는 식의 일반론, 추세 흐름에 너무 주눅들 필요는 없다.

226~227. 다이슨 RDD(연구 디자인 개발) 센터에 내걸린 슬로건은 이것이다. “디자인이 진정 아름다운 순간은 오직 완벽하게 작동될 때다.”

228~229.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에 대적할 만한 선풍기는 발뮤다BALMUDA의 그린팬이 아닐까? 전기 선풍기가 발명된 지 127년 만인 2009년에 날개를 없앤 것이 다이슨이라면, 2010년 발뮤다는 오히려 날개를 더 추가했다. 날개가 열네 개인 이중 팬 구조로 바람이 닿는 면적을 넓히고 소음이 최소화된 특수 모터를 달았다. 당시 선풍기 제조업은 사양산업이었다. … 게다가 고가 선풍기 시장에서는 다이슨이라는 탁월한 브랜드가 날개를 없애버린 혁신 제품으로 주도권을 잡은 상태였다. 발뮤다 선풍기의 출시가는 3만 7천 엔으로 분명 비싼 제품이었다. 발뮤다는 왜 이런 비싼 선풍기를 만들었을까? 발뮤다의 창업자이자 CEO 테라오 겐이 여러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시장이 아닌 소비자를 보고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장에서 무엇이 잘 팔릴까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를 고민한다. 이는 경쟁자와 시장을 다투는 마켓쉐어가 아닌 소비자의 욕망이자 일상을 분석해 문제를 해결하는 라이프쉐어의 본질이자 제조 비즈니스의 기본이기도 하다.

230. 발뮤다의 경영 이념 ‘최소로 최대를’은 최소한의 부품으로 제품을 만들고, 최소한의 디자인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제품의 기능과 성능을 내세우는 대신 선풍기는 ‘시원함’, 토스터기는 ‘맛’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목적을 강조한다.

236~237. <모노클>은 골수 팬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 비즈니스가 미래 미디어 산업의 아주 중요한 전략임을 보여주고 있다. 광고를 통한 수익이 아니라 콘텐츠 자체의 유료화에 집중하는 것이 잡지의 생존 모델이고, 결국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를 확보해 특정 타깃 독자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잡지, 신문, 라디오, 출판 등도 올드 미디어라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특이하게도 <모노클>은 정기 구독을 하면 한 권씩 살 때보다 더 비싸다. 기존의 상식으로는 그 반대여야 한다. 하지만 <모노클>은 정기 구독자들에게 잡지 외에 특별판을 무료로 제공하고 선물이나 비즈니스 클럽, 이벤트의 초대 기회를 준다. 정기 구독을 해야만 <모노클> 홈페이지의 온라인 콘텐츠도 모두 볼 수 있다. 잡지 이상의 것을 누리는 사람들이 바로 정기 구독자인 셈인데, <모노클>에 대한 일종의 소속감까지 갖게 만든다. 새로운 독자를 유치하기보다 기존 독자를 유지하는 데 더 집중한다. 기존 독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언제든 다시 꺼내서 읽어볼 수 있는 소장 가치가 있는 잡지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잡지의 형태지만 시리즈 성격의 책에 가깝다.

237~238. 잡지의 이름인 ‘Monocle’이라는 단어는 19세기 상류층의 상징이자 멋쟁이의 상징인, 동그란 알만 하나 있는 단안경을 뜻한다. 가는 실크 끈이 달려 있어 목걸이처럼 걸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눈 언저리에 대고 살짝 끼고 본다. 세상을 보는 도구이면서 계층과 취향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안경이 잡지 <모노클>이 지향하는 가치인 셈이다. <모노클>이 ‘모노클 미디어 키트 2014′에서 밝힌 그들의 타깃 독자는 도시에 거주하는 MBA 졸업 이상의 학력 수준을 가진 금융, 정부, 디자인과 관광 산업의 CEO나 기업가들이다. 그들의 연간 수입은 평균 20만 7천 파운드(3억 원 이상)이며, 연간 10회 이상 비즈니스 출장을 가고 다섯 번쯤 휴가를 떠나며, 지식과 디자인에 민감하고 예술, 자동차, 시계, 패션, 인테리어 등에 투자하는 소비자다. 트렌드를 주도하거나 앞서가는 사람들이 주요 독자인 셈이다. 대부분 잡지들의 주 고객층인 2030들만 보는 가볍고 트렌디한 잡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20대 자녀들을 둔 성공한 4050들이 더 중요한 독자층이다. 소비력과 영향력이 높은 독자들, 다양한 콘텐츠를 통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독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독자 1인당 매출이 아마 전 세계 어떤 매체보다 월등할 것이다. 한편 <모노클>은 각 나라별로 진출할 때도 언어 변환을 하지 않는다. <모노클>은 인종, 국적, 나이, 직업에 상관없이 영어로 교육받고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하는 글로벌 잡지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영어로만 잡지를 전 세계에 파는 것이다.

238~240. “당신이 읽는 것이 곧 당신이다.” <모노클>의 대표이자 편집장인 타일러 브륄레의 말이다. 책이나 잡지를 스마트폰이나 전자책 단말기로 볼 땐 내가 무엇을 보는지 주변 사람들이 알기 어렵다. 그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매력적인 책이나 잡지를 들고 있다면 취향과 개성이 좀 더 분명히 드러난다. 종이로 읽을 때 노출되는 브랜드가 결국 읽는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종이 매체가 좀 더 우아하고 고급스럽고 스타일리쉬하게 보일 가능성이 크다. <모노클>이 지향하는 타깃 독자는 향후에도 가장 안정적으로 잡지와 책을 소비할 사람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이 비즈니스 안목이자 잡지 산업의 미래를 꿰뚫어보는 시각이다. 아무리 잡지 산업이 위기라 해도 우리는 여전히 읽을거리를 원한다. 좋은 책, 좋은 잡지, 좋은 콘텐츠는 계속 필요하다. 여기에 돈을 쓸 여력이 있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어쩌면 잡지의 위기라는 말은 현 독자들의 콘텐츠 수요에 대한 면밀한 이해와 계획 없이, 과거 방식대로만 일해오던 기업들이 하는 자기위안적 발언일 수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잡지의 위기가 아니라 달라진 환경에 맞게 새로운 콘텐츠 비즈니스를 펼치지 못하는 기업들의 위기다.

241~242. <모노클>은 처음부터 온라인 콘텐츠 유료화를 시작한 매체다.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시도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잡지 구독자들이 어느 나라에 거주하고 있건 무료로 배송한다. 잡지 가격보다 해외 배송비가 더 비싸더라도 말이다. 그들은 글로벌 시대에 멀리 있다고 배송비를 부과하는 것은 벌금과도 같다면서 손해를 보더라도 무료로 보내겠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모노클>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동일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잡지 판매를 사업의 전부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잡지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다양한 사업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잡지 콘텐츠의 질이 우수해서다.

242~243. 항공기 제조 비용 중에서 엔진의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최소 25%다. 대형 항공기 한 대가 수천억 원 정도니 엔진만 수백억 원에서 1천억 원대에 이른다. 엔진 제조 비용이 상승하면 보잉과 에어버스 같은 항공기 제조업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 점을 파악한 롤스로이스는 비즈니스 모델을 기존의 ‘판매’ 방식에서 ‘리스’ 또는 ‘서비스’ 방식으로 전환했다. 항공기 제조사가 큰돈을 들여 엔진을 구매하는 대신 항공기 운항 시 엔진 가동 시간에 따른 사용료만 내면 되었다. 이를 위해 엔진에 다양한 센서를 부착해 온도, 공기압, 속도, 진동 등 항공기 운항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했다. 이런 정보는 단순히 과금을 체크하는 데만 끝나지 않고, 엔진의 상태를 진단해 사전에 정비하거나 연료 절감을 위한 엔진 제어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며 수익을 창출했다. 그 결과 롤스로이스는 GE나 P&W를 제치고 민간 항공기 엔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245~247. 자포스Zappos가 다른 수많은 온라인 신발 쇼핑몰과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차이는 신발이 아닌 서비스를 판다는 점이다. 고객센터나 콜센터는 대부분 구색 맞추기용 부서인 경우가 많지만, 자포스에서는 핵심 중에서도 최고 핵심 부서다. 이름도 콜센터가 아닌 ‘콘택트센터Contact Center’라 부른다. 이곳은 전화뿐 아니라 메일, 라이브 채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고객과 접촉한다. 콘택트센터는 연중무휴 운영하고, 반품 창구도 365일 열려 있다. 심지어 반품 시 배송비도 무료다. 그런데 자포스의 콘택트센터에는 매뉴얼이 없다. 고객센터나 콜센터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매뉴얼을 다 가지고 있다. 고객들이 많이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나 상황별 대응 방법 등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만들어두고 담당자가 당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 강구한 방법이다. 하지만 자포스의 콘택트센터에서는 담당자가 스스로 판단해 대응한다. 콜센터 담당자가 모든 권한을 위임받는 책임자인 것이다. 외부 아웃소싱도 하지 않으며 100% 정규직이다. 다른 기업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력이 싼 지역에 콜센터를 두거나 외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콜센터를 핵심 부서로 생각하지 않는 기업들로서는 그게 합리적 선택이다. 자포스의 콘택트센터에서 250명을 모집했더니 2만 5천 명이 지원한 적도 있다. 다른 기업보다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선망하는 자리가 된 것은 권한 때문이다. 고객을 응대하는 담당자가 가진 권한의 힘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한 고객이 입원 중인 어머니를 위해 자포스에서 신발을 샀는데 어머니가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하고 사망하자(규정상 구매 후 15일이 경과하면 반품 및 환불 불가) 자포스는 신발값을 환불해줬을 뿐 아니라 장례식에 근조 화환과 카드도 보냈다. 물론 콜센터 담당자의 즉흥적인 판단이자 결정이었다. 만약 고객이 원하는 신발이 자포스에 없을 경우 다른 쇼핑몰을 검색해서 고객에게 구매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자포스 콘택트센터 직원들의 환상적인 서비스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은데, 이것이 입소문이 나며 고객의 재구매로 이어졌다. 고객들이 사랑하는 기업이 되는 것보다 강력한 마케팅은 없다. 아마존이 자포스를 인수할 때 내건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콘택트센터를 변동 없이 유지하는 것이었다. 아마존이 쓴 12억 달러라는 돈 중 상당수는 콘택트센터의 가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47. 휴넷에서는 입사자가 수습 기간 종료 후 3개월 이내에 퇴직을 희망하면 200만 원의 보너스를 지급한다. 일종의 퇴사 보너스인데, 회사 비전을 공유하고 오랫동안 함께 성장할 직원들을 추리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249~250. 앨런 멀럴리는 2006년부터 2014년 6월까지 포드의 CEO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는 위기와 연관되어 있다. 미국 최고의 자동차 회사 포드를 위기에서 살려냈고, 세계 최고의 하공기 회사인 보잉도 그의 지휘 아래 위기를 극복했다. (중략) 위기 극복은 실패에 대한 태도 변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앨런 맬럴리는 취임 후 방대한 조직의 수많은 임원들에게 업무 보고 시 신호등의 빨간색, 노란색, 녹색 등을 들게 했다. 진행 중인 사업이 문제 없이 잘될 것 같으면 녹색, 실패할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노란색, 실패가 확실해서 위험하다 여겨지면 빨간색을 켜놓고 발표하게 한 것이다. 첫 6주 동안 모든 임원들은 녹색 등만 켰다. 당시 170억 달러가 적자이던 상황임에도 임원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던 셈이다. 앨런 멀럴리는 현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 임원은 즉시 해고하겠다고 엄포를 놨고, 그로부터 2주 후 처음으로 빨간색 등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이 보고에 화를 내긴커녕 현실을 제대로 알려줘서 고맙다며 해당 부서가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하든 회사가 200% 이상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조직에서 위기는 숨기는 것이 아니며, 위기를 빨리 말할수록 회사에서 개선할 수 있는 시간과 자금을 투입해준다는 믿음과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257. 구글의 교육책임자 제이미 카삽이 말했다. “아이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묻지 말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물어보세요. 그럼 대화는, 누구를 위해 일할 것인지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로 바뀝니다.”

_ 김용섭, <실력보다 안목이다>, 인플루엔셜, 2018.

: 12:36 pm: bluemosesErudition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January 23, 2019: 6:15 pm: bluemosesErudition

75. 어떻게든 상상해보기
• 망한 영화, 망한 연속극, 망한 소설에서 그나마 참신한 점을 찾아 보자.
• 좋아하는 다른 이야기의 시대, 배경, 상황, 분위기, 사건을 바꿔치기해보자.
• 다른 이야기의 멋진 장면을 뽑아놓자.
• 다른 이야기의 멋진 장면이 왜 멋지게 느껴지는지 고민해보자.
• 들은 이야기, 읽은 이야기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지 상상해보자.
• 음악을 들으면서 어울리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 그림을 보면서 그림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연을 상상해보자.
• 다른 글의 제목, 시구를 보고 거기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꾸며보자.
• 소재가 생각나면 바로 메모하자.
• 뭐든 생각나는 것을 다 종이에 써두고, 비슷한 것끼리 분류하며 궁리해보자.
• 나도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흥분해서 바로 써서 공개하지 말고 메모만 해두었다가 며칠, 몇 달 묵혔다 활용해보자.
• 길거리나 대중교통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 각각의 삶에 대해 상상해보자.
• 특정한 직장생활의 어처구니 없는 경험을 소재로 활용하자.
•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것이었는지 상기하자.

152. 어떻게든 경험하고 변주해보기
• 첫 장면, 첫머리에서 눈길을 끌자.
• 그렇지만 너무 많이 사용한 자극적인 수법은 지루하니까 피하자.
• 가장 쓰고 싶은 장면부터 먼저 쓰자.
•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절정 장면 두 가지를 떠올리고 그중에 먼저 벌어지는 일로 시작하자.
• 이야기 속에 비밀을 만들고 활용하자.
• 비밀을 극 중의 주인공은 모르지만 독자는 알고 있는 상황을 써먹어보자.
• 내가 보기 싫은 것, 짜증 나는 장면을 메모해두었다가 피해가자.
• 일단 먼저 뭐라도 쓰고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며 이어가자.
• 대충 어떤 구조의 이야기가 될지 미리 짜놓고 그에 맞춰 내용을 세우자.
• 너무 많이 미리 짜놓지 말자.
• 미리 짜놓은 대로 쓰다가 다르게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으면 과감하게 시도하자.
• 이야기가 막힐 때는 비상 수단을 쓰자.
[비상 수단1] 꿈 장면, 상상 장면, 환상 장면을 넣자.
[비상 수단2] 극중극,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장면을 넣자.
[비상 수단3] 문득 시간을 확 건너뛰자.
[비상 수단4] 적당한 핑계를 대고 내가 지금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주인공이 하는 장면을 넣자.
[비상 수단5] 도대체, 왜, 어떻게 앞뒤의 사건이 생길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
[비상 수단6] 어떤 사건이나 상황의 부작용, 범죄에 악용하는 방법을 상상해보자. 그리고 부작용과 범죄의 악용을 막는 방법도 상상해보자.
• 이도 저도 안 될 때는 고양이 이야기를 쓰자.

183. 어떻게든 연마해보기
• 내가 여러 번 읽고 싶은 글을 읽으며 무엇이 아름다운 글인지 느껴보자.
• 최대한 상황을 자세하게 쓰려고 해보고, 그중에서 좋은 것을 고르자.
• 진부한 표현, 쓰기 싫은 말을 대체하려고 해보자.
• 간단하게 쉽게 쓰자.

204~205. 어떤 직업이라도 나름대로 글쓰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글을 쓸 여유가 도저히 생기지 않는 직장은 좋지 않다. 내가 주변에서 본 바로, 직장 일 때문에 여유가 없다는 것은 실제로 낼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정신의 여유가 없는 경우가 좀 더 많았다. 매주 목요일마다 마귀 같은 팀장들 앞에서 영업실적 보고를 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나 두려워서 월요일 아침부터 항상 그 고민이 가슴을 꾹꾹 누르는 생활이라면 뭔가를 바꾸는 편이 글쓰기에도, 인생에도 더 좋지 않을까.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아니면 일주일에 주말을 포함해 다섯 시간 정도, 꼬박꼬박 시간을 낼 수 있으면 제법 건실하게 글쓰기를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거나 자기 전에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한 시간 정도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무척 많다. 그 시간에 우리는 글을 쓰면 된다. 흥분해서 소리 지르는 사기꾼 같은 파트너들, 기막히게 멍청한 일을 저질러놓고도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높은 분들, 가짜 웃음과 억지로 마셔야 하는 술잔이 우글우글한 직장에서 빠져나오면, 그동안 틈틈이 메모해둔 내가 쓰고 싶은 것, 그 이야기를 드디어 마음껏 쓸 수 있는 글쓰기 시간을 가질 수 있다.

212. 많은 작가가 한 분야의 전문가이자 직업인으로서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을 기본 의무라고 여겨 마감을 중시하고 있다. 일전에 <경향신문>의 한 칼럼을 돌아가면서 세 명의 작가와 연재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마감을 잘 지키기 위해 연초에 6개월 치 글을 미리 써두었다. 마감이 다가올 때마다 하나씩 풀어서 신문사에 보내면서 나는 자신만만해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작가들도 같은 방식으로 미리 글을 한 무더기 써서 쌓아두고 있다.

237. 글 쓰는 시간을 길게 갖지 못한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앞서 말한 대로 하루에 한 시간, 일주일에 다섯 시간 정도만 해나가고 있다면 잘못된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일은 따로 있다. 글이 잘 써질 때 한 번에 몰아서 하루아침에 원고지 150장씩을 썼던 기억이 있다고 해서 계획을 세울 때 그 기준을 적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다 망한다. 계획을 세울 때는 오히려 진도가 잘 나가지 못할 때의 기준을 갖고 와야 한다.

253. 어떤 선을 정해놓고 더 이상 고칠 수는 없다든가, 이 이상 작업을 하려면 계약금이나 착수금을 달라고 말하면서 끊어야 한다. 일의 마감을 정확히 정해두고, 기한이 되면 일이 되든 안 되든 끝이라는 방식도 나쁘지 않다. 조언을 듣고 내 글을 개선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시간 동안 ‘이 일만 어떻게 되면 나도 드디어 확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안타깝게 매달려 긴 시간 끌려다니기만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일이 한번 늘어지기 시작하면 설령 상대가 좋은 의도와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흐지부지되며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 그 구렁텅이에 빠지기 전에 끊어내야 어떻게든 끝을 지을 수 있고, 하다못해 망한 셈 치고 다른 글 쓰는 일로 상쾌하게 넘어갈 수라도 있다.

_ 곽재식,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위즈덤하우스, 2018.

: 2:17 pm: bluemosesErudition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 조정래의 이 책은, 청심국제중을 졸업한 손자 조재면이 외대부고 3학년인 2018년 4월에 출간되었다.

: 1:00 am: bluemosesErudition

1. 이유 : 예수님의 명령, 기독교의 생존 방식

2. 초점 : 그리스도 닮기, 그리스도 닮게 하기

“활동으로 생산을 대신할 수 없고, 생산으로 재생산을 대신할 수 없다”(도슨 트로트맨)

January 22, 2019: 7:04 pm: bluemosesErudition

26.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여행 중에 사람이 느끼는 쓸쓸함과 고독의 정서를 화폭에 담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1938년에 완성한 <Compartment C Car>라는 작품에는 기차 안에서 책을 읽으며 홀로 여행하는 여인의 모습을 담았다. 혼자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여인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이야기를 내면에 숨겨놓은 것만 같다.

32.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에 실린 판화 일러스트로 처음 그녀의 존재를 알았다. 오하시 아유미는 1960년대부터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왕성한 활동을 보였고 생활 에세이를 수십 권 펴낸 작가이자 계간지 <아르네Arne>의 편집인, 그리고 도쿄와 교토에 거점을 둔 ‘이오 숍’과 ‘이오 플러스’의 디자이너 겸 주인이다.

34. “아아, 그렇죠. 저희 가게 간판이 잘 안 보이지요. 제대로 된 간판을 달아야지, 달아야지 하면서 여태 2년째 못 달았네요.” (중략) 내가 한국에서 온 외국인이고 오하시 아유미의 오랜 팬으로 <아르네> 전권 모았으며 이곳을 일부러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가게 매니저는 경계심이 풀어졌나 보다. 내가 고른 물건의 값을 계산하면서 조금 뜸을 들이더니 이내 신중한 표정으로 숨겨둔 진실을 알려주었다. “실은… 저희는 일부러 눈에 잘 보이는 간판을 달지 않았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찾기 어렵도록요. 숨은 집처럼,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가게로 만들고 싶었어요. 저희는 사전에 알고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편안하게 둘러보시는 것을 최우선으로 신경쓰거든요. 지나다 불쑥 들른 분들이 너무 많아지다 보면 마음먹고 여기로 걸음하신 손님들이 가게를 둘러보실 때 긴장하게 되니까요.”

47. 교토의 노포에선 무조건 손님을 ‘왕’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파는 쪽과 사는 쪽을 대등하게 여긴다는 건 그만큼 자기가 만들고 파는 제품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령 노포의 현관문을 열거나 노렌(천 장막)을 걷고 들어갈 때 먼저 말을 거는 쪽은 가게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다. “실례합니다.” “안녕하세요.”

52~53. ‘교토의 부엌’이라 불리는 니시키 시장錦市場에는 1560년에 창업한 칼 전문점 ‘아리쓰구’가 있다. 요리용 각종 칼을 비롯, 냄비, 도마 등의 도구들도 판다. 교토의 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에게 음식 맛을 전수하면서 아리쓰구의 요리 도구들도 대물림한다. ‘도구라는 것은 소중히 다루면 언제까지라도 생명을 가진다’고 강조하며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건을 대하는 올바른 마음을 전하는 아리쓰구. ‘수리할 수 있는 물건만을 만드는 것이 장인’이라며 수십 년 전에 만든 상품이라도 완벽하게 수리해내는 솜씨를 발휘한다. “새것이 좋다거나 오래된 것이 좋다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겁니다. 그리고 좋은 것은 항상 더 좋아질 여지가 있습니다.” 아리쓰구의 주인이자 칼 장인은 잡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하지 않은 좋은 점들은 그대로 유지하되 항상 어딘가 조금씩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자세. 이것이 교토의 노포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태도일 것이다.

70~72. 1982년에 문을 연 서점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의 시작은 30평 정도의 작은 책방이었다. 당시에는 따로 점장도 없이 아르바이트 점원들(주로 대학생이나 예술계 프리랜서들이었다)이 각자 특기나 관심 분야(영미 문학이나 만화, 음악, 디자인 등)를 살려서 서가를 하나씩 채워나갔다. 매출보다 흥미로운 서가를 만드는 일을 더 중시해서 점원들이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을 팔게 한 것이다. 점원들의 개성적인 큐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가치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면서 서점의 고유한 색깔을 만들어나갔다. (중략) 서점 홈페이지의 ‘찾아오는 길’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저희 서점을 찾아오다가 만약 길을 헤매시면, 인근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보시는 것은 민폐가 되오니 아무쪼록 삼가주십시오. 반드시 서점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서 길을 물어봐주시길 바랍니다.”

95~97. 교토에는 경관조례법이 있어 지나치게 화려한 간판 색깔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브랜드 이름의 글자 색상은 흰색, 검정색, 갈색 외에는 접수가 되지 않고 특히 선정적인 느낌의 빨간색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또한 교토의 특정 거리는 건물 높이도 20미터까지로 제한되어 있다. 아무리 높아도 대략 5층 건물을 넘어설 수는 없다. 기온祇園, 가미시치겐上七軒 등의 유명 화류가에는 전봇대나 전선이 보이지 않는다.

140~141. 교토 시내 한가운데 거리에 위치한 다와라야 료칸의 객실은 고작 열여덟 개다. 하지만 객실 하나하나에 일본 고유의 문화가 고도로 농축되어 있다. 자연과 빛, 예술, 온화함과 정숙함이 어우러져 있고 객실에서는 유리 창문을 통해 청초한 일본 정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다와라야 료칸에 투숙해본 경험에 대해 에세이스트 사카이 준코는 에세이 『도쿄와 교토』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다와라야 료칸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는 순간 매우 독특하고 밀도 높은 공기에 휩싸인다. 외부 세계와는 다른 규칙으로 움직이는 장소. 어딘지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은 붕 뜬 느낌. 오늘도 내일도 이곳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가 않다. 마치 작은 우주에 혼자 떠 있는 고독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의 고독은 차라리 해방감에 가깝다.” 분명 나머지 열일곱 개의 객실도 손님들로 꽉 차 있을 텐데 그들의 모습은커녕 작은 소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일을 하러 들락날락하는 종업원의 인기척조차 느낄 수가 없다. 이 고요함은 실은 다와라야 료칸 측의 엄청난 노력이 바탕이 되어 있다. 객실 배치나 복도의 동선, 가구 배치나 조명 상태 등, 양질의 고독감은 가장 섬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상태로 세심하게 계산되어 연출된다.

173. 교토 사람들은 ‘교토’라는 단어 자체에 자랑할 만한 브랜드 가치가 있음을 내심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교토’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가게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가게 간판이나 노렌에 교토를 상징하는 ‘京’이 새겨져 있다면 그것은 자기 본연의 실력 대신 ‘교토’라는 상징적인 브랜드에 의지하는 ‘가짜’로 간주한다. ‘교토 요리’라고 간판에 굳이 써 붙이는 식당도 그 행위 자체로 이미 ‘요리 솜씨에 자신 없음’을 드러낸다고 본다.

229~230. 예를 갖추어 장황하게 인사를 마치고 나니 어쩐지 괜히 수줍어져서 우리는 택시를 잡을 수 있는 대로변으로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분주히 옮기기 시작했다. 한참을 앞만 보고 걷는데 누가 우리를 부르는 것만 같은 기운이 등 뒤로 느껴졌다. 몸을 휙 돌려 보니 치요 아주머니가 료칸으로 다시 들어가지도 않고, 아까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때와 똑같은 자세로 서서 우리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황송하다는 듯이 연거푸 머리 숙여 우리를 향해 절을 했다. 우리는 놀랍고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뭐라도 된 양 계면쩍기도 하여, 절 대신 서양식으로 캐주얼하게 손을 흔들었다. 멀리서 우리가 그러는 걸 본 치요 아주머니는 이번에는 앳된 소녀처럼 활짝 웃으며 팔을 번쩍 들어 함께 손을 흔들었다. 몸을 다시 앞으로 돌려 걸었다.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곧 큰길이 나올 터였다. 마침내 골목길 모퉁이를 끼고 왼쪽으로 꺾어 큰길로 빠지려던 찰나, 에이 설마 하며 한 번 더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치요 아주머니가 이번에는 우리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상체를 90도로 완전히 숙인 상태로 이쪽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혹시 아까부터 저러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내심 죄송했다. 자신이 접대한 손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인사를 하고 또 한다는 ‘교토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 이야기는 진짜였다.

_ 임경선,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예담, 2017.

: 11:54 am: bluemosesErudition

성장기 시절 요코하마와 오사카, 그리고 도쿄에서 6년을 살았습니다. 가장 위에 있는 홋카이도부터 가장 아래에 있는 규슈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꽤 많은 크고 작은 도시와 시골 마을로 두루 여행도 다녔지요.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도쿄와 교토를 꼽겠습니다. 도쿄에 관해서는 지난 2016년 봄에 『임경선의 도쿄』라는 독립출판물(2,000부 한정판이었습니다)을 만들어 지극히 개인적으로 편애하는 도쿄의 곳곳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어서 이듬해 교토 편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문득 교토라는 도시는 도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한두 번 교토에 갔을 때는 저도 그저 다른 관광객들처럼 명소를 돌아다니기 바빴습니다. 천 년간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다 보니 봐도 봐도 끝이 없었지요. 그러다가 지난 연초, 세 번째 교토 여행에서는 명소가 아닌 일상의 장소들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했던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특히나 개인들이 운영하는 교토의 가게들이 그랬는데, 가령 왜 어떤 가게들은 일부러 드러나지 않게 골목에 꼭꼭 숨어 있을까. 왜 서점 홈페이지의 ‘찾아오시는 길’ 안내문에서는 동네 사람들에게 길을 묻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일까. 무슨 배짱으로 저 밥집 주인은 저토록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것인가. 왜 라이벌 가게의 홍보를 자기 가게에서 굳이 해주는 것일까. 이 카페는 일주일에 나흘만 열어도 괜찮은 것인가.

어딘가 달라도 한참 달랐습니다. 그것은 제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고 그때부터 저의 ‘교토 덕질’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토에 대해 보다 깊이 알고 싶어서 그에 관한 다양한 문헌들을 찾아 읽어나갔습니다. 교토의 역사와 토양이 만들어낸 사람들의 습성, 일관되게 지켜온 가치관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 결코 변치 않을 어떤 의지와 마음가짐들 그리고 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교토 고유의 정서들이 제게는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교토와 교토 사람들은 자부심이 드높았지만 동시에 겸손했고, 개인주의자이되 공동체의 조화를 존중했습니다. 물건을 소중히 다루지만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기를 거부했고, 일견 차분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단호하고 강인했습니다. 예민하고 섬세한 깍쟁이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지켜나갔고,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을 향한 예의를 중시했습니다. 성실하게 노력하지만 결코 무리하지는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스스로 만들어갔고, 끝없는 욕망보다는 절제하는 자기 만족을, 겉치레보다는 본질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제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상에 가깝습니다.

도쿄가 ‘감각’의 도시라면 교토는 ‘정서’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교토에 대해서라면, 이 도시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일관되게 품어온 매혹적인 정서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옛것과 오늘의 것이 어우러져 공존하는 이곳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저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교토의 한 계절을 걸었고 그 시간 속에서 교토 고유의 정서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제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생각의 중심을 놓칠 때, 내가 나답지 않다고 느낄 때,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마음을 비워낼 필요가 있을 때, 왠지 이곳 교토가 무척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_ 임경선, “교토의 정서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예담, 2017, 5~9쪽.

: 10:27 am: bluemosesErudition

임경선은 “만난 지 삼 주 만에 청혼을 받았다. 이른바 ‘육식남’을 만나 서른을 눈앞에 두고 결혼했다. 그해 갑상선암이 세 번째 재발해 수술을 받았고, 어느새 노산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처음 시도한 인공수정으로 쌍둥이를 가졌지만 두 아이 모두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이듬해, 서른일곱의 나이에 윤서를 낳았다.”

: 8:44 am: bluemosesErudition

“사해 남서부의 늪지에서 채취된 소금은 불순물을 포함하고 있어서 소금이 녹아 빠져 나가면 맛을 잃은 쓸모없는 결정체만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