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1st, 2019

February 1, 2019: 11:42 pm: bluemosesErudition

지구상 적도를 중심으로 하여 남북 각 23° 27´을 지나는 위선. 북쪽을 북회귀선(또는 하지선), 남쪽을 남회귀선(또는 동지선)이라 함. 북회귀선상에서는 하짓날, 남회귀선상에서는 동짓날 태양이 머리 위에 옴

: 10:50 pm: bluemosesErudition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 4:14 pm: bluemosesErudition

11~12. 2012년에 발표된 미국 일리노이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9ㆍ11 테러와 관련된 연구 결과가 좋은 답이 될 것 같다. 연구팀은 1차 실험에서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로 향하는 사진을 보여준 뒤 세계무역센터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세워진 이슬람 커뮤니티 센터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여기서 진보파와 보수파의 견해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한다. 2차 실험은 다른 지원자를 대상으로 하되 한 가지를 추가했다. 건강 유지와 관련된 세 차례의 질문에 연속해서 대답하게 만든 것이다. 이때 한 그룹에는 “왜?”라고, 다른 그룹에는 “어떻게?”라고 물었다. 그 결과 “왜?”에 답변한 그룹은 이슬람 커뮤니티 센터에 대해 좀 더 온건한 견해를 갖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파와 진보파의 답변이 서로 근접한 것이다. 이와 달리 “어떻게?” 그룹에선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왜?’라는 질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자신과 반대되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추상적 사고를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어떻게?”라는 구체적인 질문은 당장 눈앞에 있는 특정한 대상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13. 미국 야구계에 떠도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이론은 칫솔과 같다. 모든 이들은 각자 자기만의 이론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이론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69. 대학원생들에게 월급을 조금 주면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공부를 위해서 하는 일이므로 월급이 없더라도 만족한다”고 말하지만, 월급을 올려주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불평이 많아지는 것도 같은 경우라 볼 수 있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당시 미국 심리학회를 폭풍처럼 강타했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걸 드라마틱하게 증명해보였기 때문이다. 페스팅거는 “실제로 인간의 행동은 보상 이론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없다. 인간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위선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단히 놀라운 정신적 활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114~115. 1889년 3월 31일 프랑스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해서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 조직위원회의 요청으로 완성된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의 에펠탑은 320.75m의 높이로 강철 대들보에 의한 건물이라는 선축의 신시대를 선언하는 동시에 강철의 무한한 잠재력을 과시했다.

_ 강준만, <소통의 무기>, 개마고원, 2017.

: 2:23 pm: bluemosesErudition

“종교는 인간에 의해 수용되고 신에 의해 무상으로 주어진, 하나의 확실성이다. 그것은 계시된 것이다.” 예술 또한 “인간 자신의 의미를 찾게 해주는 어떤 분명한 확신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러한 확신에 근거하여 인간은 자신의 삶 전부를 해석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확실성을 스스로 쟁취하거나 직접 만들어내지 않으며, 이 신념 자체를 정당화되거나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기 고유의 증거를 갖지 못한다.” 반면 철학은 “근본적이고 보편적이면서도 자율적인 확실성이다. 다시 말해서 철학은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그것은 자신의 타당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면서 증명한다. 철학만이 입증을 추구한다. 철학은 항상 자신의 확실성의 근거를 갱신한다.”(20~21)

“최초의 인간은 주변 사물에 대해 궁금해 했으며, 그러고 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궁금해했다.” 철학은 인간과 동떨어져 단독적으로 있는 듯한 사물에 대해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 시작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완전히 새로운 태도이며, 신화적인 태도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관상적 태도라 부를 만하다.” 이러한 관점은 역사상 처음으로 희랍에서 등장했으며, 그때부터 “철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생겨났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사물만이 참이나 거짓일 수 있다. 사물들의 진리에 대한 이러한 깨우침의 가장 오래된 형식이 경이驚異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철학의 뿌리다.”(23~24)

“철학사는 철학자들의 견해들에 관한 박식한 서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실재 내용을 제대로 상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사는 틀림없이 철학이다.” 각각의 철학 사상은 “선행하는 모든 체계들을 필요로 하고 포함”하기 때문에, 철학은 “모든 철학 체계들의 참된 역사로 이루어진다.” 다른 관점에서 봐도 “각각의 철학 체계는 최고 실재, 즉 완전한 진리를 오직 자기 자신의 밖에서만, 다시 말해서 그 체계를 계승하려는 철학자들의 사유 속에서만 성취한다. 모든 철학함은 과거의 총합에서 유래하여 미래로 나아가며, 그리하여 철학사를 진척시킨다. 요약하자면 이것이 철학은 역사적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다.”(25~26)

칸트는 전통적 사변 형이상학이 “어떠한 가능한 경험도 넘어서 있는 대상들 ― 영혼, 세계, 신 ― 에 대한 실재적인 앎을 선험적 사유로 얻으려는 시도”이기에 헛되며, 그러한 앎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476) 그러나 형이상학은 “절대자를 향한 인간의 본성적 경향으로서 계속 현존한다. 그리고 형이상학의 대상들은 칸트가 이념들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이러한 이념들은 “직관에 대해 열려 있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규제적인 효용”만을 갖는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이 불멸할 것처럼, 자신이 자유로운 것처럼, 신이 현존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초월적 이념들의 “절대적이고 무제약적인 타당성”은 “실천이성의 요청들로서 다시 등장한다.”(477)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정신이 철학의 시원에 이르는, 정신의 내재적 변증법을 설명한다.” 헤겔은 “단순한 서술과, 내가 사물들에 대한 개념들을 가지는(실재적 앎이 있는 학學의 상황) 개념적 앎을 구별한다. 그러나 절대적 앎은 여전히 요구된다. 절대적 앎은 모든 것을 포섭하는 앎이다. 절대적 앎이 되려면 그것은 어떠한 것도, 오류조차도 자기 외부에 남겨놓을 수 없다. 그것은 오류로서의 오류를 포함한다. 역사는 인간 정신의 모든 요소들, 즉 진리의 관점에서 볼 때 오류로 등장하는 요소들까지도 포함해야 한다.”(517) 변증법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의 필연적인 이행이 있고, 각 단계는 이전 단계의 진리를 포함한다.” 각 단계는 “보존됨과 동시에 극복된다.”(518)

_ 훌리안 마리아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유유, 2016.

: 12:04 pm: bluemosesErudition

“효율적이면서 신뢰성 있게 정성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성배(聖杯) 찾듯이 지혜를 모아 치열하게 찾아보려는 노력”

: 11:06 am: bluemosesErudition

어슷하다. 한쪽으로 조금 비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