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ne 3rd, 2007

June 3, 2007: 8:55 pm: bluemosesErudition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은 “담합”이란 자충수로 인해 부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1. 정부 측에서 ‘문제제기’한, 언론 담합의 존재 유무가 명확치 않다.

2. 담합이 존재한다면, 그 원천은 기자들 간의 유사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이해관계다.

3. 기자실 통폐합에 대한 언론사들의 반발은 상이한 이유로 동일한 구도를 형성한다.

4. 쟁점이 ‘국민의 알권리’로 환원되고, 대선주자들은 ‘민주수호’를 공약한다.

5. 여론의 기류가 정권 불신으로 모아지면 침묵의 나선은 소수 이견을 잠재운다.

* 사태를 발현시키는 힘은 사회적 무의식에 의해 변주된다(cf. E. Noelle-Noumann).

: 6:39 pm: bluemosesErudition

“인생의 홈런을 기다리는가? 그렇다면 오늘부터 꾸준히 안타를 쳐나가라.” 

“오버할 땐 오버하자! 시도만으로 눈길 끄는 오버헤드킥.”

“시선과 시샘을 함께 받는 자여, 그대 이름은 에이스.”

“어시스트? 남도 좋고 나도 좋은 행복한 기술.”

“10분이면 자투리? 농구 코트에서는 25번의 공격시간!”

“헤딩슛은 막기 힘들다. 결론은 머리!”

“10번 중 무려 7번을 실패한 당신? 당신이 바로 성공한 3할 타자!”

“조직을 안다는 것? 희생번트를 안다는 것.”

“당신 곁에 희생플라이 하나쯤 날려줄 그가 있는가?”

“백넘버, 뒷모습만 봐도 당신이 누군지 알게 하라.” 

: 4:47 pm: bluemosesErudition

“파시즘이란 가만있게 내버려두지 않는 강요이다. 무엇을 말해야 한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무엇에 대해 가만히 있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 파시즘의 본질이다. 권위주의의 특성은, 자기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라는 믿음에서 연유하는 오만과 뻔뻔함에 있다. 나는 옳으니까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뻔뻔함과 나는 옳으니까 내가 틀릴 리가 없다는 오만함은 동어반복에 기초하고 있다. 권위주의는 동어반복이다. 나는 권위 있으니까 권위 있다!(10. 12.)”

* 파시즘에 관한 천박하나 호소력있는 단언이다.

: 1:17 am: bluemosesErudition

1. “나는 오래 살 것 같지 않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죽을 듯 하다. 어쩌면 이미 죽음의 문턱을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쉽고 간절하게 말씀을 전한다(McCheyne, R.).”

2. “새벽에 형광등 및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진다. 두 배, 세 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 있다(김현).”

3. “오늘 여기서 우리의 목표는 봄에 도달하는 것이다. … 나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Levy, P.).”