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호는 “유머가 단순히 웃기기 위한 스킬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정한 세계를 공유하는 사람들만이 함께 웃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세계를 공유하지 않은 유머, 상대에 대한 존중 없이 발휘되는 유머는 얼마나 공허한가. 누군가에 대한 비난과 폄하가 웃음을 유발하는 방아쇠 역할을 하면 안 된다.”

“제가 처음 글의 맛을 안 것은 문학을 통해서였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고운기 시인이 친구였어요. 정식 출판은 아니지만, 중학교 때 이미 시집을 냈더라고요. 그걸 읽고 깜짝 놀란 거죠. 그 무렵부터 시를 무척 좋아하게 됐어요. 대학교 들어가서 처음 구입한 책도 김종삼 시집 <북 치는 소년>이었어요. 학생 때 없는 돈을 털어서 시집을 사곤 했지요.”

“고려대 명예교수 김우창 선생님의 책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읽어왔습니다. 1980년대에 사회구조와 체제의 변혁을 둘러싼 담론이 지식사회를 지배할 때, 그분의 글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었지요. 전공으로 삼은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인문학에 발을 들이게 되었지요. 신학에 대한 관심도 컸어요. 다행히 연세대에 신학과가 있어서 학문적으로 많이 깊어질 수 있었지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긴 했는데 지적으로 풀리지 않는 게 너무 많았거든요. 그때 읽은 실존주의 신학자 폴 틸리히(파울 틸리히)의 <흔들리는 터전>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문학과 신학이 저를 지금 여기로 이끌어준 셈이죠.”

‘마음의씨앗’은 파커 팔머가 지난 20년 동안 운영해온 ‘신뢰 서클’ 즉, 교사들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일종의 내면 성찰 프로그램을 국내에 도입한 것이다. “한국에 가져와 10년째 진행하고 있죠. 피정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주로 시를 읽어요. 시를 깊게 읽고 함께 나눈 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지요. 나를 살핀다는 점에서 피정의 성격과 유사하고요. 작년에는 10주년을 기념해서 교사들과 함께 <나는 오늘도 교사이고 싶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어요.”

“살면서 한번도 관심을 기울여본 적 없는 대상과 대화하는 일은 중요하지요. 다른 수업에서는 이런 숙제를 내준 적도 있어요. 평생 절대로 안 만날 것 같은 사람을 찾아가 인터뷰해보라고. 어려운 숙제 맞아요. 우리의 행동반경이 빤하잖아요.(웃음) 인터뷰 대상에 권투선수도 있고 자살 시도를 여러번 한 여성도 있었지요. 숙제를 공유하며 저도 크게 배우고 학생들도 깨달았어요. 사람들의 삶이 저마다 크게 다를 줄 알았는데 멀리서 보면 별로 안 다르다는 점이었어요. 나도 어쩌면 저렇게 될 수 있겠다, 저 사람도 나와 비슷한 궤적으로 여기까지 왔구나, 그런 발견들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 복덕방 아저씨를 인터뷰한 학생도 기억에 남아요. 동네에서 인심이 안 좋기로 소문난 분이었대요. 딱딱하고 자기 고집이 강한, 전형적인 꼰대였던 거죠. 인터뷰를 하고 나니 그때부터 그렇게 자기한테 잘 대해주더래요. 외로운 거죠 다들. 자기 얘기를 들어줬다는 게 너무 고마운 거고. 우리에겐 우리 얘기가 있고 그것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알았지요. 큰 수확이었어요.”

“저는 인간을 역사적 존재라고 생각해요. 역사란 말을 우리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이거든요. 기억을 떠나서는 ‘자기’가 없잖아요. 내 기억을 바꾸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나는 곧 나의 기억이지요. 그 기억이 어떻게 구성돼 있고 편집돼 있는지를 스스로 모른다면 내가 전혀 다른, 엉뚱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거죠. 실제로 나를 구성하고 있는 걸 돌아보는 일이 무척 중요하지요. 평소에 자기가 살아온 이력을 파악하는 것은 현재를 점검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살잖아요.”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자기와의 화해가 제대로 안 되고 있어서 그 분노를 바깥으로 표출하거든요. 공격적으로, 폭력적으로. 혐오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지요. … 관심의 뿌리에는 제 모멸의 역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수치심이 좀 많았어요. 사내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대놓고 놀림을 받았으니까요. 중학교 때 아이들에게 시달리면서 한 2년 동안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 골몰했어요.”

“루미(13세기 페르시아 시인)의 시 ‘여인숙’을 읽으면 여러 가지 감정이 손님으로 찾아온다고 하잖아요. 모멸감이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이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거꾸로 질문을 해보는 자세가 필요해요.”

루미의 시 ‘여인숙’은 이렇게 시작된다. “인간이란 손님이 머무는 집,/ 날마다 손님은 바뀐다네.// 기쁨이 다녀가면 우울과 비참함이,/ 때로는 짧은 깨달음이 찾아온다네.” 어떤 감정은 금세 왔다가 사라진다. 어떤 감정은 찾아온 줄도 몰랐는데 아주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문다. 그 감정으로 인해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또 어떤 감정은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두고두고 기억나는 말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유머처럼.

“어빙 고프먼이라는 사회학자가 그랬어요. ‘모든 건 다 연출이다.’ 연출을 일정한 방식으로밖에 안 하니까 감정이 이상하게 표출되는 거예요. 다양하게 자기를 연출할 수 있어야 해요. 어린아이 같은 자기, 어수룩하고 바보 같은 자기도 섞여 나올 수밖에 없지요. 그걸 받아들이는 데가 많지 않으니, 우리는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계속 애쓰잖아요. 나의 허술함을 감추려고 일부러 더 과시하고 위세를 부리죠.”

“독일의 오페라 감독 아우구스트 에버딩의 말이 생각나네요. ‘유머 감각이 없다는 것은 내 현실과 차이가 나는 다른 현실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